유영프로필 유영그는누구인가?

이름 유영(劉永, You Young)

 

출생 2004년 5월 27일(16세), 싱가포르

 

학력

부킷 티마 프라이머리 스쿨

문원초등학교

과천중학교

 

신체 165cm

 

종목 피겨 스케이팅

 

랭킹 19위

코치 태미 갬빌, 하마다 미에

 

종교 기독교

대한민국의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만 11세의 나이로 김연아의 기록을 깨고 한국 최연소 종합선수권 챔피언에 등극하며 최다빈, 임은수 등과 함께 새로운 차세대 피겨 샛별로 떠올랐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아버지 유일진과 어머니 이숙희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1세 때부터 싱가포르에서 자랐다. 김연아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피겨를 시작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 2013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피겨 스케이팅 훈련에 돌입했다.

 

인터뷰에서 말하길, "어릴 때 연아 언니의 동영상을 계속 돌려보면서 본받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진정한 연아키즈인 셈이라고 할 수 있다.

2016 종합선수권에서의 성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피겨 유망주 3인방(김예림, 유영, 임은수)에게 집중되었지만, 아쉽게도 세 선수는 모두 연령 제한으로 인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하였다. 유영은 2019-20 시즌부터 시니어 경기에 데뷔하여 출전하고 있으며 쇼트와 프리 기술점을 자신의 기록으로 경신하는 등 엄청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켰다.

 

선수 경력

 

노비스 시절

 

싱가포르에서 훈련할 시절 여러 코치 밑에서 훈련했다. 2011, 2013 싱가포르 내셔널에 참가하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2015 종합선수권에 시니어로 첫 참가해 쇼트 6위, 프리 7위, 종합 6위를 기록했다.

초등학생임에도 중고생 선배 언니들의 점수를 가볍게 제쳤으며, 심지어 국내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이고 총점 180점대 진입은 김연아 이후 국내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일부 언론매체에서 김연아의 어린 시절과 점수를 비교하기도 하는데, 김연아의 초등학생 시절은 지금과는 다른 구체점제 시대라 서로 비교 대상이라 할 수 없다. 김연아 역시 유영의 퍼포먼스를 보고 "내가 저 나이일 때보다 유영이 훨씬 잘 탄다." 며 칭찬했을 정도고, "선배들이 초등학생 후배들 앞에서 더 분발해야 한다" 고 당부하기도 했다. 또한 부상을 조심하라는 당부도 했다.

이렇듯 괴물 같은 실력을 과시하며 종합선수권 우승까지 거머쥐었지만, 빙상연맹의 국가대표 선발 방침에 따라 유영의 국가대표 자격이 박탈됨으로써, 유영은 쾌적한 태릉빙상장에서 프로에 걸맞은 매니지먼트와 케어를 받는 게 아니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과천빙상장에서 개인적으로 훈련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일단 연맹측에서도 대책회의를 연다고 하고 "유영 선수의 성장을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는 하였으나, 선수를 키워줄 생각은 안하고 자기 밥그릇이나 챙기는 빙상연맹에게 뭘 기대할 게 없다는 네티즌들의 한탄이 이어지고 있으며, 빙엿의 병신짓에 답은 빅토르 안처럼 이민이다라고 조롱하고 있다. 다행히 유영이 태릉빙상장에서 훈련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종합선수권 우승 이후 언론의 포트라이트가 집중 조명된 2016 동계체전에서는 부담을 느꼈는지 쇼트 52.94점, 프리 109.77점, 총점 162.71점으로 임은수, 김예림에 이어 A조 여초부 3위를 기록했다. 이후 시즌 마지막 대회로 3월에 열린 컵 오브 티롤 대회 노비스(만 13세 이하) 부문에 출전하여, 총점 134.75점을 받아 1위에 올랐다. 또한 이 대회에서 ‘타노’ 점프를 탑재해왔다. 처음 타노 점프를 시도한 대회임에도 나름 아름답게 성공시켰다. 다만 "타노를 붙이니 점프 성공률이 떨어지는 것 같다", "타노를 너무 많이 넣는다. 이러다 메뎁 되는 것 아니냐" 등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16-17 시즌 초, 아시안 오픈 트로피에 출전하여 쇼트 46.03점, 프리 91.10점, 총점 137.13점으로 노비스 부문 우승을 차지하였다.

 

국내 대회들에서는, 회장배 랭킹대회에서 쇼트 62.97점, 프리 118.45점, 총점 181.42점으로 만 12세 5개월에 우승하면서 이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꿈나무대회에서는 프리 스케이팅 첫 점프로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하였는데, 다운 그레이드 판정을 받긴 했지만 국내 여자 최초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이후 다시 국제대회 탈린 트로피 노비스 부문에 출전하여 쇼트 36.49점, 프리 90.40점, 총점 126.89점으로 알료나 카니셰바에 이은 은메달을 땄다. 이 날 컨디션이 별로였는지 쇼트 프로그램에서 2차례 넘어지고,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1차례 넘어지는 실수가 있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가장 큰 대회이자 자신이 디펜딩 챔피언이기도 한 2017 종합선수권에 출전하였는데, 아무래도 디펜딩 챔피언이다 보니 언론에서도 유영 선수를 집중 주목하였고, 이것이 부담으로 작용되었는지 쇼트에서 막그룹 6명 선수들 중 유일하게 넘어지는 실수를 저질러 58.71점으로 6위에 머물렀다. 다음날 프리에서는 122.17점을 받으며 2위였지만 쇼트와의 총합 점수에서 180.88점으로 최종 5위를 기록했다.

동계체전 여초부 A조에 출전하여 프리 스케이팅에서 다시 한 번 쿼드살코 점프를 시도하였다. 쇼트 63.71점, 프리 118.31점, 총점 182.02점을 받았다. 이번에도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았지만 무리 없이 우승하여, 이번 시즌 출전한 모든 국내 대회에서 총점 180점을 넘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 시즌까지는 연령 미달로 인해 ISU가 주관하는 국제 대회에 나설 수 없었지만, 이 다음 시즌부터는 드디어 주니어 데뷔가 가능하게 되어 팬들의 기대가 크다.

 

2017-18 시즌

 

시즌 초반 점프 구성

 

쇼트 3F+3T / 3Lz, 2A

 

프리 3Lz+3T, 3S, 3Lo / 3F, 3Lz, 2A+3T, 2A+2T+2Lo

 

이 시즌을 앞두고 만 13세가 되어 드디어 팬들이 가다리고 기다리던 주니어 가능 연령이 되었다.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 출전하여 쇼트에서 부진하며 4위를 차지했으나 프리에서 반등하여 김예림과 임은수에 이은 종합 3위를 차지했다. 주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 출전권을 따내어 5차 대회와 7차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주니어 그랑프리 5차 크로아티아 대회에 출전하며 주니어 데뷔를 하였다. 쇼트에서는 3-3 컴비네이션 점프 중 후속 트리플 토룹을 싱글로 처리하는 실수를 하며 53.81점을 받아 5위, 프리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109.61점으로 3위를 기록했다. 쇼트 점수가 상위권 선수들과 격차가 컸기 때문에 최종 순위가 상위권에 들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으나, 프리 경기에서 쇼트 1, 2위 선수들이 역대급 폭망 경기를 시전하였다. 덕분에 종합 4위로 마감하였다. 따라서 쇼트에서의 부진이 두고두고 아쉽게 되었다.

주니어 그랑프리 7차 대회에서, 쇼트는 겉클린을 하였으나 3F+3T 컴비의 플립 엣지에 어텐션을 받으며 점수가 조금 깎이고, 스텝시퀀스와 플라잉 싯스핀 레벨 2를 받아 60.42점으로 쇼트 5위를 기록했다. 프리에서는 2A+3T에서 한 번 넘어지는 실수를 하면서 117.28점으로 프리 4위, 총점 177.70점으로 쇼트, 프리, 총점 모두 개인 최고점을 기록하며 종합 5위로 본인의 첫 번째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를 마쳤다.

 

시즌 후반 점프 구성

 

쇼트3F+3T / 3Lz, 2A

 

프리 3Lz+3T, 3F, 3Lo / 2A+3T, 3Lz+2T+2Lo, 3S, 2A

2017 KB 금융 피겨스케이팅 코리아 챌린지(회장배 랭킹대회)에서 쇼트는 67.46점, 프리는 130.10점을 받아 총합 197.56점으로 우승을 차지, 작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클린했고, 프리 스케이팅에서 한번의 스텝 아웃 실수가 있었지만 각각 1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프리 기술점에서 처음으로 70점을 넘기면서 비공인이지만 자신의 최고기록을 세웠다.

2018 종합선수권에서 쇼트 69.53점, 프리 135.15점을 받아 총점 204.68점을 받고 자신의 두번째 내셔널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공인 기록은 아니지만 김연아 이후로 국내 대회에서 처음으로 200점을 넘긴 여자 선수가 되었다. 종합선수권의 결과로 임은수와 함께 주니어 세계선수권이라는 중요한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2월 9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 자격으로 7명의 신구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하였다.

 

2월 25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뒤 임은수 선수와 함께 한국 피겨의 미래를 이끌어갈 유망주 자격으로 갈라 무대에 서게 되었다. 두 선수 중 한명만 서게 될거라는 예상, 두 선수 다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선보일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합동무대를 선보여서 피겨팬들의 이목을 차지했다.

 

2주 후, 201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참가했다. 이번 대회는 많은 피겨팬들의 이목을 차지했는데, 그 첫째 이유는 임은수와 유영의 순위 합이 13 이내가 되어 내년 2019 주니어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3장으로 늘리고, 국가 순위 3위를 차지하여 다음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출전권 14장을 따올지 여부였고, 둘째는 김연아 이후로 12년 만에 메달을 따올지였다.

 

쇼트에서는 일부 팬들의 우려대로 점프 기본기 부재로 인한 점프 도입 자세가 망가짐에 따라, 3-3 점프에서 후속 연결 점프가 회전수 부족 판정을 받았고 점수는 59.79점으로 9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3F에서 롱엣지 판정을 받으며 넘어지고, 2A+3T 콤비를 연결하지 않고 단독으로 예정되어 있던 트리플 살코에 트리플 토룹을 연결하다가 다운그레이드를 받으며 넘어지는 큰 실수를 하여, 프리 111.99점으로 8위, 총점 171.78점으로 팬들의 큰 기대와 달리 최종 9위로 마감하였다. 같이 출전한 임은수와의 종합 순위의 합이 13 이내에 들면 다음 시즌 주니어 세계선수권 출전권이 3장으로 늘어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임은수가 5위, 유영이 9위를 기록하면서 14가 되어 아쉽게 무산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2018년 5월 20일부터 5월 22일까지 열린 올댓 스케이트 아이스쇼에 출연하였다.

 

2018년 6월 24일, 미국에서 열린 비공인 대회인 브로드무어 오픈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여 랜딩하는데 성공하였다.

 

2018-19 시즌

 

2018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을 1위로 마치며 지난 시즌에 이어 주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선발전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트리플 악셀 점프를 시도하였는데, 회전수를 채우지 못하고 넘어졌다.

주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쇼트 64.45점으로 3위를 기록했다. 선발전 때와 달리 주니어 그랑프리 경기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지 않고 더블 점프로 수행을 했다. 그러나 쇼트에서 가장 중요한 3-3 컴비네이션의 후속 점프에서 회전수 부족 판정을, 트리플 플립에서는 엣지콜을 받았다. 프리에서는 다행히 많은 피겨팬들이 걱정했던 점프의 회전수 부족 문제가 나오지 않으며 준클린을 해냈으나, 예상외로 구성점수(PCS)가 저조하게 나오면서 점수가 119.53점에 그쳤다. 그래도 총점 183.98점으로 안나 셰르바코바와 안나 타루시나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어 출전한 주니어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는 쇼트와 프리 둘 다 실수가 나오면서 각각 60.64점, 111.19점, 총점 171.83점을 받으며 4위에 그쳤다. 이 대회에서도 역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지 않았다. 지난 대회에 이어 연속 메달이 유력했기에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도 프리 프로그램의 PCS가 낮은 현상이 발생하며 우려를 샀다. 팬들 사이에서는 지난 시즌의 프리 프로그램이었던 캐리비안의 해적이 프로그램의 질에 비해 빛을 발하지 못했었는데 이참에 다시 해적으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주니어 그랑프리가 끝난 후 팬들의 바람대로 프리 프로그램을 해적으로 교체하였다.

 

주니어 그랑프리가 끝난 후 탈린 트로피 대회에 참가했다. 쇼트에서는 더블 악셀의 랜딩이 깔끔하지 않았고, 3Lz+3T 컴비네이션 점프의 첫 3Lz에서 넘어지면서 연결 점프를 놓쳤고, 단독 트리플 플립은 어텐션 판정을 받으며 즉 모든 점프에서 성공적이지 못하며 데뷔 이후 개인 최저점인 50.17점을 기록했다. 프리는 의상을 교체하였으며, 첫 점프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였으나 회전수를 채우지 못하고 넘어졌다. 또한 트리플 룹에서 언더를 받고 스텝 아웃을 했고, 스텝 시퀀스 레벨 2를 받았으며, 2A+3T 컴비네이션의 후속 점프에서 언더를 받고, 트리플 플립에 어텐션을 받는 등 전체적으로 좋지 못한 연기로 113.50점을 받았다. 그래도 최종 163.67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2월 22일 열린 국내 회장배 랭킹대회 쇼트 경기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였으나 넘어지고, 이어진 3Lz+3T 컴비네이션에서도 넘어지며 53.47점으로 9위를 기록했다. 다음날 프리 경기에서는 심기일전하여 첫 트리플 악셀에서 스텝아웃 한 것을 빼고는 괜찮은 경기를 펼치며 130.06점을 받아 프리 1위에 올랐다. 총점 183.53점으로 임은수에 이어 은메달을 따내는 저력을 보였다.

 

2019 종합선수권에서 쇼트와 프리 모두 트리플 악셀을 빼고 클린을 해내며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작년에 이어 내셔널 2연패를 달성하였고 통산 세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또한 2019 주니어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획득하였다.

 

독일에서 열린 비공인 대회인 바바리안 오픈에 출전하여, 쇼트에서는 활주 도중 삐끗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68.24점을 받았다. 프리에서는 트리플 플립에서 넘어진 실수를 제외하고는 깔끔한 연기로 총점 195.50점으로 우승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2019 동계 유소년 아시아 대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하여 쇼트에서 클린하며 71.39점으로 1위를 했다. 프리에서도 클린하며 134.43점을 받으며 총점 205.82점으로 우승했다.

 

2019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쇼트에서 3-3 점프를 실패하며 55.62점으로 11위에 그쳤다. 프리에서는 절치부심한 듯 겉클린을 하였으나 트리플 플립에 엣지콜(어텐션)과 언더 판정을 받았다. 이외의 요소들은 클린하여 123.20점으로 개인 최고점을 경신하며 5위에 올랐지만, 쇼트에서의 점수 차 때문에 총점 178.82점으로 최종 6위를 기록했다.

 

이후 미국에서 열린 비공인 대회인 브로드무어 오픈 시니어 부문에서 총점 204.37점으로 알리사 리우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쇼트에서 트리플 악셀을 랜딩했다.

 

2019-20 시즌

이번 시즌을 앞두고 만 15세가 되어 시니어 대회에 나갈 수 있는 나이가 충족되었고, 지난 시즌의 성적을 기반으로 시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 2019 스케이트 캐나다에 초청받아 한국 선수 중 최연소(만 15세 5개월)로 시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하게 되었다.

