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빈프로필 신유빈그는누구인가?

이름 신유빈

 

생년월일 2004년7월5일

 

출생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

 

키 168cm

 

가족 아버지 신수현 언니 신수정

 

학력

 

화산초등학교

청명중학교

 

사용손 오른손

 

그립 셰이크핸드

 

소속 대한항공여자탁구단

 

기록 최고랭킹 85위(2019년1월)

 

메달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

 

2018년 네피도 복식 금메달

2018년 네피도 단체전 동메달

 

아시아유스선수권대회

 

2017년 아산 단체전 은메달

신유빈(2004년 7월5일 ~ )은 대한민국의 탁구 선수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 불리며 탁구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2019년에 만 14세 11개월 6일의 나이로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2019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했으며, 2020년 하계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무한도전 키즈' 신유빈이 올림픽에서 '무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신유빈은 25일 일본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2회전에서 58세의 베테랑 니시아리안(룩셈부르크)에 극적인 4-3(2-11 19-17 5-11 11-7 11-8 8-11 11-5) 역전승을 거두고 3회전에 진출했습니다. 자신보다 41살 많은 백전 노장 니시아리안을 상대로 패기 넘치는 경기를 펼치며 우승을 거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맞대결은 경기 전부터 관심을 모았는데요. 2004년생인 신유빈은 한국 탁구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고 니시아리안은 그보다 41살 많은 1963년생이라서입니다.


니시아리안은 38년 전인 1983년 중국 국가대표로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혼합복식과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초베테랑 선수로 역대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탁구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그는 1991년 룩셈부르크로 귀화한 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 대회까지 4회 올림픽 출전 기록을 세웠던 바 있습니다.

올림픽 무대를 4번이나 밟은 '백전노장'의 도전을 한국 여자 탁구의 기대주 신유빈이 저지했는데요.

첫 세트에서 신유빈은 흔하지 않은 왼손 펜홀더 전형의 니시아리안의 변칙 플레이에 고전했습니다. 첫 세트에 테이블 구석구석을 찌르는 니시아리안에 밀려 2-11로 어이없게 내준 신유빈은 2세트 들어 과감한 공세로 듀스 랠리에 승리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신유빈은 주눅 들지 않고 니시아리안을 파고들어 2세트를 19-17로 가져왔고 3세트를 내준 신유빈은 4세트를 11-7로 이긴 뒤 여세를 몰아 5세트도 11-8로 돌려세워 세트 스코어 3-2로 역전시켰습니다.

니시아리안은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6세트를 잡아 승부를 최종 7세트로 몰고 갔지만, 신유빈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강한 드라이브 공세를 펼쳐 7세트를 11-5로 따내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습니다. 이에 신유빈은 32강에 진출했고 26일 3회전에서 세계 랭킹 8위 두 호이 켐(홍콩)과 16강 진출을 두고 결전을 벌일 예정입니다.


신유빈은 각종 방송 출연으로 팬들에게 친숙해진 선수로 그는 고작 다섯 살이던 2009년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등에 출연해 탁구 유망주로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았었는데요. 당시 신유빈을 상대했던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은 “한국 탁구의 희망”이라고 말했던 바 있으며 현재 신유빈은 최연소 국가대표로 성장해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boy906

스포츠인 소개하는블로그입니다.

,

정현욱프로필 정현욱그는누구인가?


이름 정현욱 Hyun-wook Jung

생년월일 1999년10월27일 인천광역시

신체 179cm, 78kg

학력 인천서흥초 - 율곡중 - 율곡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19년2차6라운드 (전체 59번, 두산)

소속팀 두산베어스 (2019~)

두산베어스 소속의투수


2020시즌


10월23일 시즌 막바지에콜업되었다.

플레이스타일


150km/h에 육박하는 속구가 주무기이다.

논란

불법 스포츠 토토 논란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는 투수 정현욱(22)과 포수 권기영(22)을 자격정지선수로 지정해 줄 것을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요청했다.

두산은 최근 개인적인 채무 문제가 불거진 정현욱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스포츠 토토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선수단 전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권기영의 부적절한 사행성 사이트 접속 사실을 확인했다. 두산은 정현욱과 면담 직후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경위서를 제출했다. 권기영에 대한 경위서도 추가 제출했다. 권기영은 사행성 사이트에 접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역 선수의 스포츠토토 베팅은 법률 위반이다. 국민체육진흥법 제30조(체육진흥투표권의 구매 제한 등)는 체육진흥투표권 발생 대상 운동경기의 선수, 감독·코치는 물론 경기단체 임직원의 체육진흥투표권을 구매·알선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불법사이트 참여는 중징계 대상이다. 야구규약 제148조 6항은 불법 스포츠 도박 운영 및 이용 행위 등 국민체육진흥법상 금지 또는 제한되는 행위를 제재대상으로 밝혔다.