 

점프 구성

 

쇼트 3A, 3Lz+3T / 3F

 

프리3A, 3Lz+3T, 3Lo, 3Lz+1Eu+3S / 2A+3T, 3F, 2A

 

시즌 첫 대회로 필라델피아 서머 인터내셔널에 출전해 총점 193.48점으로 우승했다. 쇼트와 프리 모두에 트리플 악셀을 넣어왔으나 쇼트에서는 싱글링, 프리에서는 넘어지며 랜딩에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챌린저 시리즈 롬바르디아 트로피에 출전하여 쇼트 70.47점을 받으며 2위에 올랐다. 이로써 김연아와 임은수에 이어 ISU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쇼트 70점을 돌파한 세번째 한국 여자 선수가 되었다. 또한 트리플 악셀을 랜딩하는 데에 성공하였지만 착지 직후 두 발이 모두 빙판에 닿으면서 제대로 랜딩 자세를 취하지는 못하여 수행점수(GOE)가 -1.12점 깎여, 완벽한 성공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그래도 처음으로 회전수를 인정받았다. 프리에서도 트리플 악셀을 두 발로 랜딩하였지만 그 외의 요소들을 무난히 수행하며 프리 130.42점, 총점 200.89점으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로써 총점 200점을 돌파한 세번째 한국 여자 선수가 되었다.

챌린저 시리즈 U.S. 인터내셔널 클래식에 출전하여 쇼트에서 트리플 악셀에서 넘어지고, 트리플 플립을 싱글링하며 58.04점으로 4위를 기록했다. 다음 날 프리에서는 트리플 악셀 랜딩 과정에서 살짝 삐끗하여 수행점수(GOE)가 0.8점 깎인 것을 제외하고 모든 요소를 클린하였다. 이에 기술점수(TES) 78.37점, 구성점수(PCS) 62.88점을 합한 141.25점을 받아 프리 1위에 올랐다. 총점은 199.29점으로 미야하라 사토코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로써 김연아 이후 프리 140점을 돌파한 최초의 한국 여자 선수가 되었다.

2019 스케이트 캐나다에 참가하며 시니어 그랑프리 데뷔를 했다. 쇼트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켰다! 이외에 다른 점프들도 클린하였고 스텝에서는 최고 레벨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78.22점으로 개인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역대 한국 여자 선수 중 시니어 그랑프리 데뷔전에서 기록한 최고 점수이며, 동시에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것이다. 세계 전체 여자 선수들 중에서는 11번째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사례이다. 다음 날, 쇼트 2위에 랭크된 상태로 프리 스케이팅 2그룹 4번째 순서로 나섰고 첫 점프였던 트리플 악셀은 아쉽게도 넘어지는 실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외의 점프들을 모두 성공시켰고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에서 가산점 1.6점, 트리플 러츠+오일러+트리플 살코 3연속 점프에서 가산점 1.77점을 챙기며 139.27점을 받았다. 전날 쇼트프로그램 합계 217.49점을 받으며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함과 동시에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로써 김연아 이후 총점 210점을 돌파한 두번째 한국 여자 선수가 되었으며, 시니어 그랑프리 데뷔 무대에서 입상한 것은 2006년 김연아가 동명의 같은 대회 2006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3위를 한 이후로 13년 만의 일이었다. 이번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그랑프리 4차 대회 2019 컵 오브 차이나에 추가 배정을 받았다. 이로써 김연아와 임은수에 이어 시니어 데뷔 시즌에 그랑프리 2개 대회에 배정받은 3번째 한국 여자 선수가 되었다.

연속 메달이 기대되었던 2019 컵 오브 차이나에서는 쇼트에서 트리플 악셀과 트리플 플립에 모두 언더 판정을 받고 넘어지며 61.49점을 받아 7위를 기록했다. 프리에서는 트리플 악셀에서 언더 판정을 받으며 넘어졌고, 연결 트리플 토룹 2개와 3-1-3 후속 트리플 살코에서 언더 판정을 받아 130.32점을 기록했다. 총점 191.81점으로 최종 4위를 기록하며 그랑프리 시리즈를 마쳤다.

 

2019 회장배 랭킹대회 쇼트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더블 악셀로 바꾸어 수행하였다. 그러나 트리플 러츠에서 넘어지며 연결점프를 붙이지 못해 +COMBO 처리가 되었으며, 트리플 플립에서는 오버턴을 해 57.46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프리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싱글로 처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클린하며 134.28점, 총점 191.74점으로 4위를 했다. 도지훈과는 불과 0.09점 차이의 소수점 대결에서 승리하여 사대륙 선수권 출전권을 확보하였다. 2019 스케이트 캐나다 이후로 트리플 악셀과 호성적이 선수 본인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0 종합선수권 쇼트에서는 클린하며 76.53점을 받았다. 프리에서는 트리플 악셀에서 스텝아웃을 하고, 트리플 플립에 어텐션 판정을 받아 143.67점, 총점 220.20점으로 우승하며 대회 3연패를 달성하였고 2020 세계선수권 진출권도 확보하였다.

2020 로잔 청소년 동계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쇼트에서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번 시즌 쇼트 프로그램이 선수의 수행과 상관없이 편곡과 안무 측면에서 평가가 다소 박했는데, 이번 대회에서 거의 역대급 경기를 선보이며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며 73.51점을 받았다. 프리에서는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에서 후속 토룹을 더블링하고 비점프 레벨을 다소 잃은 것을 제외하고는 클린하며 140.49점, 총점 214.00점으로 우승했다.

 

평가

 

2017-18 시즌에 주니어 데뷔를 하였는데, 노비스 시절 보여준 잠재력으로 인해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메달이 기대되었던 것과는 달리 각각 4위와 5위를 기록하며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중요한 첫 주니어 시즌이었으나 예상보다 저조한 결과를 낳았고, 국제대회에서의 실수가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주니어든 시니어든 탑싱 선수들은 컨시가 매우 뛰어난 편이라, 국제대회에서 선전하려면 올클린 혹은 준클린이 필수이다. 국내대회에서는 좋은 컨시를 보였으나, 국제대회에선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수에겐 성공적인 시즌이 되지 못하였다.

 

2018-19 시즌은 선수의 주니어 2번째 시즌으로, 주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따며 쾌조의 출발을 알렸지만 주니어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는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다음 시즌 시니어 데뷔가 가능할지에 대해 의문점을 남겼다. 종합선수권과 회장배 랭킹대회를 앞두고 나간 탈린 트로피에서도 고질적인 회전수 부족 현상이 여전히 많이 드러나고 번번히 트리플 악셀 점프에 실패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팬들에게 걱정을 안겼다. 그러나 국내대회인 회장배 랭킹대회와 종합선수권에서는 회전수 문제가 많이 개선되었다.

여타 선수들이 그렇듯, 이 선수 역시 세계적인 선수로 얼마나 활약하느냐는 앞으로 성장하면서 다가올 체형변화를 얼마나 잘 이겨내느냐에 달려있다. 특히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종목은 나이를 먹을 수록 실력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어 무려 10대 중후반이 전성기이고 베테랑들의 성적이 부진한, 즉 본격적인 메이저 경기에 참가할 수 있는 시니어 연령대로 진입하고 잠깐이면 전성기가 끝나는이상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어릴 때 고난도 점프를 팡팡 잘만 뛰다가도 체형변화 때문에 성적이 극도로 떨어지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 선수가 체형변화 시기를 잘 이겨내고 잘 크도록 바라는 수 밖에 없다.

 

긍정론

 

스케이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빠른 스피드에 있다. 그 빠른 속도로 프로그램 내내, 점프의 시작과 끝에까지 빈틈없이 안무를 꽉꽉 채워서 수행해낸다. 그러면서도 지친 기색보다는 풍부한 표정과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까지 보여서, 가히 영재라고 불릴 만한 실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노비스 시절 보여준 성장 속도와 기술 습득이 무서울 정도로 빨맀다. 2015 종합선수권 때의 영상을 보면 프로그램 내내 무언가 위태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점프의 자세와 착지가 불안정 했으며, 표정도 굳은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1년 내내 무서운 기세로 안정되어서 가볍게 점프를 뛰고 점프 자세도 제법 고쳐진 모습을 보여줬다. 기술 습득에 대해서는 2016년 2월 동계체전까지 보이지 않던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점프를 뛰는 일명 '타노' 점프를 간간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불과 한 달 후인 3월 티롤 컵 대회에서 각종 트리플 점프에 탑재해오는 무서움을 보여줬다.

 

한국 여자 선수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고난도 점프 도전을 하는 중이다. 노비스 시절에는 4회전 살코 점프를 대회에서 간간히 시도했으며, 2018-19 시즌에는 트리플 악셀을 국내대회에서 시도하고 있다. 연습 영상에서는 4회전 러츠를 뛰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시니어 데뷔 시즌인 2019-20 시즌부터 국제대회에서도 쇼트와 프리 점프 구성에 트리플 악셀을 넣어왔고, 그외에 3-3 컴비네이션 등 다른 점프들이 매우 향상되어왔다. 주니어 시절에는 회전수 부족이나 엣지콜에 문제에 발목잡혀왔으나 현재는 이 문제가 훌륭하게 개선되었고 컨시 또한 좋아졌다. 트리플 악셀의 경우 그랑프리 데뷔 쇼트에서 성공시켰다.

 

부정론

 

빠른 스케이팅 스피드와 표현력은 국내 선수들 중 상위권이지만, 점프의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17 종합선수권에서의 모습이 같은 2004년 생인 감윤경 선수와 비교했을 때 공중자세가 정교하지 않다는 점에서 나온 것이다. 많은 여자 싱글 선수들이 체형 변화가 오기 전애는 가벼운 몸으로 고난도 점프를 팡팡 잘만 뛰다가 몸이 커지기 시작하면 무너지는 이유 중 하나가 점프의 기본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대표적으로 이분과 이분이 있다. 따라서 팬들 사이에서는 "고난도 기술도 좋지만 기본기에 충실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타노 점프를 탑재하면서 점프의 컨시가 떨어진 것 같다" 등의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전 시즌에 비해 유영의 공중자세가 말이 많은 이유는 바로 전 시즌 프리 프로그램에선 인도 음악에 맞춘 바지의상을 입었는데 헐렁한 바지가 굽어진 다리를 가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니어 데뷔 후에도 점프 시 무릎을 완전히 펴지 못하고 회전을 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또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첫 주니어 시즌부터 플립 점프가 어텐션 혹은 롱엣지를 받으면서 플립에 대한 교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종 점프에 회전부족 판정도 받는지라, 이 경우도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로 남았다. 그러나 현재, 주니어 시즌과는 달리 선수의 단점으로 언급 되어왔던 회전수 부족과 엣지 콜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점프의 경우에도, 시즌 초에는 스텝이나 스핀에서 레벨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으나 시즌 후반부터는 해결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2019 스케이트 캐나다를 마친 후 인터뷰에서는 더 열심히 해서 스핀과 스케이팅 스킬을 보완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기록

 

•한국 종합선수권 대회 최연소 우승(만 11세 7개월)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한국 최연소 배정/출전(만 15세 5개월)

 

•시니어 데뷔 시즌에 그랑프리 2개 대회에 배정받은 3번째 한국 여자 선수

 

•시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에 배정받은 9번째 한국 여자 선수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메달을 딴 3번째 한국 여자 선수

 

•시니어 그랑프리 데뷔 경기에서 메달을 딴 2번째 한국 여자 선수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11번째 여자 선수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한국 여자 선수

 

•쇼트 70점을 넘은 3번째 한국 여자 선수

 

•쇼트 기술점수(TES) 40점을 넘은 5번째 한국 여자 선수

 

•한국 여자 싱글 쇼트 기술점수 최고 점수 보유(45.54점)

 

•여자 싱글 3번째로 쇼트 프로그램 점프를 트리플로만 구성하여 성공한 선수(3A, 3Lz+3T, 3F)

 

•프리 130점을 넘은 6번째 한국 여자 선수

 

•프리 140점을 넘은 2번째 한국 여자 선수

 

•프리 기술점수(TES) 70점을 넘은 4번째 한국 여자 선수

 

•한국 여자 싱글 프리 기술점수 최고 점수 보유(78.37점)

 

•총점 200점을 넘은 3번째 한국 여자 선수

 

•총점 210점을 넘은 2번째 한국 여자 선수

 

ISU 공인 최고 점수

ISU 공인 최고점수

쇼트

78.22(2019 스케이트 캐나다)

프리

141.25(2019 CS U.S. 인터내셔널 클래식)

총점

217.49(2019 스케이트 캐나다)

 

프로그램

 

시즌

쇼트(SP)

프리(FS)

갈라(EX)

2019-2020

로미오와 줄리엣(1996) OST

에비타 OST
• You Must Love Me
• Buenos Aires
• Don't cry for me Argentina

시카코 OST

헤어스프레이 OST
• I can Hear the Bells
• You Can't Stop the Beat

2018-2019

사랑의 탱고
(Tango d' amor)

캐리비안의 해적

시카코 OST

My Fair Lady

2017-2018

Don't rain on my parade

캐리비안의 해적

Hello

내가 제일 잘 나가

2016-2017

Paso Doble

블랙 스완

-

2015-2016

Hava Nagila
(이스라엘 민요)

Don't You Worry Child

Puttin' On the Ritz

2014-2015

로미오와 줄리엣 OST

-

 

커리어

청소년 올림픽

금메달

2020 로잔

여자 싱글

 

국제대회:시니어

대회

14–15

15–16

16–17

17–18

18–19

19–20

세계선수권

 

 

 

 

 

 

사대륙선수권

 

 

 

 

 

 

GP 컵 오브 차이나

 

 

 

 

 

4th

GP 스케이트 캐나다

 

 

 

 

 

3rd

CS U.S. 인터내셔널 클래식

 

 

 

 

 

2nd

CS 롬바르디아 트로피

 

 

 

 

 

3rd

필라델피아 서머 인터내셔널

 

 

 

 

 

1st

국제대회:주니어, 노비스

청소년 올림픽

 

 

 

 

 

1st

주니어 세계선수권

 

 

 

9th

6th

 

JGP 캐나다

 

 

 

 

4th

 

JGP 슬로바키아

 

 

 

 

3rd

 

JGP 이탈리아

 

 

 

5th

 

 

JGP 크로아티아

 

 

 

4th

 

 

동계 유소년 아시아 대회

 

 

 

 

1st J

 

바바리안 오픈

 

 

 

 

1st J

 

탈린 트로피

 

 

2nd N

 

1st J

 

컵 오브 티롤

 

1st N

 

 

 

 

아시안 트로피

 

2nd N

1st N

 

 

 

국내대회

종합선수권

6th

1st

5th

1st

1st

1st

회장배 랭킹대회

5th J

2nd J

1st

1st

2nd

4th

동계체전

1st

3rd

1st

1st

 

 

종별선수권

1st

 

 

 

 

 

JGP 선발전

 

 

 

3rd

1st

 

GP=그랑프리, JGP=주니어 그랑프리,
CS=챌린저 시리즈, N=노비스, J=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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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위 프로필 미셸위그는누구인가?

이름 미셸 성 위(Michelle Sung Wie)

       한국명 위성미(魏聖美, Wi Sungmi)

 

국적 미국

 

출생 1989년 10월 11일, 하와이 주 호놀룰루

 

가족

할아버지 위상규, 큰아버지 위봉,

아버지 위병욱, 어머니 서현경

시아버지 제리 웨스트, 남편 조니 웨스트

 

학력 스탠퍼드 대학교

 

신체 185cm, 70kg

 

종목 골프

 

데뷔 2005년 LPGA 입회

 

스폰서 나이키 골프

 

미국 LPGA에서 활동 중인 골프 선수이다.

한국계 미국인 2세이며, 첫 등장부터 전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 일으키며 여자 타이거 우즈가 될 것으로 의심치 않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흥행을 위한 각종 단체, 스폰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모의 오판으로 어렸을 때부터 혹사 당하였고 이 때문에 선수로서의 기본인 '우승'이라는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먹튀'라는 비난을 받으며 대학 진학 및 졸업을 하였다. 인간적으로 성숙해 진 뒤 2014년에는 메이저 우승 등 프로 입문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었다.