정현욱은 2019년 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전체 59순위)로 입단했다. 1군 출전 경력은 없으나 강속구를 뿌리는 기대주다.







블로그 이미지

boy906

스포츠인 소개하는블로그입니다.

,


김영찬프로필 김영찬그는누구인가?


김영찬 (金英讚 / Kim Young-chan)

생년월일 1993년9월4일  경기도 안양시

포지션 센터백

신체 조건 189cm / 84kg

학력

신갈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소속팀


전북현대모터스 (2013~2019)
→ 대구FC (2013.6~2013.12 / 임대)
→ 수원FC(2014 / 임대)
→ FC안양 (2018 / 임대)
→ 수원FC(2019 / 임대)
부천FC 1995 (2020)
경남FC (2021~)

 대한민국축구선수. 현재 경남FC 소속이다.

대한민국 K리그 프로통산 100경기

프로 데뷔 이전


신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로 진학했으며, 2011년 금석배 전국 고교축구대회에서 우수선수상을 받았고 U-17세 대표, U-18세 대표 및 주장, U-19세 대표 U-20세 대표 및 주장을 맡는 등 축구 팬들 사이에선 축구 유망주로 유명했다.

전북현대모터스&2번의임대


이런 활약들로 인해 2013년 전북현대모터스에 입단하였지만, 당시 쟁쟁한 수비진의 경쟁에 출전을 위해 6개월만에 대구FC로 임대를 떠났다. 이후 대구에서 출장한 했고, 이듬해에는 수원 FC로 임대 갔다. 수원에서는 19경기에 출장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전북에서도 입지를 굳히는 듯 했으나, 2015년 5경기, 2016년 12경기 출장에 그치는 등 전북에서는 쟁쟁한 경쟁으로 인해 팀을 옮겨다녔다.

임대 생활


결국 2018년 기회를 잡기 위해 FC 안양으로 다시 임대되며 안양에서는 31경기 1도움을 기록하며 주전 센터백으로 출장했고, 2019년에는 과거 뛰었던 수원 FC로 다시 임대되면서 역시 주전으로 계속 출전했다. 전북에서와는 달리 꾸준히 주전으로 뛰며 스스로 실력을 증명하고 뛰어온 것을 보면 실력만큼은 확실히 있는 선수다.

부천FC 1995


수원에서의 임대가 종료된 후 전북으로 복귀했지만 곧 FA가 됐고, 이후 안정적인 출전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부천FC 1995로 이적했다. 커리어 최초의 완전 이적.

2020년 5월 16일 리그 2라운드 FC안양과의 홈경기에서 혼자 2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경남FC


2020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부천을 떠났다. 그리고 2021년 1월 6일 설기현 감독이 있는 경남 FC로 이적했다.


코미디언 이경규의 딸이자 배우인 이예림의 남자친구다. 이경규가 한끼줍쇼 출연 당시 예림이 남자친구가 수원 FC에서 뛰고 있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임대를 4번이나 경험했다. 그럼에도 전북이 완전 이적으로는 풀어주지 않는걸 보면 장점이 많은 선수인 듯 했지만, 결국 FA가 되자마자 출장 기회를 잡기 위해 전북을 떠났다. 그리고 전북을 떠난 뒤 뛰었던 모든 팀에서 주전으로 맹활약함에 따라 이는 옳은 선택이 됐다.

수상


전북현대모터스

K리그1 우승 2015년 2017년
AFC챔피언스리그 우승 2016년







블로그 이미지

boy906

스포츠인 소개하는블로그입니다.

,

정인욱프로필 정인욱그는누구인가?

이름 정인욱 鄭寅煜 / CHUNG INWOOK

 

출생 1990년 12월 18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체

 

186cm, 86kg

 

학력

 

본리초 - 경운중 - 대구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9년 2차 3라운드 (전체 21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9~2020)

한화 이글스 (2021~)

 

가족

배우자 허민

딸 정아인(2017년 12월 7일생)

아들 정단우(2020년 9월 14일생)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3~2014)

 

한화 이글스의 투수.