다만 혹사로 인해 부상을 달고 사는 처지가 되어, 이 후에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상황. 한국 출신 선수들을 비롯, 리디아 고 등 해외의 선수들이 LPGA에서 강세를 보이는 지금, LPGA의 주 무대인 미국 측에서는 미셸 위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선수 경력

LPGA 데뷔 전 미국 아마 골프계를 평정하고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미국 국적의 LPGA 스타 플레이어가 적었고 다들 중견급이었기 때문에 미국 LPGA의 차세대 기대주로 기대가 엄청났다. 한국 나이로 14세인 2002년부터 LPGA 투어에 출전을 했으며, 데뷔 첫 해인 2005년 나이키와 소니 등 세계의 유수 기업들이 앞다투어 스폰서가 되었고 1,00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금을 받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는 그 당시 LPGA의 여제였던 아니카 소렌스탐의 계약금보다 약 2배 정도 많은 액수였다. 특히 미셸 위의 경우는 다른 여자 선수들에 비해 월등히 신체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성(性)대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레발기대가 많았고, 본인 또한 기회가 될 때마다 성대결을 시도할 것이라며 그 기대를 한층 더 증폭시켰다.

 

그러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장타는 정말 쭉쭉 나갔지만 문제는 샷의 정확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는 것이었고, 멀리 나간 샷은 페어웨이 또는 그린을 벗어나 벙커에 빠지거나 풀숲으로 들어갔다. 본인 또한 주위의 과도한 기대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면서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5년

10위 권 안에는 여러번 들었으나 우승을 기록하진 못했고, 종종 컷오프 탈락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기대는 서서히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 와중에 지속적으로 남자 대회에 출전하면서 성대결을 펼쳤으나 같은 여자 선수들도 이기지 못하는 마당에 신체 조건과 파워가 월등히 좋은 남자 선수들을, 그것도 프로 선수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2006년

딱 한 번 KPGA투어인 SK텔레콤 오픈에서 컷오프를 통과한 것을 제외하고 나가는 대회마다 컷오프 탈락하면서 "스폰서 때문에 남자 대회 나가는 것 아니냐", "LPGA에서부터 우승이나 해봐라" 등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게다가 남자 대회만 나가면서 여성 골프계에서도 안 좋은 소리가 나왔으며, 골프여제 소렌스탐도 여자 대회 우승부터 하고 나가라는 쓴소리를 했다.

 

2007년, 2008년

그 와중에 부상과 학교 생활 적응 등이 겹쳐 버로우하게 되었다.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지애는 2008년과 2009년 3승을 연달아 거두는 등 LPGA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된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2009년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래도 괜찮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우승하며, 생애 첫 LPGA 우승을 했다. 사실 이전에도 슬럼프에 빠지기 전에는 10위 권 안에 여러번 들었었는데, 문제는 1~3라운드 잘 치다가도 꼭 4라운드만 가면 삽을 푸는 바람에 우승을 놓친 대회에 꽤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승의 맛을 봄으로써 앞으로 더 치고 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0년, 2011년

CN 캐나디언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추가하였고 이후 자주 10위 안에 자주 들면서 현재 세계랭킹 10위까지 올라간 상태다. 학교 생활을 병행하면서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괜찮은 수준이다.

 

2012년

고질적인 문제 퍼팅을 해결하려고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등골 브레이커 괴상한 퍼팅 폼을 시도 중이다. 그렇게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2013 크래프트 나비스코에서는 3퍼팅을 3홀에서나 했다!) 본인은 괜찮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아마추어들에게도 퍼팅 폼의 타산지석쯤으로 언급된다.

 

2013년

 

결국 학교 졸업 이후 잠재력이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치에 비해서는 매우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2014년

고향인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LPGA 3승째를 달성했다. 여전히 퍼팅을 포함한 숏 게임 자세는 그리 좋은 평을 듣고 있지 못하지만 숏 게임 성적 자체는 의외로 상당히 개선되어 종종 상위권에 입상하고 있다. 참고로 2014시즌 독보적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계 뉴질랜드인 리디아 고(한국명 고보경)와 미셸 위는 모두 한국인 부모를 두었으나 한국 국적으로 활동하지는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덕분에 경기를 감상하며 "역시 LPGA는 한국 세상이군"이라 여기던 한국팬들이 스코어보드에서는 성조기와 뉴질랜드 국기를 목격하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정작 한국 국적의 선수들은 아직 1승을 올리지 못했으며 박인비를 제외하면 대부분 개인적 부진으로 인해 분위기가 좋지 못한 상황.박인비도 세계랭킹 1위를 내주긴 했다

6월 23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메이저 대회 US 여자오픈에서 2언더파로 우승하며, 2005년 프로 전향 이후 9년 만에 드디어 커리어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추가하였다. 시즌 2승이자 통산 4승을 달성했다.

 

2015년

 

11위를 한 것 이외에는 10위 이내 근처에도 못가며 부진한 해를 보냈다.

 

2016년

부진이 더욱 심해졌다. 25번 대회 참가해서 12번 컷오프 통과로 컷오프 비율이 절반도 안된다. 최고 성적이 공동 10위 한번 한 것에 그쳤으며, 결국 랭킹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극도의 슬럼프를 겪고 있다.

 

2017년

 

전반적으로 고른 기량을 보이며 8회의 TOP10을 기록했다. 우승은 없었지만 시즌 상금 순위 19위를 기록하며 어느 정도 존재감을 알렸다. 2018년도에 들어서는 첫 두 경기에서 연속 11위를 하며 TOP10급의 기량을 보여 주더니 급기야 3월 4일에 끝난 'HSBC Women's World Championship'에서는 3년 8개월 만의 우승을 거두며 재도약을 알렸다.

 

동타를 기록하며 진행한 18번째 홀에서 세컨샷이 그린에 못 미쳤는데 11m 남겨 놓고 시도한 퍼팅이 성공하면서 감격의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 우승으로 미셸 위는 세계 순위 12위로 겅충 뛰어 오르며 다시금 옛 명성에 걸맞은 활약이 준비 되어 있음을 알려 주었다.

 

개인사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국적의 한국계 미국인이며, 주로 영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도 곧잘 구사하며 의사소통에 크게 지장이 없다. 어렸을 적에는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무한도전 1회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출연 후 부진에 빠졌고 '무한도전의 저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X맨-일요일이 좋다 2006년 5월 21일과 28일 편(133회, 134회)에 출연한 적이 있다. 팀으로는 아니고 그저 X맨 게임중 이슈가 되는 몇 게임에 출연한 것과 당연하지에서 이승기와 로멘스를 꾀한 이후, SBS와 함께 각각 10만 달러씩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곳에 기부를 한 뒤 돌아갔다.

스탠퍼드 대학교에는 조기 전형으로 합격하여 2007년 가을에 입학하였다. 원래 PGA, LPGA 선수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들어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 관례였는데 최근에는 대학을 포기하고 프로 생활에 전념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미셸 위는 학교를 계속 다녀 졸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학교 생활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2008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농구 선수이자 미셸 위의 1년 선배인 로빈 로페즈와 사귄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국 언론과의 각종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며 애국심을 나타내었고, 부모님의 고향인 전남 장흥의 주민들은 후원회를 결성하여 재정지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미국 국적을 선택하며, 한국 국적을 포기하였다.

2011년 발효된 국적법은 선천적복수국적자에게 만22세 전에 국내에서 외국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쓸 경우 복수국적을 인정한다. 국적포기가 미국에서 프로 골퍼로서 활동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은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1989년생인 미셸 위는 시기를 놓쳤다는 의견도 있으나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적용연령이 넘어선 경우에도 본인의 요청이 있으면 심사 가능하며, 미셸 위의 선택은 법무부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이루어진 것으로 완전한 본인의 선택이다.

철저하게 상업화된 LPGA에서 살아남아야할 프로 골퍼로서 스폰서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보호아래 성장하며 정체성이 성립되었으며 앞으로도 미국에서 생활할 것이므로 여러모로 미국 국적을 택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하다는 것이 골프계의 시각이다.

 

애초에 미셸 위의 '고국행'은 스폰서가 주도한 수익성 마케팅의 일환이었으나 국내 언론은 이것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고국 방문'으로 포장하여 보도하기에 바빴다.

이러한 한국 국적 포기 때문에 인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난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특히 스티브 유와 비교하면서 비난을 받고 있다. 여자이기에 '군대 문제'와는 결부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비난의 수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동안 미셸 위를 응원해주었던 일부 팬들은 배신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훗날 미셸 위가 다시 한국에 온다 하더라도 국적 논란 때문에 어떻게 받아 들여질 지는 알 수 없다.

 

플레이 스타일

 

매우 남성스러운, 강한 스윙을 보여주는 선수이다.

 

왠만한 남자보다 뗏장을 넓고 크게 퍼내는 것으로 유명. 그런 강한 스윙으로 어렸을 때는 남자 프로들 못잖은 거리를 날렸으나 성장하기 전의 무리하게 강한 스윙이 몸을 망쳐 지금은 '장타자 계열'에는 속하지만 이를 장점으로 삼기에는 애매한 샷 거리를 보여 준다.

부상이 많아 지자 스윙 자세를 조금씩 변화해 왔는데, 본인에게는 맞을 수 있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억지로 쥐어 짜내는 듯한 스윙이라는 평가와 함께 비판 받는 경우가 많다

 

퍼팅이 매우 약한 편이고 이 때문에 퍼팅 자세와 그립을 여러 번 바꾸었는데 프로 입문 후 최초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14년부터 보인 ㄱ자 퍼팅 자세는 투어에서 가장 유니크하고 유명한 모습이 되었다.

 

우승 경력

 

메이저 우승은 볼드 처리

 

2018년 현재 LPGA 통산 5승

 

2009 LPGA 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2010 LPGA 투어 CN Canadian Women's Open

2014 LPGA 투어 Lotte Championship

2014 LPGA 투어 U.S. Women's Open

2018 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상금 및 순위

 

LPGA

 

2006년 : $730,921(-)

2007년 : $23,024(-)

2008년 : $62,763(-)

2009년 : $918,659(14위)

2010년 : $888,017(9위)

2011년 : $627,936(18위)

2012년 : $158,546(64위)

2013년 : $355,853(41위)

2014년 : $1,924,796(4위)

2015년 : $348,918(49위)

2016년 : $76,109(105위)

2017년 : $930,575(19위)

2018년 : $277,480(2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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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48·사진)이 췌장암 투병 사실을 공개, "포기하지 않고 버티겠다"고 밝혔다.

유상철 감독은 19일 구단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게재했다. 유상철 감독은 지난 10월 황달 증상 등 이상 징후로 정밀 검사를 받았고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유상철 감독은 “분명 받아들이기 힘든 진단을 받았지만 선수와 팀에 피해가 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계속해서 치료를 병행해야 하지만 저는 현장에 있을 때 가장 좋다. 병원에 있으면서 역시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며 "팬 여러분께서 끝까지 우리 인천을 믿고 응원해주시듯이 저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티겠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병마와 싸워 이겨내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인천 구단은 "전적으로 유상철 감독의 뜻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면서 "남은 기간 감독님이 팀을 이끄는데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밝혔다.

유상철 감독의 건강 이상설은 지난달 19일 성남FC전이 끝난 뒤 불거졌다. 성남FC와 원정 경기에서 승리한 뒤 이천수 전력강화실장을 비롯해 선수단이 눈물을 흘리면서다. 이에 따라 인천 구단은 지난달 20일 유 감독의 건강 상황에 대해 "유 감독의 건강이 악화된 건 사실이다. 황달 증세를 보임에 따라 성남전이 끝난 후 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다.

유상철 감독은 현역 시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였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예선 폴란드전에서 강력한 중거리포로 팀의 두 번째 골을 터뜨리며 4강 신화의 주축 멤버로 활약했다. 유 감독은 현역 은퇴 후엔 춘천기계공고, 대전시티즌, 울산대, 전남드래곤즈 등의 지휘봉을 잡았다. 인천유나이티드엔 지난 5월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편지 전문

사랑하는 인천 팬 여러분, 한국 축구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축구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천유나이티드 감독 유상철입니다.

먼저, 항상 저희 인천유나이티드를 아껴주시고 선수들에게 크나큰 성원을 보내주시는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올립니다.


제가 이렇게 팬 여러분께 인사를 올리게 된 이유는, 여러 말과 소문이 무성한 저의 건강 상태에 대해 이제는 제가 직접 팬 여러분께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10월 중순경 몸에 황달 증상이 나타나는 등 이상 징후가 발생하였고, 곧바로 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검사 결과 췌장암 4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저에게 있어 받아들이기 힘든 진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저 때문에 선수들과 팀에게 피해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곳 인천의 감독으로 부임할 때 저는 인천 팬 여러분께 ‘반드시 K리그 1 무대에 잔류하겠다’라는 약속을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남원정을 마치고 병원으로 향하기 전 선수들에게 ‘빨리 치료를 마치고서 그라운드에 다시 돌아오겠다’라는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1차 치료를 마치고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와 선수들에게 ‘나는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 역시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는 걸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제가 맡은 바 임무를 다함과 동시에 우리 선수들, 스태프들과 함께 그라운드 안에서 어울리며 저 자신도 긍정의 힘을 받고자 합니다.

그리고 팬 여러분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남은 2경기에 사활을 걸어 팬 여러분이 보내주신 성원과 관심에 보답하고자 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축구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우리 인천의 올 시즌 K리그 1 잔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팬 여러분께서 끝까지 우리 인천을 믿고 응원해주시듯이 저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티겠습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병마와 싸워 이겨내겠습니다.

저를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만 인사말을 줄이겠습니다. 팬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이 항상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천유나이티드 유상철 감독 드림


췌장암이란 무엇인가?

췌장암이란 췌장에 생긴 암세포로 이루어진 종괴(덩이)입니다. 췌장암의 90% 이상은 췌관의 샘세포에 암이 생긴 선암(腺癌)입니다.
췌장의 종양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 양성인 낭성종양(囊性腫瘍, 낭종)으로 장액성과 점액성 낭성종양, 췌관내 유두상 점액종양, 고형 가(假)유두상 종양, 림프 상피성 낭종 및 낭종성 기형종 같은 간엽성(間葉性) 종양이 이에 속하고, 악성 종양으로는 외분비 종양인 췌관 선암종과 선방세포 암종 외에 신경내분비 종양도 있습니다. 낭성 종양 가운데도 악성이 있으며, 당초엔 양성이던 것이 악성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종류

췌장에 생기는 종양은 수술적 절제로 치료가 가능한 양성 종양에서부터 예후(豫後, prognosis, 병의 상태가 앞으로 어떨지에 대한 전망, 혹은 병 치료 후의 경과)가 매우 불량한 악성 종양 즉 암에 이르기까지 유형이 다양합니다. 그중 가장 흔한 낭성종양(囊性腫瘍), 이른바 물혹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대부분은 악성 아닌 양성이지만 간혹 처음부터 악성이거나 진단 당시에는 양성이었다가 이후 악성으로 바뀌는 것도 있습니다. 낭성종양에는 장액성(漿液性)과 점액성(粘液性) 낭성종양, 췌관내 유두상(乳頭狀) 점액종양, 고형 가(假)유두상 종양, 그리고 림프 상피성(上皮性) 낭종과 낭종성 기형종(畸形腫, teratoma) 같은 종양이 포함됩니다. 악성 종양으로는 췌장 외분비 종양인 췌관 선암종, 선방세포 암종, 그리고 신경내분비 종양 등이 있습니다.

· 췌장 낭성 종양
췌장 종양의 약 1%을 차지하는 췌장 낭성 종양은 최근 그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증상이 없고, 있다고 해도 비특이적이어서 다른 병으로 방사선검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수가 많습니다. 참고로, 생물학이나 의학에서 ‘특이적(specific)’이라는 말은 어떤 작용이나 반응이 특정한 대상이나 조건에서만 선택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비특이적 증상(non-specific symptom)이란 특정 질환의 증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 장액성 낭성종양(serous cystadenoma)
여성에게 많이 발견되고,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 점액성 낭성종양(mucinous cystic neoplasm)
여성에게 흔하며 췌장의 꼬리 부분에 많이 생깁니다. 악성화의 경향이 있으므로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췌관내 유두상 점액종양(intraductal papillary mucinous neoplasm, IPMN)
양성부터 악성까지 다양한 소견을 보이고, 악성인 경우에도 일반적인 췌관 선암종보다 예후가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 고형 가(假)유두상 종양(solid pseudopapillary tumor)
췌장 낭성종양의 5% 이내이며, 대부분 젊은 여성에게 생깁니다. 악성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수술 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 악성 췌장 종양
- 췌관 선암종(pancreatic ductal adenocarcinoma)
가장 흔한 유형의 악성 종양으로, 췌장 종양의 85~90%가량을 차지합니다. 60~80대 남자에게 잘 발생하며, 일부는 담도(膽道)나 십이지장의 폐색과 복통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 선방세포 암종(acinar cell carcinoma)
췌장 외분비 종양의 1~2% 이내로 드문 종양이며, 중 노년의 남자에게 많이 생깁니다.

- 신경내분비 종양(neuroendocrine tumor)
발생 빈도가 인구 10만 명당 1명 이하인 아주 드문 종류로, 대부분은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는 비기능성 종양입니다. 호르몬을 생성하는 기능성 신경내분비 종양일 경우, 그 호르몬의 종류에 따라 인슐린종(腫), 가스트린종, 글루카곤종 등으로 나눕니다. 가스트린(gastrin)은 위산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입니다.
발생 위치에 따라 증상에 좀 차이가 나고, 수술 방법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드물게는 십이지장 유두부(乳頭部)에서 발생하는 유두부암, 또는 담도암이 췌장암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십이지장 유두부는 담관과 췌관이 십이지장으로 열리는 부분입니다.


발생부위

· 췌장의 해부학적 위치와 구조
췌장(膵臟, pancreas)은 길이 약 15cm의 가늘고 긴 장기입니다. 위(胃)의 뒤쪽에 위치해 십이지장(샘창자)과 연결되고 비장(脾臟) 즉 지라와 인접해 있습니다. 췌장은 머리, 몸통, 꼬리의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십이지장과 가까운 부분이 머리(두부)이고 중간이 몸통(체부), 가장 가느다란 부분이 꼬리(미부)입니다. 머리 부분과 몸통 사이를 목(neck)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췌장은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췌장의 선방(腺房) 세포에서 분비하는 췌액(膵液)이 그것입니다(선방 세포란 췌액을 생산하는 세포입니다). 췌장액 췌액은 췌장 안에 그물처럼 퍼져 있는 가는 관들을 통해 췌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주췌관(main pancreatic duct)에 모입니다. 주체관은 췌장의 머리 부분으로 들어오는 총담관(總膽管, 간에서 나간 총간관과 담낭에서 나간 담낭관이 합쳐진, 담즙을 운반하는 관)과 만나 십이지장으로 열리는데, 췌액은 이 경로를 따라 십이지장에 들어가 소화를 돕게 됩니다. 정상 성인의 경우 하루 1~2 리터 정도의 췌액이 분비됩니다.

· 췌장의 기능
췌장에는 췌관을 통해 십이지장으로 췌액을 보내는 외분비 기능과 함께 호르몬을 혈관 내로 방출하는 내분비 기능도 있습니다. 외분비(外分泌)란 땀이나 젖, 소화액 같은 분비물을 도관(導管)을 통해 신체 표면이나 위장관 속으로 배출하는 작용이고, 내분비는 몸 안에서 생성한 호르몬이나 생물학적 활성 물질을 도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몸 속이나 핏속으로 보내는 작용입니다. 췌장 세포의 약 95%는 외분비(췌액 분비)에 관여합니다. 췌액은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과 함께 소장의 첫 부분인 십이지장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섭취한 영양분 중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의 소화 흡수에 관여합니다(담즙은 췌액과 달리 소화효소가 없지만, 주성분의 하나인 담즙산이 지방질을 유화(乳化)하여 소화를 돕습니다). 따라서 췌장에 병이 생기면 소화효소의 배출이 감소해서 음식물 속 영양소를 제대로 흡수 못하므로 영양 상태가 나빠지고 체중이 줄어듭니다.

한편, 내분비와 관련된 췌장 세포들은 작은 무리를 지어 마치 섬처럼 무수히 산재해 있어서 췌장섬 또는 랑게르한스섬(islets of Langerhans, 발견자 이름을 딴 것)이라고 불리는데, 췌장 전체에 이러한 섬이 100만 개를 훨씬 넘게 존재합니다. 여기서는 혈당 조절에 중요한 호르몬인 인슐린(insulin)과 글루카곤(glucagon)을 혈액 속으로 분비합니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고 글루카곤은 높이는 역할을 하므로 이 둘은 당뇨병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우리 몸이 음식물을 통해 얻게 되는 에너지의 소비와 저장에 도움을 줍니다.


일반적증상



췌장암의 증상 중 많은 부분은 다른 췌장 질환이나 소화기계 장애에서도 나타나는 비특이적인 것들입니다. 복통, 체중 감소와 황달 등의 증상이 보이는 환자의 40~70%에게서 췌장암이 발견됩니다. 증상은 종양의 위치와 크기, 전이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부분의 췌장암 환자에게 복통과 체중 감소가 오고, 췌두부암(췌장 머리에 생긴 암) 환자들은 거의가 황달 증상을 보입니다. 췌장암의 60~70%는 머리 부분에 발생하며, 인접한 총담관의 폐쇄와 관련된 증상이 주로 나타납니다. 췌장 몸통이나 꼬리 부분의 암은 초기엔 증상이 거의 없어서 시간이 꽤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부 통증

췌장암의 가장 중요한 증상은 통증입니다. 약 90%에서 나타나지만, 초기의 증상이 애매해서 진료를 받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치(흉골 아래 한가운데에 오목하게 들어간 곳)의 통증이 가장 흔하나, 좌우상하 복부 어느 곳에든 올 수 있습니다. 췌장은 등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흔히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데, 이처럼 요통이 왔을 때는 병이 이미 꽤 진행된 경우가 많습니다. 암세포가 췌장을 둘러싼 신경으로 퍼지면 상복부나 등에까지 심한 통증이 옵니다.
복부의 통증은 췌장 주위로 암이 침윤(浸潤)했다는 신호일 때가 많아서, 통증 없는 상태에서 병원에 오는 환자에 비해 예후가 좋지 않은 편입니다. 침윤(infiltration)이란 암세포가 인접한 조직에 파고드는 것을 말합니다.


황달

황달(黃疸) 또한 췌장암의 가장 흔한 증상 중 하나로, 췌두부암의 약 80%에서 나타납니다. 종양 때문에 총담관이 십이지장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막혀서 담즙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그에 따라 빌리루빈(bilirubin)이라는 물질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할 경우에 발생합니다. 빌리루빈은 수명이 다한 적혈구가 체내 대사 과정에서 파괴될 때 헤모글로빈이 분해되어 생기는 것으로, 담즙 색소의 주성분입니다. 황달이 생기면 소변이 진한 갈색이나 붉은색이 되는데, 황달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소변 색의 이상을 먼저 호소하는 환자가 많습니다. 대변의 색도 흰색이나 회색으로 변하고, 피부 가려움증이 따르며, 피부와 눈의 흰자위 등이 누렇게 됩니다.
췌장의 몸통이나 꼬리에 종양이 생겼을 때는 5~6% 정도에서만 황달이 발생하지만, 암세포가 이미 췌장 전체에 퍼지고 간이나 림프절로 전이되었을 정도로 병이 진전된 상태일 때가 많습니다.
황달이 발생하면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황달과 함께 열이 나면 막힌 담도에 염증이 발생했다는 신호입니다. 이때 막힌 부분을 신속히 뚫어 주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담도를 개통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환자에게 고통을 덜 주고 생리적인 경로로 담즙을 내보내는 내시경 시술이 가장 많이 쓰입니다.


체중 감소
뚜렷한 이유 없이 몇 달에 걸쳐 체중이 감소하는 것은 췌장암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상적인 체중을 기준으로 10% 이상이 줄어듭니다. 원인은 암 때문에 췌액 분비가 적어지는 데 따른 흡수 장애와 식욕 부진, 통증으로 인한 음식물 섭취 감소, 또는 췌장암의 간 전이나 원격 전이 등 여러 가지입니다.


소화 장애
상부 위장관 검사나 다른 소화기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막연한 소화기 증상이 지속될 때가 있습니다. 이는 종양이 자라면서 십이지장으로 흘러가는 소화액(췌액과 담즙)의 통로를 막아 지방을 소화하는 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대변의 양상이 바뀌어, 물 위에 뜨는 옅은 색의 기름지고 양이 많은 변을 보게 됩니다. 암세포가 위장으로 퍼졌을 경우에는 식후에 불쾌한 통증, 구역질, 구토가 옵니다.


당뇨병
암이 생기면 전에 없던 당뇨병이 나타나거나 기존의 당뇨병이 악화되기도 하며, 췌장염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위험요인 부분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당뇨병은 췌장암의 원인일 수도 있지만 종양 때문에 생길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족력이 없이 갑자기 당뇨병이 생겼다면 췌장암의 발생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증상
대변의 상태 외에 배변 습관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으며, 일부 환자에서는 변비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오심, 구토, 쇠약감, 식욕부진 등 비특이적인(즉, 반드시 암을 시사하는 것은 아닌) 증상이 자주 나타나며, 환자의 5% 이하에서는 위장관 출혈, 우울증이나 정서불안 같은 정신장애, 표재성(表在性) 혈전성 정맥염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표재성 혈전성 정맥염은 몸의 표면 가까이에 있는 정맥에 염증이 생기고 혈전이 수반되는 병증입니다.


 

TNM병기

침범부위

0기

Tis N0 M0

상피 내 암종이며 전이가 없는 경우

1기

A

T1 N0 M0

암세포가 췌장에만 국한되어 있고(종양이 2cm 이하) 전이가 없는 경우

B

T2 N0 M0

암세포가 췌장에만 국한되어 있고(종양이 2cm 이상) 전이가 없는 경우

2기

A

T3 N0 M0

암세포가 췌장 이외 장기로 퍼져 있지만 주요 동맥 침범이 없고 전이가 없는 경우

B

T1 N1 M0

암세포가 췌장에 국한되었고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

T2 N1 M0

암세포가 췌장에 국한되어 있고(종양이 2cm 이상)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

T3 N1 M0

암세포가 췌장 이외의 장기로 퍼져 있고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

3기

T4 AnyN M0

암세포가 주요 동맥을 침범했고 국소적으로 진행하여 수술이
불가능함(절제 불가능한 원발성 종양)

4기

AnyTAnyN M1

 

T, N 병기에 상관없이 원격전이가 있는 경우(폐, 복막, 간 등 먼 장기로까지 전이한 경우)

 


유상철 (柳想鐵, 1971년 10월 18일 ~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지도자이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출생으로 응암초등학교, 경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 건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평소에 말이 적고 내성적인 성격과 성씨가 '유'씨인 것에 착안해서 '유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는, 유독 한일전에서 좋은 기량을 발휘해 '한일전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한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대한민국에 큰 영향을 준 선수 중 하나이다. 최전방 공격수부터 최후방 수비수까지 모두 뛸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왼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노력과 훈련을 통해 극복해 냈고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폴란드전에서 기록한 2번째 골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첫 승과 4강 달성에 일조했다.

2009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의 감독직을 맡으면서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2011년 7월 왕선재의 후임으로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첫 프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으나 2012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한 후 팀을 떠났다. 2014년 초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임명된 후 2014년과 2015년 1, 2학년 대학 축구대회에서 2년 연속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2015년 전국체육대회 남자 축구 대학부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2017년 48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도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17년 12월 4일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정식 임명되면서 5년만에 K리그로 돌아왔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학력

서울응암초등학교 졸업
경신중학교 졸업
경신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건국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석사

클럽 경력

1994년 울산 현대에서 데뷔하였다. 주로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활약하였으나 1998년 월드컵이 종료된 이후엔 부진한 공격진에 고심하던 감독에 의해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기용되었으며 그 해 K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1999년 J리그의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옮겨 2000년 J리그 준우승에 이바지한 뒤, 2001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여 활약하였다

2002년 10월 시즌 종료까지 8경기를 남기고 있던 친정팀 울산 현대로 복귀하였다. 팀의 우승을 위해 남은 8경기에서 경기마다 1골을 넣어 전승을 기록하겠다는 말을 남긴 유상철은 이 8경기에서 9골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울산은 우승컵을 들진 못했지만 유상철의 활약으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2003년 6월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다시 이적해 2003년과 2004년 팀의 J리그 2연패에 이바지한 뒤, 2005년 울산 현대로 재복귀하여 그 해 K리그 우승에 이바지하였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앓아 2006년 3월 12일, 상무와의 K리그 홈 개막전을 끝으로 본인이 선수 생활을 시작한 울산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국가대표팀 경력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하여, 1998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 등에 참가하였다. 1994년 아시안 게임 8강전이었던 일본전에서는 동점골을 득점하여 황선홍과 함께 역전승을 합작했다. 첫 월드컵이었던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전 대참패로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어 분위기가 나쁜 상태에서 맞이한 벨기에전에서 후반 26분에 하석주의 프리킥을 받아 동점 골을 넣었다.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1차전 폴란드전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이바지했다. 월드컵에서 통산 2골을 기록했다.
2005년 3월 30일, 우즈베키스탄과의 122번째 A매치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다. 2006년 5월 26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경기 하프타임에 은퇴식을 가져 공식적으로 은퇴하였다.

유상철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들 중 4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이다.

지도자 경력

2009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 초대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2011년 시즌 중반 왕선재 감독이 승부조작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 대전 시티즌의 감독직에 취임하였고, 승부조작 사태로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추슬러 리그 최하위를 면하는데 성공하였다. 총 2시즌 동안 대전에서 감독 생활을 하며 2012 시즌 1부 리그 잔류를 성공시켰지만, 재계약 제안을 받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2014년 초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6년을 끝으로 윤정환 감독이 울산 현대와 결별을 확정 짓자 유력한 후임감독으로 거론되었다.

2017년 8월 최윤겸 감독이 강원 FC 감독직에서 물러나자 유력한 후임감독으로 거론되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2018년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지만 부진하면서 팀의 순위가 강등권까지 떨어지자 8월 16일 결국 구단에 사임 의사를 밝혀 감독직에서 내려왔고, 이후 전남은 강등되었다.

2019년 5월 14일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K리그 베스트 11에 수비수(1994년), 미드필더(1998년), 공격수(2002년) 부분에 모두 선정된 경험이 있고, 1998년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로 최전방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윙백, 중앙 수비수 등 대부분의 포지션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재다능한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비수의 근성과 미드필더의 재간, 스트라이커로서의 결정력을 동시에 갖추었고, 대인마크 능력을 키웠다.

중거리 슛이 뛰어나며,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좀처럼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던 점 또한 유상철의 강점 중 하나이다.

그 외

200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설립하였으며, 2005년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진행하는 '2005 K-리그 유소년클럽캠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은퇴 후 2006년에는 축구 해설자로 데뷔하여 활동하기도 하였고 해피 선데이의 날아라 슛돌이 코너에서 감독(2기부터 5기까지)을 맡기도 했으며, 2008년 MBC 일일연속극 사랑해, 울지마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하였다. 탤런트 김혜정의 조카이기도 하다.