 

선수 경력

 

아마추어 시절

원래 내야수였으나 대구고 2학년 때 투수로 전향해 대구고의 청룡기 우승을 이끌며 청룡기 MVP도 수상했다. 짧은 투수 경험에도 뛰어난 평가를 받아 1차 지명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고교 1학년 때부터 1차 지명자로 기대됐던 내야수가 있어서... 또한 세계 청소년대회에 참가한 대표팀에는 아쉽게도 뽑히지 못했다.

 

2008 제일화재 프로야구 대상에서 아마야구 MVP를 수상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9~2010 시즌

삼성 입단 첫 해인 2009 시즌에는 허리 부상으로 2군에서도 많은 경기에 못 나서고 재활에만 힘썼다.

 

2010 시즌에는 2군에서 선발 투수로 9경기 등판해 4승을 올리고 5월 4일 1군에 올라왔다. 첫 데뷔전은 롯데전이었는데 2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 홍성흔을 상대로 파울 플라이를 잡았다. 베테랑을 상대로도 떨지 않고 정면 승부한 것을 선동열 감독이 좋게 봤는지 5월 14일 넥센전에서 선발로 등판하게 된다.

 

1회까지는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2회에 6실점, 3회에도 1실점, 그리고 4회에는 황재균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다시 6실점, 총 13실점을 기록하며 한 경기 투수 최다 실점 기록을 경신할 뻔했다. (역대 투수 최다 실점 기록은 1999년 두산 베어스의 김유봉이 대구 삼성전에서 3⅔이닝 동안 14실점을 내준 게 최고다.) 하지만 그래도 선동열 감독이 정인욱을 괜찮게 봤는지 이후로도 계속 기회를 줬다.

 

6월 30일 9회에 등판해 팀의 승리로 구원승을 올리면서 개인 통산 첫 승을 기록했다.

 

선발, 계투를 오가며 활약. 2010 시즌 기록은 28경기 등판 4승 2패 1홀드 61이닝 55피안타 42실점 5.31의 평균자책점.

시즌 초반 때는 130km/h 후반대의 직구를 던졌지만 중반 이후로는 140km/h 초반까지 기록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0년 10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스코어 6:6이던 10회말에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0회말을 삼자범퇴로 막았다. 하지만 팀이 스코어 8:6으로 이기던 11회말에도 등판했다가 아웃카운트 하나 못 잡고 3실점을 하며 역전패를 허용하였다. 이 날 정인욱은 1이닝 32투구수 3피안타 2볼넷 3실점 3자책점, 패전투수가 되었다.

 

정인욱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2⅔이닝 4피안타 3볼넷 1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0.13,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정인욱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1⅔이닝 2피안타 3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정인욱은 2010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5경기 등판하여 4⅓이닝 6피안타 6볼넷 2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6.23, 1패를 기록했다.

 

2011 시즌

2011 시즌에는 장원삼이 어깨 부상으로 선발 로테이션 합류가 늦어지며 6선발 후보로 낙점되었다. 그러나 로테이션 상 기회가 오지 않아 계투로 등판하다 4월 16일 두산전에 시즌 첫 선발 등판한다. 결과적으로 5이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가능성을 보인 등판이었이후 장원삼이 선발로 합류하며 자리없어진 정인욱은 2군으로 내려가게 된다. 1군에서도 롱릴리프 추격조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지만, 가능성이 많은 어린 선수이니만큼 2군에서 선발로 키우겠다는 것이 코칭스 생각이었다.

 

선발투수인 외국인 선수 카도쿠라 켄이 부친의 된다. 이 경기에서 정인욱은 손가락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부상으로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5와 1/3 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롯데 타선을 막으며 데뷔 첫 선발승의 감격을 누린다. 경기 직후 곧바로 2군으로 다시 내려가지만, 선발의축을 담당하던 안지만이 셋업맨으로 보직을 옮기며 다시 6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예정.

 

6월 8일 롯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양승호 감독이 '정인욱은 롯데 전담 투수 같다'고 할 정도로 롯데전에 출전하여 승리를 챙기고 있는 상

 

8월 6일 롯데를 상대로 4이닝 6실점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9월넥센전 선발 등판하여 85개의 공을 던지고 7이닝 무실점 1피안타 1사사구 7K를 잡아내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2011년 10월 29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 윤성환의 뒤를 이어 팀이 4:1로 앞서던 4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등판하였다. 박진만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고 정근우에게 볼넷을 내주어 2사 만루의 위기에 몰렸지만 박재상을 삼진으로 잡고 4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후 5회와 6회 위력적인 투구로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강한 인상을 주었지만, 7회말 박진만에게 안타, 정근우에게 볼넷을 허용한 후 무사 1,2루에서 박재상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아서 스코어 5:4를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최정에게 안타를 맞아 무사 1루 상황에서 강판되었다. 다음 투수인 권혁이 폭투을 하고 박정권에게 안타를 맞고 내려가는 바람에 무사 1, 3루가 되었으나 그 다음 투수인 안지만이 환상적인 투구로 7회말을 무실점으로 리드를 지켜내어 정인욱은 이날의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다. 이날 정인욱의 성적은 2⅔이닝 47투구수 3피안타 1피홈런 2볼넷 3실점 3자책점 구원승.