에피소드

유상철은 왼쪽 눈이 거의 실명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히딩크 감독이나 동료 선수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눈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숨긴 채 지내다가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자신의 한쪽 눈을 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힘입어 남들보다 배로 더 힘들게 훈련에 임했으며, 그 후 2002년 FIFA 월드컵 당시에 소중한 1골을 터뜨려 국민들의 꿈을 일으켜 주었다. 이 이야기는 2010년 6월 8일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서 처음 밝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경력

클럽 경력

1994년 ~ 1998년 대한민국 울산 현대
1999년 ~ 2000년 일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1년 ~ 2002년 일본 가시와 레이솔
2002년 ~ 2003년 대한민국 울산 현대
2003년 ~ 2004년 일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5년 ~ 2006년 대한민국 울산 현대

국가대표팀 경력

1994년 아시안게임 대표
1996년 AFC 아시안컵 대표
1998년 FIFA 월드컵 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대표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표
2002년 FIFA 월드컵 대표
2004년 하계 올림픽 대표

지도자 경력

2006년 ~ 2009년 대한민국 KBS N 스포츠 날아라 슛돌이 2기 ~ 5기 감독
2009년 ~ 2011년 대한민국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2011년 ~ 2012년 대한민국 대전 시티즌 감독
2014년 ~ 2017년 대한민국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
2018년 대한민국 전남 드래곤즈 감독
2019년 ~ 대한민국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수상 내역

개인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8년 K리그 득점왕 수상
1998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8년 FIFA 세계 올스타 선정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2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폴란드 (조별리그)
2002년 FIFA 월드컵 올스타 선정
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2002년 험멜코리아-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공격수 부문 선수상 수상
200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4년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수상

클럽

대한민국 울산 현대 호랑이[편집]
K리그 우승 2회 (1996년, 2005년)
K리그 준우승 2회 (1998년, 2002년)
FA컵 준우승 1회 (1998년)
아디다스 컵 우승 2회 (1995년, 1998년)
아디다스 컵 준우승 1회 (2002년)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 1회 (2005년)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1회 (2006년)
A3 챔피언스컵 우승 1회 (2006년)

일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J리그 우승 2회 (2003년, 2004년)
J리그 준우승 1회 (2000년)
일본 슈퍼컵 우승 1회 (2004년)
A3 챔피언스컵 준우승 1회 (2005년)

국가대표팀
2000년 AFC 아시안컵 3위
2002년 FIFA 월드컵 4위


19일 조윤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유상철 감독님은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어떠한 벽도!'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활약 중인 유상철의 모습이 담겨있다.

조윤호의 응원에는 과거 갑산선암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아내의 경험이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윤호의 아내는 갑상선암을 이겨내고 지난해 둘째를 순산했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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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은 지난 23일 인도네시아 감독을 맡게 된 사실을 공개했다. 신 감독은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하진 않은 상태로 오는 26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해 계약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신 감독은 "계약조건 조율은 거의 끝났고 상황이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지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이끈 신태용 감독은 대회 이후 파울루 벤투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이후 휴식을 취하며 향후 거취를 두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프로팀에서의 러브콜도 있었지만 결국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택했다.

신태용 감독이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를 맡게 되면 베트남 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과의 동남아 무대 한국인 감독 대결이 펼쳐칠 예정이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G조에서 함께 속해 있다.

인도네시아는 현쟈 G조에서 5연패를 당해 사실상 예선 탈락이 확정적인 상태다. 인도네시아는 2020년 6월 4일 베트남과 원정으로 예선 최종전을 치를 예정이며. 이 경기를 통해 신 감독과 박 감독은 월드컵 2차 예선에서의 맞대결이 주목이 됩니다.

 

신태용프로필 신태용그는누구인가?

 

이름 신태용 申台龍 | Shin Tae-yong

 

출생

 

1969년 4월 11일 (51세)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리

 

학력

영해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경기대학교 대학원(석·박사)

 

신체 키 174cm | 몸무게 72kg

가족 배우자 차영주 아들 신재원 아들 신재혁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등번호 7번

 

선수

성남 일화 천마(1992~2004)

퀸즐랜드 로어 FC(2005)

 

감독

퀸즐랜드 로어 FC(2005~2008 / 코치)

성남 일화 천마(2009 / 감독대행)

성남 일화 천마(2010~2012)

대한민국 대표팀(2014 / 감독대행)

대한민국 대표팀(2014~2016 /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2015~2016)

대한민국 U-20 대표팀(2016~2017)

대한민국 대표팀(2017~2018)

인도네시아 대표팀(2020~)

기타 JTBC(2019 / 해설위원)

 

국가대표 23경기 3골(대한민국 / 1992~1997)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20년부터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다.

경상북도 영덕군 출생으로 영해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경기대학교 대학원(석·박사)을 졸업하였다. 미드필드에서 공수를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며 '꾀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감각적이고 지능적인 플레이로 패스할 때와 드리블 할 때를 확실히 구분하여 '그라운드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현역시절 포지션은 MF(미드필더)였고 주로 중앙의 공격적인 위치에서 활약했다.

신태용 감독의 부인은 차영주이며 신태용 감독과 한 살 연하로 올해 나이가 50살이라고 합니다.

신태용과 부인 차영주는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는데 부인 차영주는 선수시절붙터 신태용 감독의 열혈 팬이었다고 합니다. 신태용 과 차영주는 1995년 결혼식을 올렸으며 신태용과 차영주 사이에는 자녀 아들 2명이 있으며 신태용 아들 신재원은 현재 서울 FC멤버로 있습니다. 신재원은 1998년 9월16일생으로 22살입니다. 키 183cm 체중 74kg 포지션은 공격수입니다.서동원 감독이 이끌고 있는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17학번으로 재학중에 2019시즌 신인 지명으로 FC서울에 입단하였습니다.

 

현역 은퇴 이후로는 성남 일화 천마의 감독과 K리그 홍보대사, tbs 교통방송의 해설위원 등을 맡았다.

관운(官運)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 초기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 코치를 역임 중이었는데, 23세 이하 대표팀 이광종 감독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A대표팀 코치였던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그리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해서 U-23 대표팀을 8강에 진출시킨다. 그 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던 안익수가 U-20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한, 2016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조별 리그 탈락의 수모를 당해서 갑자기 경질된 뒤 리우 올림픽에서의 지도력을 검증받은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신태용이 이끈 U-20 대표팀은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16강에 진출한다. 그 다음에는 울리 슈틸리케가 월드컵 예선에서 카타르에게 패하며 갑자기 경질되면서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급하게 임명되었다. 좋게 말하면 관운이지만, 실상은 전부다 땜빵이다

 

감독 커리어 내내 조별리그 탈락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성남 일화 감독 시절 한요윤으로 요약되는 폭망의 2012시즌에서조차 신태용의 성남은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다만 A대표팀 감독으로 도전한 러시아 월드컵은 스웨덴전 전까지 5승 3무 1패 13득점 7실점이라는 좋은 결과와 꽤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4-4-2 포메이션 대신 준비가 덜 된 4-3-3이라는 도박수를 던졌다가 실패하는 등 1~2차전에서 패배하면서 여론의 질타도 많이 받았고 토너먼트 진출에도 사실상 실패한 상태였지만, 그런 와중에 마지막 3차전에서 주 포메이션인 4-4-2를 들고 나와 독일에게 승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독일전의 통쾌한 승리로 신태용 감독 재계약론도 힘을 얻었지만 축구협회에서는 김판곤을 감독선임위원장으로 앉히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원했다. 체계적인 국대 시스템의 안착을 위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했고 그 결과 파울루 벤투에게 바통을 넘기게 되었다.

 

클럽 경력

 

성남 일화 천마 (1992~2004)

 

신태용이 K리그에 남긴 발자취는 범상치 않다. 현역 시절 행적을 따라가보면 윤상철[18]이나 울산 현대의 레전드 김현석 못지 않은 기록의 사나이. 참고로 성남 일화 천마에서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절 얻은 우승 트로피의 숫자는 K리그 최다이며 2010년 기준, 여기의 90% 이상이 그가 선수 시절에 얻은 업적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일화 천마에 입단하여 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일화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K리그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한다. 당시 일화 감독은 이름난 빠따 맹장 박종환이었고, 발레리 사리체프, 고정운, 이상윤, 박남열 등 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리더 신태용이 있었다. 특히, 박남열과의 황금 콤비는 지금도 골수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찬양을 받을 정도다.

1995년 신태용은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했고, 리그 MVP를 차지한다. 또한 연말에 열린 1995-1996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마저 제패하며 일화 천마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여담으로 이 해 포항 아톰즈와 벌인 챔피언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꼽는다.

 

1996년 일화 천마는 천안시로 연고지를 이적한다. 또한, 상부와 불화를 겪은 박종환 감독이 해임되고 이장수 당시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았다. 이후 일화는 꼴찌까지 떨어지는 암흑기를 겪는다. 하지만 신태용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이 때는 아예 리그 득점왕까지 먹었는데, 미드필더로 뛰면서 먹은 득점왕인데다가 K리그 MVP를 수상했다. 특히, K리그 MVP를 2회 이상 수상한 것은 2017년 기준 신태용과 이동국(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 단 두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며, 신인상과 MVP, 득점왕을 모두 수상한 적이 있는 경력 역시 신태용과 이동국, 그리고 정조국 단 세 사람만이 보유한 기록이다. 또한, 라피도 컵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을 2번째로(첫 번째는 1986년 정해원) 기록한다. 역시, 그 이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이때까지 신태용은 프로데뷔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다.

1997년 천안 일화는 이장수 감독 대신 벨기에 출신의 레네 감독을 영입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한다.

 

1998년 개인 통산 30득점 30도움을 기록. 이 때 독일 분데스리가의 한자 로스토크의 영입 제의를 받아 유럽에 진출할 듯 했으나 무산이 되었다. 

 

1999년 차경복 감독이 천안 일화를 맡는다. 이때 첫 FA컵 우승을 차지한다.

 

2000년 개인 40득점 40도움을 기록한다. 같은 해에 일화 천마는 연고지를 성남시로 옮겨 다시 한번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2001년 50득점 50도움을 달성한다. 그리고 성남 일화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K리그 3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남긴다. 이때도 성남은 우승 청부사 샤샤를 비롯해, 김대의, 김상식, 김영철, 김도훈, 윤정환, 이싸빅, 이성남 등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다.K리그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는 2003년의 성남 일화 천마를 K리그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로 거론하기도 한다.

 

그렇게 신태용은, 리그 3년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무려 두 번이나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2003년 K리그 최초로 60득점 60도움을 기록한다.

또한 팀이 성남 일화로 재도약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다. 2019년 현재까지 60-6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신태용, 에닝요, 이동국 단 셋 뿐이다. 1979년생 김은중이 50-50 기록을 달성했고, 두 번째 60-60클럽 가입은 2013년에 에닝요가 달성했다. 이어서 이동국이 2014년 7월 20일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K리그 통산 세 번째 60-60 클럽에 가입했다.

2003 시즌에는 K리그 팬들의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장면 2개를 선사한 적도 있다. 하나는 모란(성남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마계대전 경기. 수원의 서포터즈인 그랑블루가 코너킥을 차러 가던 신태용을 향해 경기장에 물병을 던지자, 신태용은 그걸 집어들어서 원샷을 하고 따봉을 선사해 준 일화가 있다. 또다른 경기인 대전 시티즌 원정경기에서는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시키고, 후반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김해운을 대신하여 골키퍼로 활약했다. 비록 두 골을 먹기는 했으나, 팀은 3-2로 승리했다.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성남과 재계약하지 못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성남 일화 천마에서 변변한 은퇴식조차 갖지 못해서 성남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당시 신태용은 성남에서 더 뛰고 싶어서 플레잉 코치도 괜찮고 연봉도 구단측에 맡기겠다는 등 재계약에 의욕적이었는데 불발된건 좀 의문이다.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을 기록했다. 신태용이 남긴 도움 기록은 무려 2015년에 가서야 염기훈이 경신한다.

2017년 현재 K리그 역사상 100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단 8명 뿐이다. 현역 선수로는 이동국(180골), 데얀(141골). 그리고 은퇴한 선수로는 김은중(120골) 우성용(116골), 김도훈(114골), 김현석(110골), 샤샤(104골), 윤상철(101골)이 전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포워드지만, 신태용은 미드필더였다. 사실 꿈의 100골 달성도 가능했지만, 100번째 골은 필드골로 넣겠다는 공약 때문에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또한, K리그 최초 400경기 출장 기록도 신태용이 세웠다. 이 기록은 한동안 최다출장 기록이기도 했는데, 이 기록을 경신한 선수는 김병지 골키퍼로 2006년에 갱신했다. 이후 필드 플레이어로는 2007년에 김기동이 기록을 깼으며, 최고 출장 기록은 김병지]가 보유하고 있다. 필드플레이어 가운데 최고 출장 기록, 최고령 골, 최고령 도움은 김기동이 가지고 있다.

 

퀸즐랜드 로어 FC (2005)

그리고 2005년 호주로 떠나 퀸즐랜드 로어 FC에 입단해 1경기에 출장한 후, 발목 부상을 입고 그 해 9월에 완전히 은퇴를 선언하며 곧바로 퀸즐랜드 로어 FC의 코치가 되었다. 이때 알게 된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를 나중에 성남 감독으로 부임한 뒤 직접 찾아가서 영입했다. 그리고 선발 수비수 겸 주장으로 중용했다.

 

그가 코치를 맡을 당시 2006년 퀸즐랜드에 갓 부임한 감독이 프랭크 파리나였는데, 언어 문제와 지도 방향에 이견을 보여 그다지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파리나 감독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그리고 파리나 감독이 리우 올림픽 조별 리그에서 피지 축구올림픽대표팀을 맡으면서 U-23 사령탑으로 서로 재회하게 됐다. 결과는 한국이 8-0으로 대승했다.

 

국가대표 경력

 

다만, 이렇게 화려한 클럽 커리어에 비해 대표팀 커리어는 아쉬움이 남는다.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거친 엘리트 선수였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K리그 골수팬이 아니고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A매치에서 통산 23경기 3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K리그에서 신태용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아쉬운 기록이다.

 

1992년에 아랍에미리트와의 평가전을 통해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지만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는 뛰지 못했고, 국가대표로서 유일하게 참가했던 메이저 대회인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8강 이란전의 2:6 참패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신태용의 이름이 포함되는 일이 없었다.

차범근 감독 체제에서 1997년 상반기까지는 뽑혔으나 월드컵 최종예선 때부터는 제외되었고, 이후 허정무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 때에도 소속팀과 함께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도 대표팀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사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가대표 축구의 조직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당시 신태용은 30대 중반의 노장 선수였음에도 여전히 K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혹자들은 신태용이 레전드급 선수이면서도, 기본기나 퍼스트 터치와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말들도 한다. 또 당시 한국 축구의 플레이메이커는 홍명보로 고정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K리그에서 뛰어난 미드필더라고 해도 홍명보와 궁합이 맞지 않다면 국가대표에서 미드필더로 뛸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신태용은 윤정환과 함께 그런 류의 대표격인 선수였고, 그러다 보니 국가대표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도자 경력

 

2004년 은퇴 후, 퀸즐랜드 로어 FC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8년 12월 1일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친정 팀 성남 FC의 감독 대행으로 첫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2009 K-리그에서 시즌 초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걱정을 샀지만 리그 후반기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성남을 K리그에 4위에 안착시켰다. 이후 상위 6개 구단이 진출하는 플레이오프격인 K리그 챔피언십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FC와 전남 드래곤즈, 포항 스틸러스를 연이어 격파하며 정규 리그를 1위로 마친 전북 현대 모터스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홈에서 벌어진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선 0-0으로 무승부를 거뒀으나 원정에서 치러진 2차전에서는 1:3의 스코어로 완패를 당해 성남의 우승은 좌절되었다. 이 때 출장 정지로 벤치에 앉을 수 없게 된 경기가 아님에도 관중석으로 올라가 무전기를 통해 선수들을 지휘해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른바 '무전기 매직'이 화제가 되었다.

2010년 2월 성남 FC의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시즌 초 예산 감축으로 2009 시즌보다 팀의 여건이 더 안 좋아진 상황에서 AFC 챔피언스리그와 리그를 병행해야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많았으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리그에서도 꾸준한 상위권의 성적을 내어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AFC 챔피언스리그 16강과 8강, 4강에서 각각 감바 오사카, 수원 삼성 블루윙즈, 알샤바브를 꺾고 팀을 결승전에 진출시켰으며, 3명의 주전 선수가 결장한 결승전에서 조브 아한 FC를 3-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신태용 감독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선수-감독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2011년에는 리그에선 상위권이 아니었으나, FA컵에서 숙적 수원 삼성 블루윙스를 꺾고 팀에 2번째 FA컵을 안겼다.

2012년 주요 선수가 다른 팀으로 간 상태에서 대신 받아온 선수들이 팀에 적응하지 못하며 내내 마찰이 있었다. 12월 8일 2012 시즌을 리그 12위로 마감한 성남은 신태용 감독의 사임을 공식 발표하였다. 하지만 박규남 단장의 사표 제출 지시에 따른 타의에 의한 사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경질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2014년 8월 18일 베네수엘라 대표팀과 우루과이 대표팀과의 A매치 평가전을 앞두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 코치이자 사실상의 감독대행으로 발탁되었다. 지도자로서 A매치 데뷔전이기도한 베네수엘라 전에서는 전방부터 압박해 들어가는 공격적인 전술로 3 대 1 승리라는 값진 성과를 올렸다. 이후 대표팀의 새로운 외국인 감독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선임되면서 신태용은 정식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확정되었다.

 

이광종 감독이 지병으로 하차하고 최문식 코치가 감독대행직을 수행하고 있었던 대한민국 올림픽대표팀 감독에 2015년 2월 5일자로 부임했다. 임기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으나, 8강전에서 온두라스에 패배하여 2회 연속 메달 획득에는 실패하였다. 그 이후로 안익수 감독의 후임으로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감독직에 취임하였다. 자국에서 열린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전에서 포르투갈에게 패배하였다.

2017년 7월 4일 울리 슈틸리케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이란전서 데뷔전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0:0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9월 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0 : 0으로 비겨 총 4승 3무 3패(승점 15점)으로 조 2위를 차지해 간신히 2018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대한민국은 2018년 FIFA 월드컵에서 전 대회 우승국인 독일과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 그리고 지역예선에서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를 탈락시키고 올라온 돌풍의 팀 스웨덴과 함께 F조에 속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은 1차전에서 스웨덴에 0 : 1로 무기력하게 패배하였고 2차전에서 멕시코에마저 1 : 2로 패배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다. 마지막 3차전에서 전 대회 우승국인 독일을 2 : 0으로 이기는 이변을 일으키며 다시 16강 진출의 불씨를 되살렸으나 같은 시각 멕시코가 스웨덴에 0 : 3으로 대패를 하며 결국 1승 2패의 전적으로 조 3위에 그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독일을 이기는 이변을 일으킨 덕에 축구팬들로부터 어느 정도 재평가를 받았고 본인 역시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독일을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킨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월드컵 종료 후 계약만료로 감독직을 내려놓았고, 그의 후임으로 파울루 벤투가 선임되었다.

 

이후 2019년 12월 23일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사이먼 맥메너미 감독 후임으로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내정되었다.

 

해설가 경력

성남의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2013년 6월에 열린 2013 툴롱컵 국제대회를 통해 JTBC에서 축구 해설위원으로 데뷔하였다. 9월에는 K리그 홍보대사로도 임명되었으며 2014년 3월부터는 tbs 축구 해설위원으로 발탁되어 K리그 클래식 중계를 담당하였다.

 

이후 2019년 1월에 열리는 2019년 AFC 아시안컵을 중계하기 위한 JTBC의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경력 목록

 

클럽 경력

1992년 ~ 2004년: 성남 일화 천마

2005년: 퀸즐랜드 로어 FC

 

국가대표팀 경력

1987년 FIFA U-16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1995년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국가대표

1996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지도자 경력

2005년 ~ 2008년: 퀸즐랜드 로어 FC 코치

2008년 ~ 2012년: 성남 일화 천마 감독

2014년 ~ 201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5년 ~ 2016년: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년 ~ 2017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년 ~ 2018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수상 내역

 

선수

성남 일화 천마K-리그 우승 6회 (1993년, 1994년, 1995년, 2001년, 2002년, 2003년)

K-리그 준우승 1회 (1992년)

FA컵 우승 1회 (1999년)

FA컵 준우승 2회 (1997년, 2000년)

아디다스 컵 우승 2회 (1992년, 2002년)

아디다스 컵 준우승 2회 (1995년, 2000년)

하우젠 컵 우승 1회 (2004년)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1회 (2002년)

대한민국 슈퍼컵 준우승 1회 (2000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1996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97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2004년)

아시아 슈퍼컵 우승 1회 (1996년)

개인1987년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수상

1992년 K-리그 신인상 수상

199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3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5년 프로축구 골든볼 수상

1995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6년 K-리그 득점왕 수상

1996년 디아도라 프로축구 대상 수상

1996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0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1년 K-리그 MVP 수상

2001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2년 험멜코리아 - 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선수상 미드필더 부문상 수상

200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3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감독

성남 일화 천마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2010년)

FA컵 우승 1회 (2011년)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1회 (201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EAFF E-1 풋볼 챔피언십 우승 1회 (2017년)

 

코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AFC 아시안컵 준우승 1회 (2015년)

EAFF 동아시안컵 우승 1회 (2015년)

 

클럽기록

 

클럽

리그

리그컵

대륙

총계

시즌

클럽

리그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대한민국

리그

대한민국 FA

리그컵

아시아

합계

1992

일화 천마

K-리그

18

7

-

5

2

-

23

9

1993

28

5

-

5

1

-

33

6

1994

23

7

-

6

1

?

?

29

8

1995

26

6

-

7

0

?

?

33

6

1996

천안 일화 천마

24

18

?

?

5

3

?

?

29

21

1997

7

0

?

?

12

3

?

?

19

3

1998

7

1

?

?

17

2

-

24

3

1999

25

4

?

?

10

5

-

35

9

2000

성남 일화 천마

27

7

?

?

7

2

?

?

34

9

2001

27

5

?

?

9

0

?

?

36

5

2002

26

4

?

?

11

2

?

?

37

6

2003

38

8

2

0

-

?

?

40

8

2004

20

4

0

0

11

2

?

?

31

6

오스트레일리아

리그

리그컵

오세아니아/아시아

합계

2005

퀸즐랜드 로어

A-리그

1

0

 

 

 

 

 

 

 

 

합계

대한민국

296

76

 

 

105

23

 

 

401

99

오스트레일리아

1

0

 

 

 

 

 

 

 

 

총 계

297

76

 

 

 

 

 

 

402

99

 

국가대표팀 득점

 

일자

장소

상대팀

득점

결과

대회

1996년 4월 30일

텔아비브

이스라엘

1골

5-4

친선 경기

1996년 8월 11일

호찌민 시

베트남

1골

4-0

1996년 AFC 아시안컵 예선

1996년 12월 16일

두바이

이란

1골

2-6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전적

 

2014 2 1 0 1 3 2 +1 50% 이동국 (2) (감독 대행)
2017 9 3 4 2 13 12 +1 33.33% 손흥민, 김신욱 (3)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우승)
2018 5 2 1 2 7 7 0 40% 김신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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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프로필 이상화그는누구인가?

이상화(李相花, Lee Sanghwa)

 

본관 경주이씨

 

생년월일 1989년2월25일(31) 서울특별시동대문구 장안동

 

학력

서울은석초등학교

휘경여자중학교

휘경여자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신체 165cm 62kg A형

 

종목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주종목 500m

 

소속사 본부이엔티

 

종교 불교(법명 정토심)

가족 아버지 이우근 어머니 김인순 오빠 이상준 배우자 강남

 

선수활동 2007~2019년

 

은퇴 2019년

 

 

이상화(李相花, 1989년 2월 25일(31) ~ )는 대한민국의 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다. 2010년 동계 올림픽 여자 500m 금메달 획득, 2013년 여자 500m 세계신기록 경신 등의 활약으로 세계적인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다. 2014년 동계 올림픽 여자 500m 경기에서 1, 2차 레이스 합산 74초 70으로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우며 대한민국 남녀 스피드스케이팅을 통틀어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였다.

 

선수 경력

 

어린 시절

비슷했던 연배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 이승훈 등이 있는데 이들 중에서도 먼저 주목받은 엘리트 유망주였다. 휘경여자중학교 시절부터 대표 선수가 되어 기량을 인정받았고, 이때부터 이미 국내 여자 단거리 정상에 올라섰다. 이미 중학교 때 고교 선수들보다도 기록이 더 잘 나왔다. 2004년 3월 휘경여자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005-06 시즌

만 16세가 된 2005년 3월, 종목별 세계 선수권 대회 500m 3위에 오르면서 세계 무대에 일찌감치 이름을 알렸다.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차츰 권위를 인정받게 된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제갈성렬 이후 두 번째 입상이며, 이강석이나 이규혁보다 먼저 메달을 딴 것이다. 휘경여자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500m에 출전하여 5위에 올랐다.

 

2006-07 시즌

한국체육대학교 입학을 확정지은 이상화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2007년 1월, 2007 토리노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도 500m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래서 한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올림픽 메달을 딸 가장 유력한 선수로 일찌감치 주목한 선수였다.

 

2007~09 시즌

꾸준히 성과를 내어 월드컵 종합 3위를 기록하는 등 한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2009-10 시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릴 당시 대한민국 신기록을 2번이나 경신한 데다가 2010년 1월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기에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받은 다크호스 모태범에 비하면 훨씬 메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여자 대회 전날 모태범이 금메달을 먼저 획득했다. 아무튼 이상화는 이 시즌 기록이 좋아서 출발 순서도 우승 후보에게 주어지는 마지막으로 배정되기는 했지만, 당시 세계기록 보유자 독일의 예니 볼프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았기에 메달을 따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충분하리라는 예측이었다.

2010년 2월 17일 열린 500m 경기에서 1차 1위, 2차 2위를 차지하여 합산 결과 예니 볼프를 따돌리고 국내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1차 시기에는 본인의 출발 실수로 인해 재출발하면서 볼프의 컨디션이 말린 행운이 따랐고, 2차 시기에는 초반이 살짝 늦어 기록은 예니 볼프보다 조금 뒤졌으나 막판 스퍼트로 만회하며 1차와 2차 합계로 예니 볼프를 앞서 금메달을 따는 데 성공했다. 훈련 때 스쿼트로 120kg의 바벨을 드는 엄청난 체력이 밑바탕이었다. 그리고 우승 당시 보인 눈물과 미모, 그리고 훈련으로 다져진 허벅지로 인해 일약 '얼짱 스타'로 떠올랐다.

 

2010-11 시즌

월드컵에서 예니 볼프 등과 경쟁하며 볼프를 몇 차례 이기기도 했으나 월드컵 종합 성적은 볼프에 이어 2위였고 세계 종목별 선수권에서도 볼프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이 시즌에 가장 주목을 받은 경기인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는 중국 선수들에도 뒤져 동메달을 받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시즌이 되었다.

 

2011-12 시즌

재기에 성공하여 이 시즌에 월드컵에서는 나이가 들어 다소 노쇠해진 예니 볼프 대신 중국의 위징이 등장하여 그와 우승을 주고받으면서 결국 위징에게 월드컵 우승은 내줬지만, 2012년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에서는 500m 우승을 차지하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여자 선수가 우승한 것은 이상화가 사상 최초이며, 아직까지도 한국의 유일한 여자 우승 선수이다.

 

2012-13 시즌

ISU 월드컵 시리즈에서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1월 20일(현지 시각, 한국 시각으로는 21일 새벽), 캐나다 캘거리에서 치러진 레이스에서는 36.80의 세계 신기록까지 작성하면서 대한민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최초로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다. 이때까지 월드컵에서 8연속 우승하며 이 시즌 월드컵 우승을 거의 확정짓고, 예전에 경쟁하던 예니 볼프나 위징 등을 넘사벽으로 뛰어넘으며 여성 단거리 부문의 황제로 등극했다. 그 다음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13년 스프린트 선수권에서 다시 기록 경신이 기대되었으나 기록을 깨지는 못했고, 500m 1차 레이스 3위, 2차 레이스 1위를 기록하며 500m 종합 1위를 차지했지만 1000m에서 다소 낮은 기록을 내어 전체 3위를 차지하였다.

2013년 3월 10일 끝난 월드컵 500m에서 8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모두 9차례 우승하여 실력을 과시하며 종합 1055점으로 예니 볼프를 200점 이상 차이로 따돌리고 종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때 이상화는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2번 불참했는데, 예니 볼프와 왕베이싱은 12차례 모두 참가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성적이다.

 

밴쿠버 때까지만 해도 예니 볼프-왕베이싱-이상화의 팽팽한 삼각 구도였으나 이 시즌에는 이상화가 혼자 판을 씹어먹었다. 그야말로 2010년대 '빙속 황제'로 세계적 업적을 쌓고 있는 중이다. 여자 선수로는 두 번째로 36초대 기록을 찍었다.

2013년 3월 24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3년 ISU 종목별 세계선수권 스피드 스케이팅 대회 500m에서 1차 시기와 2차 시기 모두 압도적인 격차를 내며 1위를 차지해 종합 1위에 올라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역시 전년도 대회와 이해 대회에서 나란히 우승한 모태범과 함께 대한민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이 대회를 2연패 한 것이었다. 특히 이 대회가 열린 바로 그 장소에서 1년 후 동계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2013-14 시즌

 

ISU 월드컵 1, 2차 대회는 기록이 잘 나오기로 유명한 캐나다 캘거리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차례로 열려 또다시 세계 기록 경신 여부가 관심을 모았다. 결국 2013년 11월 9일 (현지 시각, 한국 시간으로는 11월 10일),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 1차 대회 500m 2차 레이스에서 36초 74로 자신의 세계 신기록을 깼다. 2013년 11월 15일 (현지 시각, 한국 시간으로는 11월 16일),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m 1차 레이스에서 36초 57로 세계 기록을 경신하였다. 2013년 11월 16일 (현지 시각, 한국 시간으로는 11월 17일), 솔트레이크에서 계속 열린 2차 대회 500m 2차 레이스에서 '36초 36으로 자신의 세계기록을 1일 만에 다시 경신하였다.

2013년 11월 29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2013-2014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 500m 1차 레이스에서는 감기 몸살로 컨디션이 엉망인 상황에서도 또 1위를 차지하며 5연속 우승을 기록했고, 다음 날 열린 2차 레이스에서도 우승하며 6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12월 7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1차 레이스에서도 우승하여 7연속 우승을 기록한 후, 2차 레이스는 올림픽 전까지 휴식과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포기했다. 그리고 올림픽 이후에도 쭉 불참하면서 2013-14 월드컵 최종 순위는 4위가 되었다. 총 12회 레이스 중 5회를 빠지고도 4위에 올랐다.

 

한동안 휴식을 취하다가 2014년 1월에 국내 대회에 출전해 우승한 후 2월 1일 네덜란드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점검을 마쳤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대회 개막 전 여자 500m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대회 개막 시점에서 2년 전부터 500m 부문의 독재 체제를 구축한 그녀를 넘을 대항마가 딱히 보이지 않을 정도이며, 오직 현지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컨디션을 끌어 올렸는지가 관건이었다.

2014년 2월 11일 현지 시간 16시 45분부터 치러진 스피드 스케이팅 500m 1차 시기에서 마지막 조인 18조에 배정돼, 바깥 라인에서 경기를 시작해 37초 42로 중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여기서 인코스에서 달리는 미국의 브리트니 보 선수를 아웃코스에서 추월하는 위엄을 보였다. 정작 본인은 1차 레이스를 끝낸 후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지었고 2차 시기에서도 상대인 중국의 왕베이싱 선수를 시종일관 따돌리며 37.63만 나와도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을 성적을 37초 28까지 끌어올렸고, 1, 2차 합산 기록에서도 올림픽 기록을 새로 세우면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로써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이어 500m 부문 2연패에 성공했으며 신기록도 갈아치웠고 한국에 소치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1차 시기 13조에서 독일의 유디트 헤세 선수가 출발 실수로 실격당하는 등, 스타트 심판의 총 쏘는 시점이 평소보다 늦어 걱정되었으나 이런 점은 모두 기우였다.

또한 그녀는 동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2연패를 거둔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보다 앞선 선수는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 1992, 1994년 3연패)와 캐나다의 카르리오나 르메이돈(1998, 2002년)이며 한국 선수로는 물론 아시아 선수로 스피드 스케이팅 올림픽 2연패를 이룬 것은 처음이다.