 

정인욱은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4⅔이닝 4피안타 1피홈런 3볼넷 4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5.79, 1승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정인욱이 이후로 얻어맞고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시즌이 사실상 커리어 하이 시즌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실 데뷔 시즌에 너무 잘했기 때문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삼성이 아직도 잡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삼성의 필승의 목표 중 하나가 정인욱의 부활이다.

 

2012 시즌

시즌을 앞두고 차우찬처럼 무려 11kg을 감량하고 투구 폼을 바꿨다. 스프링캠프 때는 바뀐 투구 폼에 무리가 없었으나,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후 쌀쌀한 날씨 탓에 투구 폼 적응에 실패하면서, 이 때문에 밸런스가 망가졌다. 이로 인해 2012년에는 주춤했다. 애초에는 배영수와 6선발을 두고 경쟁할 예정이었으나,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5월 3일에 1군에 올라온 적이 있으나, 2군에서도 한창 안 좋았을 때니 잘할리가 만무했다. 4일만에 경산행. 2군에서도 6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정도로 고전하면서 잔류군(3군)으로 강등되기도 하고, 중간계투로 보직이 바뀌기도 했다. 중간계투로서 그럭저럭 좋은 모습을 보여 다시 선발로 복귀했고, 점점 좋아져 7월 1달 동안은 4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24이닝 동안 4실점(3자책)을 기록했다. 8월 2일 차우찬 대신 1군으로 올라와 중간계투로 합류했다.

시즌 후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야구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출전하기도 했다. 중국전과 대만전 두 경기에 출전, 9와 2/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활약을 하며대회 평균자책점 1위 상을 받았다.

 

11월 20일 상무 입대가 최종 확정되었다.

 

군복무

상무 첫 해부터 1선발로 등판했다. 148⅓이닝을 소화해 경찰청의 장원준에 이은 퓨처스 전체 이닝 소화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장원준의 경우엔 투구수가 110개를 넘게 던진다거나 시즌 후반 들어서는 계투 알바로 연투하는 등 혹사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인욱은 시즌 초반을 제외하면 투구수가 110개를 넘은 경기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5월에는 컨디션 난조로 로테이션을 아예 거르기도 하는 등 어느 정도 관리를 받았다. 첫 해 성적은 26경기 148⅓이닝 7승 6패 평균자책점 3.40. 다소 승운이 없었는데, 정인욱 스스로가 말아먹은 경기도 종종 있었다

 

시즌 후 허리 문제로 수술을 고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애초에 투수 전향이 늦었고, 삼성에서도 시즌 소화 이닝을 관리받던 차에 갑자기 늘어난 이닝을 버텨 내지 못한 것. 결국 고민 끝에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한다. 상무 복무 시절에는 어깨도 안 좋았다고 한다.

 

2년차에는 허리 재활의 영향인지 5월에서야 올라올 정도로 시작이 늦었고, 등판 간격을 길게 가져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역 후 STC로 보냈는데, 생각보다 몸 상태가 좋은지 바로 퇴소했다고 한다. 키도 많이 커서 189~190cm까지 컸다는 듯.

 

2015 시즌

 

시즌 전

삼성 라이온즈의 5선발을 담당했던 배영수가 2번째 FA 때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면서 차우찬과 함께 삼성의 선발 기대주가 되었다.

 

그러나 팀의 기대와 달리 시범경기에서 2게임에 등판해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6.43에 그쳤다. 3월 7일 두산전에서는 선발로 등판하여 4이닝 4피안타 3실점(2자책)했고 3월 14일 SK전에서는 윤성환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3이닝 동안 3피안타 3볼넷 3실점하며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4월 ~ 7월

 

2군에서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갔으나, 구위가 회복되지 않아 2군에서도 얻어맞고 7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찍으며 결국 로테이션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기사를 보면 구속이 145km/h에도 못 미치는 수준. 대신 양일환 2군 투수코치와 황두성 트레이너를 통해 다른 선수들보다 더 강도 높게 훈련 중이라고 하며, 류중일 감독은 일단 올 시즌 후반에 오면 좋겠지만 내년부터라도 잘하면 된다며 길게 시간을 줄 것임을 표명한 상태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깨 통증까지 호소해 한동안 퓨처스에서도 등판하지 못했다. 상무 복무 중 당한 어깨 부상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 류중일 감독은 아픈 부위를 스스로 재활하고 트레이닝했어야 한다면서 정인욱을 강하게 질타했다.