 

여담으로, 그녀의 플라워 세레모니 때 KBS에서는 이상적인 상황에서 받는 꽃이라는 썰렁한 드립을 날렸다.

 

한국 시간 2014년 2월 14일에 열린 1000m에서는 1분 15초 94의 기록으로 종합 12위에 올랐다. 본인 경기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따라다니며 응원해서,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이상화의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잡혔다.

 

2014-15 시즌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1차 월드컵 500m 1차 레이스에서 38.07을 기록, 월드컵 시리즈 500m 9연속 금메달이라는 위업을 세웠다. 11월 16일 열린 2차 레이스에서는 37.92를 기록, 연속 금메달 횟수를 10번으로 늘렸다. 또한 2010년 예니 볼프가 세운 트랙 레코드(38.03)를 갈아치웠다.

11월 21일 한국 태릉에서 열린 2차 월드컵 500m 1차 레이스에서 38.18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하며 연속 금메달 행진은 10회로 끝났다. 하지만 11월 22일 열린 2차 레이스에서 37.99로 바로 1위를 차지하며 한국에서 오랜만에 열린 월드컵 무대를 우승으로 장식하였다.

 

12월 5일~7일 열린 3차 월드컵에서 500m 1차 레이스에 37.87의 개인 시즌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하는 등 역시 이 대회에서도 2번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1000m에서도 5위를 차지하며, 경쟁력이 있음을 보였다.

다음 4차 월드컵에서는 500m 1차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2차에서 동메달로 밀렸으며, 이후 남은 시즌 대회에서는 다소 부진했다.

 

2달 만에 열린 6차 월드컵 500m에서는 1차에서 5위로 밀리며 여러 해 만에 월드컵에서 메달권에 들지 못했고, 2차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그리고 2015년 2월 치러진 2015 종목별 세계 선수권 500m에서 5위로 메달을 따지 못하며 역시 여러 해 만에 이 대회에서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 이후 휴식과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이후 남은 시즌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 피로가 누적되어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것이 부진의 원인이며, 부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2015년 2월, 시즌을 정리한 이상화는 5월에 전지훈련차 캐나다로 출국하여 새 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2015-16 시즌

2015년 10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흘러내린 팔목 밴드를 빙판에 던져 실격 당했다.

 

쇼트트랙 5차 월드컵에 자격 없음 이라는 공지가 날아왔다고 한다. 피로 누적을 이유로 전국체전에 불참하기로 하고 그렇게 통보했는데, 규정이 바뀐 탓에 그런 듯하다.

2016년 2월 러시아 콜룸나에서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2016년 초 수술이 아닌 재활을 선택하고 계속 출전하고 있다. 월드컵 1차-2차-3차 레이스 각각 은-은-동메달을 차지했다. 이전 같은 굇수 기록들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오히려 본인은 계속 최상의 자리를 지키다가 도전자 입장이 되니 홀가분하다고 하였다. 워낙 자기 관리를 잘 하다 보니 크게 걱정하는 팬들도 없는 편. 오히려 컨디션과 몸상태가 확실히 좋지도 않고 전성기에서 내려올 나이임에도 저 성적을 유지하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이후 월드컵에서는 꽤나 부진했다. 부상으로 인해 컨디션과 경기 감각이 크게 떨어져 있었고 경기 중 넘어지기도 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후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하고 재활에 힘썼다.

 

2016-17 시즌

2017년 2월에 강릉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재기를 노리며 500m에 출전했다. 37.48의 이번 시즌 최고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막판 코너 부분에서 살짝 실수한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재활에서 돌아와서 상위권 실력임을 입증해 보였으니 의미있는 경기였다.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는 고다이라 나오 다음으로 500m 은메달을 차지했다.

 

2017-18 시즌

 

500m와 1000m 진출을 확정지었으나 500m에 집중하기 위해 1000m 진출을 포기했다. 하지만 500m에선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 이어 다시 고다이라 나오에게 밀려 아쉽게 500m 은메달을 차지했다. 자신의 3번째 올림픽에서 아시아 스케이터 최초로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올림픽 3연속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본 최강 스케이터 고다이라 나오는 평창에서 첫 금메달을 받았다.

초반 100m 기록은 고다이라 나오 선수보다 0.06초 더 빨랐다. 첫 코너를 나오고도 0.2초가량 빠르게 질주했으나 상대 선수인 고 아리사를 뒤에서 바짝 따라가다 자신이 들어가야 하는 인코스를 살짝 늦게 들어갔고 마지막 코너링 중에 스탭이 꼬이는 실수까지 나오며 후반에 기록이 뒤쳐졌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에 대해 물어보자, 본인도 기록이 빠른 것을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렇게 빠르게 타본 적이 없어서 코너를 돌다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서 실수가 나왔다고 대답했다. 코너에서 실수가 나오지 않았다면 금메달의 가능성이 높았다. 인터뷰에서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가 있었는데 그것만 아니였더라면..근데 뭐 이제 다 끝났으니까 괜찮아요." 라고 말한 걸로 보아 코너링에서 실수없이 잘 주행했다면 어땠을지 본인도 아쉬웠던 모양이다. 해설위원인 제갈성렬이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분석해 놓았다. 초반기록부터 고다이라 선수보다 늦었다면 이렇게까지 아쉬워하지 않았을 텐데 고다이라 선수보다 기록이 좋았던 구간이 있기에 본인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더 아쉬웠던 경기가 되었다.

 

김연아도 이상화의 경기를 보고 울컥했다고 한다.

 

2018년 500미터 은메달을 차지함으로서, 2009~2018년까지 10년간 세계선수권 및 올림픽에서 한 종목으로 5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 2번의 3위를 차지했는데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5회 이상 우승 및 8회 이상 탑3 안에 든 선수는 다음과 같다.

 

아니 프레싱어(2000~2009): 1500m, 6회 우승, 2회 준우승

이상화(2009~2018): 500m, 5번 우승, 2회 준우승, 2회 3위

마르티나 사블리코바(2009~2018): 5000m, 9회 우승, 1회 준우승

 

이상화 선수 경기당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빙상연맹 고위관계자가 선수단을 방문했다. 선수단은 훈련등 일정으로 새벽 2~3시에 잠들기 때문에 점심시간 즈음에 일어나는데, 빙상연맹 고위관계자가 아침 9시에 방문하여 아직 자는 선수들을 깨우는 일이 발생한 것. 뛰어난 기량을 보이던 이상화가 은메달을 따서 아쉬움을 남긴 상황에서 고위관계자의 이러한 행동이 선수들의 컨디션에 악영향을 준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기사 이에 대해 빙상연맹 측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고 해명했으며 이상화도 이 해명에 동조했다.

 

은퇴

평창올림픽 출전을 기점으로 은퇴할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지만, 경기 이후 기자회견에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도전을 고려해 보겠다고 하였다. 현재 세계 최고이자 경쟁자인 고다이라 나오가 자신보다 3살 많음에도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음을 보고 많은 자극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2018–19 시즌에는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고, 2019년 5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공식 은퇴식 및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선수로 참가할 수 없는 대신 해설위원이나 코치로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스타일

 

괴수급 기록만큼이나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하다고 한다. 조선일보에서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슬럼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답했다. "저는 슬럼프가 자기 내면에 있는 꾀병인 것 같아요. 마음 속 어딘가 하기 싫은 구석이 있는데, 슬럼프라고 핑계 대면서 계속 안 하는 거죠. 저는 반대로 계속 도전했어요. 끊임없이. 혼자 야간 운동을 한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다음 경기에서 성적이 또 안 좋아요. 그래도 주저하지 않고 또 달렸어요. 또 안 좋아요. 그런데 아주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는 게 보여요. 아주 미세하게. 그런 변화는 자기밖에 모르는 거예요. 그 미세한 작은 발전을 토대로 달렸어요. 계속..."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다른 스포츠 스타들에 비해 광고 촬영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소치 동계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이에 대한 인터뷰를 받자 "광고를 촬영하면 훈련 하루를 못 한다."고 대답했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딴 500m 금메달이 깜짝 메달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꾸준히 노력해왔다고 한다. 긴장감과 심리적인 압박은 경기로 풀었고, 빠른 출발을 위해 4kg를 감량하고 모태범과 함께 출발 훈련을 하며 남자부 성적 수준으로 기록을 끌어올리는 등 놀라운 정신력과 강심장을 소유한 선수다.

 

자신이 경기 중 가장 아름답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손톱이라고 하며 네일아트를 화려하게 한다.

 

기타

 

•허벅지 둘레가 약 23인치라고 한다. 마른 여성의 허리 둘레와 맞먹는 수준이며[16], 경기 중 사용하는 선글라스를 허벅지에 끼워 고정시킬 수 있을 정도이다. 꿀벅지를 넘어섰다 흔히 말하는 대두들의 머리 둘레가 23인치가량이다.

 

•"빙상의 신세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살 아래 동생인 신세경 본인도 인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닮았다

 

•레고덕이기도 하다.

 

•힐링캠프 출연 당시 이경규가 나이 많은 남자 동료 선수들을 형이라고 부를 것 같다고 장난삼아 말하자 "어떻게 형이라고 불러요? 저 천상 여잔데. 당연히 오빠라고 부르죠."라고 힘주어 반박했다.

 

•이상화의 오빠 이상준이 개그맨 최효종의 절친이었다고 한다.

 

•기록 단축을 위해 스케이트를 신을 땐 항상 맨발을 고수한다고 한다. 덕분에 발바닥에 굳은살이 덕지덕지 박혔다.

 

•김연아와 매우 깊은 친분이 있다. 두 사람 모두 200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차세대 빙상 유망주로 기대받기 시작했고, 이 무렵엔 같이 인터뷰도 하고 운동도 하며 우정을 쌓았다. 이래저래 벌써 10년이 넘은 친분이니 절친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종목은 다르지만 같은 빙상 선수이기도 하고.

 

•쇼트트랙 선수인 조해리와도 매우 깊은 친분이 있다. 2002년 태릉선수촌에서 막내로 만나면서 친해졌으며 올림픽 때 경기가 있는 날 같이 아침밥을 먹으며 긴장을 풀어달라고 조해리에게 부탁을 했으며, 조해리는 경기 전날 금메달 기운을 받기 위해 이상화의 금메달을 빌렸다고 한다. 그 결과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에서 여자 대표팀은 중국에게 당한 4년 전 분패를 완벽하게 설욕했으며 이날 박승희의 언니인 박승주와 같이 응원을 갔다.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19] 선수와도 친하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대회에서 보며 친했다고 하며, 평창 올림픽 500m가 끝나고 난 직후 고다이라 선수가 한국어로 "잘했어" 하고 위로를 해 주었고 손을 잡고 같이 경기장을 돌았다. 이미 서로의 전통음식을 교환할 정도로 깊은 친분이 있다고 한다. 또한 2017년에 만나 고다이라에게 "평창 이후 베이징 올림픽에도 나갈 것이냐"고 물었더니, 고다이라가 "네(이상화)가 출전하면 나도 나가겠다"라고 대답하며 웃었다고 한다. 서로를 선의의 경쟁자이자 친구로서 인식하는 듯하다.

 

•불교 신자로 정토심(淨土心)이라는 법명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상화 선수가 나온 은석초등학교 역시 조계종 종단에서 세운 불교계 학교이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아쉽게도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최선을 다한 경기 결과에 승복하면서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고 또한 함께 경쟁을 펼쳤던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 선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 아끼고 포용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불교 신자들의 전화와 문자가 불교방송의 각종 프로그램에 쇄도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이상화 선수의 이름(相花)을 빗대서 "꽃 중의 꽃, 화엄 같은 꽃을 보고 있다는 의미에서 이상화 선수는 더욱 감동입니다"라는 찬사를 보낸 사람도 있었다고. 다만 이상화 선수의 은메달 수상을 CBS 임종률 기자가 "神은 이상화의 무릎을 빼앗고 日 고다이라를 내놨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낸 것에 임종률 기자의 소속을 들먹이며 일부러 악의적으로 노리고 저런 제목을 뽑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존재한다.임종률 기자는 그 직후에 베이징 올림픽에 도전할 거냐고 이상화 선수에게 질문했고, 이상화 선수가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고 지금은 일단 쉬고 싶다는 의미로) "그건 몰라요."라고 대답한 것을 전하는 기사 제목을 '눈물 훔친' 이상화, 마지막 한마디 "베이징? 아몰랑"이라고 냈다가 지금 조롱하는 거냐는 누리꾼들의 항의를 받았는지 제목이 수정되었다.다만 임종률 기자는 예전에도 이상화 선수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를 쓴 적도 있고, 열심히 노력했으나 아쉽게 간발의 차이로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경우 굳이 기독교의 신이 아니더라도 불가역적이고 초월적인 존재, 내지는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변수에 대해 신을 운운하며 아쉬움을 드러내는 수사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존재했던 것이므로 임종률 기자의 소속만 가지고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다만 기사 제목을 신중하게 붙이지 못해 비난을 산 것은 어디까지나 임종률 기자 본인의 책임이 맞다.

 

•2014년 2월 14일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해군장교 남자친구와 5월 결혼설이 돌았으나, 결혼 계획은 없다며 공식 부인했다.

 

•2018년 3월 24일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개막전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에서 두산 베어스 승리기원 시구를 했다.

 

•개인 차는 포르쉐 파나메라다.

 

•좋아하는 가수는 엑소이며 추천곡은 방탄소년단 고민보다 Go를 꼽았다. 비공식적으로는 방송불가용 곡을 많이 듣는다고.

 

•2019년 2월 10일-17일 2주에 걸쳐 집사부일체에 출연한다. 방송에서 자신이 해왔던 훈련과 자신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겪은 것에 대한 비하인드 역시 공개했다.

 

•2019년 3월 16일 가수 강남과 열애설이 났고 곧 인정했으며, 두 사람의 연애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임이 밝혀졌다. 이후 2019년 10월 12일 교제 1년만에 결혼하였다.

 

•결혼 발표후 결혼 한달 남은 시점부터 동상이몽, 너는 내 운명에 남편과 함께 출연중. 강남의 반려견 강북이가 엄청나게 앵기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것 땜에 태진아에게 둘의 연애를 들켰다. 강북이가 태진아에게 엄청 짖어댔는데 상화에겐 엄청 앵기며 애교를 부리니 수상할수 밖에... 강남의 네일 아트 프로포즈를 보고 썰렁한 반응을 보여 강남이 제대로 삐진다. 사실은 울고 싶었으나 억지로 참은거라고 그리고 시어머니가 받았던 결혼 반지를 물려받는다. 의외의 모습도 나왔는데 강남이 걸그룹 노래 듣는걸 엄청 싫어한다. 일명 질투 여제. 웨딩드레스 샵에 가는길에 강남이 ITZY의 노래를 고르자 삐져서 웃음을 줬다. 그리고 여기서 다리 상태가 밝혀졌는데 무릎이 반월판 손상 이후 뼛조각이 돌아다니며 인대를 자꾸 찔러서 무릎 굽히기도 힘들고 발목이 자꾸 꺾여서 넘어지고 그런 상황이다. 정글의 법칙 때 갑자기 넘어져서 주저 앉은 이유가 그래서였다. 수술 시기를 미룬채 3번의 올림픽출전을 하며 부상이 더욱 깊어진것. 이에 남편 강남이 자기 무릎을 줘서라도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 나가게 해주고 싶다고 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예능

2018년 3월 14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2018년9월28~2018년12월14일 SBS 《정글의법칙 in 라스트인도양》 

2019년 2월 10일, 2월 17일 SBS 《집사부일체》

2019년9월21일 JTBC  《아는형님》

2019년 9월 30일 ~ 현재 SBS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

 

수상

2014년 MBN 여성스포츠대상 1, 2월 통합 MVP

 

기록

 

개인최고기록

 

           종목            기록           날짜            대회            장소
          100m          10초46       2005.03.06 2004-05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네덜란드 헤이렌베인(티알프)
          500m          36초36       2013.11.17 2013-14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유타 올림픽 오벌)
         1000m        1분13초66       2013.09.21 폴 클래식 2013 캐나다캘거리(올림픽 오벌)
         1500m        2분02초42       2012.09.28   캐나다캘거리(올림픽 오벌)
         3000m        4분23초60       2002.10.27   캐나다캘거리(올림픽 오벌)

메달기록

올림픽

금메달

2010 밴쿠버

500m

금메달

2014 소치

500m

은메달

2018 평창

500m

세계선수권(스프린트)

금메달

2010 오비히로

스프린트

동메달

2013 솔트레이크시티

스프린트

세계선수권(종목별)

금메달

2012 헤이렌베인

500m

금메달

2013 소치

500m

금메달

2016 콜룸나

500m

은메달

2011 인첼

500m

은메달

2017 강릉

500m

동메달

2005 인첼

500m

동메달

2009 밴쿠버

500m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7 창춘

500m

은메달

2017 삿포로

500m

동메달

2007 창춘

100m

동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500m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7 토리노

500m

금메달

2009 하얼빈

500m

동메달

2009 하얼빈

100m

주니어 세계선수권

동메달

2005 세이네요키

종합

월드컵

포디움

 

순위 날짜 장소 종목 기록

 

순위 날짜 장소 종목 기록

2005년 11월 26-27일 밀워키 100m 10.64초
2006년 3월 3일 헤이렌베인 500m 38.40초
2006년 3월 3-5일 헤이렌베인 100m 10.47초
2006년 3월 5일 헤이렌베인 500m 38.47초
2006년 11월 10일 헤이렌베인 500m 38.23초
2006년 11월 11일 헤이렌베인 500m 38.33초
2006년 11월 17일 베를린 500m 38.01초
2006년 11월 18일 베를린 500m 38.18초
2006년 12월 2일 하얼빈 500m 38.23초
2006년 12월 3일 하얼빈 100m 10.59초
2006년 12월 3일 하얼빈 500m 38.47초
2006년 12월 9일 나가노 500m 38.52초
2012년 12월 10일 나가노 100m 10.65초
2006년 12월 10일 나가노 500m 38.30초
2007년 3월 4일 캘거리 100m 10.49초
2007년 12월 9일 헤이렌베인 500m 38.59초
2007년 12월 16일 에르푸르트 500m 38.76초
2008년 1월 25일 하마르 500m 38.07초
2008년 1월 26일 하마르 500m 38.19초
2008년 11월 7일 베를린 500m 38.12초
2008년 11월 8일 베를린 500m 38.26초
2008년 11월 14일 헤이렌베인 500m 38.22초
2008년 11월 15일 헤이렌베인 500m 38.13초
2008년 12월 6일 창춘 500m 38.86초
2008년 12월 7일 창춘 100m 10.67초
2008년 12월 7일 창춘 500m 38.56초
2008년 12월 13일 나가노 500m 38.39초
2008년 12월 14일 나가노 500m 38.72초
2009년 12월 6일 캘거리 500m 37.34초
2009년 12월 7일 캘거리 500m 37.64초
2009년 12월 11일 솔트레이크시티 500m 37.24초
2009년 12월 12일 솔트레이크시티 500m 37.24초
2010년 11월 12일 헤이렌베인 500m 38.30초
2010년 11월 19일 베를린 500m 38.24초
2010년 11월 20일 베를린 500m 38.56초
2010년 12월 2일 창춘 500m 38.24초
2010년 12월 5일 창춘 500m 38.22초
2010년 12월 11일 오비히로 500m 38.18초
2010년 12월 11일 오비히로 1000m 1분 17.87초
2010년 12월 12일 오비히로 500m 38.21초
2011년 3월 5일 헤이렌베인 500m 38.49초
2011년 3월 6일 헤이렌베인 500m 38.48초
2011년 11월 19일 첼랴빈스크 500m 38.09초
2011년 11월 25일 아스타나 500m 37.78초
2011년 11월 26일 아스타나 500m 37.98초
2011년 12월 2일 헤이렌베인 500m 37.91초
2012년 1월 21일 솔트레이크시티 500m 37.36초
2012년 1월 22일 솔트레이크시티 500m 37.27초
2012년 3월 9일 베를린 500m 38.00초
2012년 3월 10일 베를린 500m 37.66초
2012년 11월 16일 베를린 500m 37.85초
2012년 11월 17일 베를린 500m 37.92초
2012년 12월 8일 나가노 500m 37.92초
2012년 12월 9일 나가노 500m 37.60초
2012년 12월 15일 하얼빈 500m 37.94초
2012년 12월 16일 하얼빈 500m 37.65초
2013년 1월 19일 캘거리 500m 36.99초
2013년 1월 20일 캘거리 500m 36.80초
2013년 3월 8일 헤이렌베인 500m 37.82초
2013년 3월 10일 헤이렌베인 500m 37.77초
2013년 11월 8일 캘거리 500m 36.91초
2013년 11월 9일 캘거리 500m 36.74초
2013년 11월 15일 솔트레이크시티 500m 36.57초
2013년 11월 16일 솔트레이크시티 500m 36.36초
2013년 11월 29일 아스타나 500m 37.27초
2013년 11월 30일 아스타나 500m 37.32초
2013년 12월 6일 베를린 500m 37.36초
2014년 11월 14일 오비히로 500m 38.07초
2014년 11월 16일 오비히로 500m 37.92초
2014년 11월 21일 서울 500m 38.18초
2014년 11월 22일 서울 500m 37.99초
2014년 12월 5일 베를린 500m 37.87초
2014년 12월 7일 베를린 500m 37.96초
2014년 12월 12일 헤이렌베인 500m 37.69초
2014년 12월 14일 헤이렌베인 500m 38.07초
2015년 2월 8일 헤이렌베인 500m 38.21초
2015년 11월 13일 캘거리 500m 36.96초
2015년 11월 15일 캘거리 500m 36.99초
2015년 11월 21일 솔트레이크시티 500m 36.83초
2015년 11월 4일 인첼 500m 37.33초
2015년 11월 6일 인첼 500m 37.36초
2015년 12월 5일 인첼 1000m 1분 15.27초
2015년 12월 11일 헤이렌베인 500m 37.59초
2016년 11월 13일 하얼빈 500m 38.11초
2016년 11월 20일 나가노 500m 37.93초
2016년 12월 5일 아스타나 500m 37.95초
2017년 11월 10일 헤이렌베인 500m 37.60초
2017년 11월 11일 헤이렌베인 500m 37.53초
2017년 11월 18일 스타방에르 500m 37.95초
2017년 12월 3일 캘거리 500m 36.86초
2017년 12월 8일 솔트레이크시티 500m 36.71초
2017년 12월 9일 솔트레이크시티 500m 36.7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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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소개하는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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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 대표팀은 10일필리핀 마닐라 리살 기념 경기장에서 열린 SEA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3-0으로 승리를 따냈다.

1959년 방콕 대회 이후 무려 60년 만의 우승이다. 이전까지 베트남은 이 대회에 결승에만 무려 7번이나 올라간 전적이 있지만 한 차례도 우승과 인연을 만들지 못했다. 그렇기에 전날 경기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 대표팀의 우승은 베트남을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박항서 감독은 2017년 9월부터 베트남 축구의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고 작년에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선수권 준우승으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AFC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을 이끌어내며 기적의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4강 진출에 이어 스즈키컵 우승, 여기에 아시안컵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며 베트남 축구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이번 대회 결승에서도 베트남은 인도네시아를 만나 우위를 보이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승리를 가져왔다.

전반 38분 주장 도흥중의 프리킥을 도안반하우가 헤딩으로 공을 쳐내며 첫 포문을 열었고 후반 13분에 도흥중의 슛으로 2-0을 만든 베트남은 후반 14분에 곧바로 도안반하우가 승리에 쐐기를 박는 골을 넣으며 베트남의 승리를 완성했다.

박 감독은 후반 30분에 심판과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했지만 선수들은 격렬하게 덤벼드는 인도네시아 선수를 차분하게 상대했고 승리를 완성했다. 7전 8기만에 이룩한 베트남의 이번 우승, 그 중심에 박항서가 있었다.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Park Hang-Seo(박항서)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170cm

포지션

미더필더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청소년 클럽 기록

1977-1980

한양대학교

클럽 기록

연도

클럽

출전 (골)

 

1981
1981-1983
1984-1988

제일은행
육군 축구단 (군복무)
럭키금성 황소

 

 

99 (15)

 

국가대표팀 기록

1977-1978
1979-1980
1981

대한민국 U-20
대한민국 B
대한민국

 

1 (0)

 

지도자 기록

1989-1990
1991-1996
1994
1997-2000
2000-2002
2002
2003-2004
2005-2007
2008-2010
2012-2015
2017
2017-
2017-

럭키 금성 황소 (트레이너)
LG 치타스 (코치)
대한민국 (트레이너)
수원 삼성 (코치)
대한민국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3
포항 스틸러스 (코치)
경남 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
창원시청
베트남 U-23
베트남

 

박항서프로필 박항서그는누구인가?

박항서(朴恒緖, 1959년 1월 4일(61) - )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이다. 2017년부터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본관은 반남이다.

 

학력

생초초등학교 (졸업)

생초중학교 (졸업)

경신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체육학과 (학사)

 

신체 170cm 62kg

 

클럽 경력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고, 그 해 군에 입대하였고 육군 축구단 충의에서 활동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1984년 럭키금성 황소 (현 FC 서울)에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1984년 4월 22일 유공 코끼리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1985년 K리그 우승과 1986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1988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

1977년 제19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으며1979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인 충무에 선발되었다. 1981년에는 1진인 화랑팀에 선발되었다.

 

지도자 경력

1988년 은퇴한 직후에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코치로 지내다가 199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2000년 2월까지 활동하였다.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하였다.

 

 

2000년 10월 허정무 감독이 사퇴한 뒤 2000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고, 12월 한·일 정기전에는 임시 감독을 맡았다.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임되자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선수단의 융화를 일궈내는 등 2002년 FIFA 월드컵 4강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나자 2002년 8월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아 무보수 임시 감독이라는 논란이 나왔고 대한축구협회가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고문 자격으로 벤치에 착석시키려고 하자 불만을 표출하여 엄중 경고를 받았다. 결국 9월 정식 계약을 맺었지만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는 데 그쳐 10월 아시안 게임 폐막 후 경질되었다.

이후 2003년 포항 스틸러스에 코치로 입단하여 2004년까지 활동하였고 그 뒤 잠시 전남 드래곤즈 기술 고문을 맡았다.

2005년 8월 새롭게 창단된 경남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7년 정규 리그 4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포항 스틸러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에서 패하여 5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구단 내부 갈등으로 인하여 11월 경남 FC에서 물러났다.

2007년 12월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에 취임하여 팀의 2008년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과 2009 시즌 6위로 챔피언십 진출 및 최종 4위를 이끌었으나 2010 시즌에는 10위에 그쳐 그 해 11월 5일 자진 사임하였다. 이후 고 이수철 감독의 후임으로 2011년 상주 상무의 감독직에 올라 1부 리그로 승격해서 1년만에 2부리그로 강등되기도 했으나 2013년 2부리그의 명칭 변경 후 2013년 K리그 챌린지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최초 K리그 챌린지 1위에 오르며 1년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승격하자마자 K리그 클래식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2014년 K리그 클래식 12위로 1년만에 재강등되는 등 강등의 아픔을 두번이나 겪었다. 하지만 강등되자마자 2013년과 마찬가지로 2015년 K리그 챌린지 1위를 거두며 재승격하였으며 2015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로 인해 상주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 창원시청 축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1년만에 현장으로 귀환하였고 프로팀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풍부한 박항서의 취임은 큰 기대를 모았다. 전반기만 해도 창원시청은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리그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를 충분히 노려볼만 했으며, 6월에 개최한 내셔널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후반기가 접어들수록 여름 이적시장에서 전력 보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며 순위가 급하락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 2017년 10월 11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겸임 감독으로 공식 취임하였다. 2018년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베트남 U-23 대표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파란을 일으켰고 비록 우즈베키스탄에게 지면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 대회를 통해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또한 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도 베트남을 56년만에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에 올려놓으며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그것도 모자라 2018년 AFF 스즈키컵에서도 베트남을 2008년 대회 이후 무려 10년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2018년을 최고의 한해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 베트남을 12년만에 아시안컵 8강으로 이끌었으며 2019년 킹스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끌어내면서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9년 11월 7일 3년 재계약을 맺으며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계속 이어갔고 다음날인 8일에는 아세안 축구 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감독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도 베트남에 1959년 대회 이후 60년만에 통산 2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경력 목록

 

클럽 경력

1981년 대한민국 제일은행

1981년 ~ 1983년 대한민국 육군 축구단(군 복무)

1984년 ~ 1988년 대한민국 FC 서울(前 럭키금성 황소)

 

지도자 경력

1989년 ~ 1996년 대한민국 LG 치타스 코치

1994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트레이너

1997년 ~ 2000년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00년 ~ 2002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수석 코치

2002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수석 코치

2003년 ~ 2004년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코치

2005년 ~ 2007년 대한민국 경남 FC 감독

2008년 ~ 2010년 대한민국 전남 드래곤즈 감독

2012년 ~ 2015년 대한민국 상주 상무 감독

2017년 대한민국 창원시청 감독

2017년 ~ 베트남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수

 

클럽

대한민국 FC 서울 (前 럭키금성 황소)

K리그1

● 우승 (1): 1985● 준우승 (1): 1986● 4위 (1): 1988전국축구선수권대회

● 우승 (1): 1988

대한민국 대한민국 U-20

AFC U-20 축구 선수권 대회

● 우승 (1): 1978


코치

 

클럽

대한민국 FC 서울 (前 LG 치타스)

K리그1

● 우승 (1): 1990● 준우승 (2): 1989, 1993● 4위 (1): 1992리그컵

● 준우승 (2): 1992, 1994전국축구선수권대회

● 3위 (1): 1989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1

● 우승 (2): 1998, 1999리그컵

● 우승 (2): 1999아, 1999대● 3위 (1): 1997프슈퍼컵

● 우승 (2): 1999, 2000아시안 컵위너스컵

● 준우승 (1): 1998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K리그1

● 준우승 (1): 2004

대한민국 대한민국

FIFA 월드컵

● 4위 (1): 2002AFC 아시안컵

● 3위 (1): 2000CONCACAF 골드컵

● 4위 (1): 2002


감독

 

클럽

대한민국 전남 드래곤즈

K리그1

● 4위 (1): 2009FA컵

● 3위 (1): 2010리그컵

● 준우승 (1): 2008

대한민국 상주 상무 축구단

K리그2

● 우승 (2): 2013, 2015FA컵

● 3위 (1): 2014

대한민국 창원시청 축구단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 우승 (1): 2017

대한민국 대한민국 U-23

아시안 게임 축구

● 동메달 (1): 2002

베트남 베트남 U-23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 준우승 (1): 2018아시안 게임 축구

● 4위 (1): 2018동남아시아 경기대회

 

● 우승(1)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베트남

아세안 축구 선수권 대회

● 우승 (1): 2018킹스컵

● 준우승 (1): 2019

개인

1985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2013년 K리그2 감독상 수상

2018년 베트남 3급 노동훈장 수훈

 

기타

전력을 다하는 근성으로 인하여 '악바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6년 4월 문근영과 함께 KTF CF를 찍었다. 2007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전남 드래곤즈의 허정무 감독을 제치고 남부팀 감독부문 1위에 올랐다. 박항서 감독의 영어 인터뷰가 영국 BBC가 운영하는 러닝잉글리쉬닷컴의 스피킹 강좌에서 성공적인 영어 커뮤니케이션의 예로 쓰인 적이 있다. 또한 박항서 감독은 부인 최상아씨가 권사로 섬기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경기를 치르기 전 교회를 찾아가 통성으로 기도하기도 하고 베트남 선수들이 득점할 때마다 벤치에 앉아서 기도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8월 28일 자신의 조국인 대한민국과의 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전 경기를 앞두고 훈련하는 도중에 기도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베트남 축구를 이끄는 믿음의 감독'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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