 

8월

재활 훈련에 몰두하다가 8월 2일 들어서야 2군 경기에 다시 등판했다. 4⅔이닝 9피안타 7실점(4자책)으로 결과는 안 좋았지만, 속구가 최고 146km/h를 기록하는 등 구속은 시범경기 때에 비하면 회복됐다고 한다. 8월 1군이 우천 취소의 여파로 8연전을 펼치면서 14일 KIA전 선발로 내정됐다. 그런데 2군이 잔여경기 일정을 치르면서 시즌 초중반과 달리 일정이 들쭉날쭉한 와중에 그나마 예정된 경기마저 폭염으로 취소되면서 정인욱은 2일 이후 실전 경기에 등판하지 못한 채 1군 경기에 등판하게 됐다.

 

2015년 8월 14일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릴 KIA전 선발로 낙점받으며 제대 후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됐다. 그러나 3이닝 동안 80구를 던져 6피안타(1피홈런) 4사사구 3K 9실점(9자책)의 최악투로 조기 강판당해 혹독한 전역 신고식을 치렀다.

 

8월 18일 잠실 두산전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8월 22일 대구 롯데전 8회초 10점차에 등판해 34구를 던지면서 1이닝 2피안타(1홈런) 2탈삼진 1볼넷 1실점(1자책)을 기록한 후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8월 23일 대구 롯데전 6회초에 등판하여 0.2이닝 4피안타 1탈삼진 2볼넷 6실점으로 6:0으로 지던 경기를 12:0을 만들어 패전의 쐐기를 박았다. 덕분에 전날 1이닝 1실점으로 낮췄던평균자책점이 25.41까지 치솟았다.

 

8월 28일 대구 두산전 연장 11회초 3:3 동점 상황에 등판해 2사 2루에서 박건우에게 역전타를 맞았다. 그리고 민병헌에게 한 방 더 맞으면서 결국 패전의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그 날 3피안타 2실점(2자책)으로 또 다시 패전의 멍에를 썼고, 평균자책점은 25.58로 또 치솟았다.

 

8월 30일 대구 LG전 8회초에 등판하였다. 팬들은 6점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최근 정인욱의 피칭을 떠올리며 불안해하였다. 8회초는 삼자범퇴, 9회초는 박용택, 서상우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평균자책점은 19.44로 내려갔다.

 

9월

9월 1일 마산 NC전에서 9회말 임창용이 이종욱에게 쓰리런을 맞으며 블론한 이후 10회초에 나바로의 적시타로 박해민이 아주 귀중한 득점을 올리며 팀이 재역전하자 이어지는 10회 말에 대부분의 삼성 팬들은 임창용으로 계속 가거나, 심창민이 올라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뜬금없이 정인욱이 올라왔다.강하게 키우려고? 팬들의 불안 속에도 정인욱은 탈삼진 2개를 포함해 NC 타자들을 삼자범퇴로 잘 처리하며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승리 투수는 임창용. 이 경기로 평균자책점은 17.36으로 내려갔다.

 

9월 5일 대구 KIA전 8회 초에 4:0으로 지는 상황에서 올라왔다. 백용환에게 2루타를 맞긴 했으나, 후속 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평균자책점은 15.68로 하락.

 

9월 11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로 등판해서 5이닝 101구 8피안타(2피홈런) 2볼넷 4탈삼진 5실점으로 호투 부진했다. 그러나 나바로의 홈런 등 타선이 득점 지원을 엄청 해 준 덕분에, 복귀 후 처음으로 승리를 맛보았다. 평균자책점은 13.50으로 하락했다.

 

9월 17일 대구 SK전에 선발로 등판해 5이닝 100구 4피안타(1피홈런) 3볼넷 5K 2실점(2자책)으로 임무를 완수하며 시즌 2승을 챙겼다. 평균자책점은 11.07로 내려갔다. 한자릿대 방어율이 머지 않았다!!!

 

9월 24일 수원 kt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볼넷을 꽤 많이 허용하며 위기도 많았고, 투구 버릇을 읽혔는지 이대형에게 도루를 무려 4개나 내줬지만, 만루 상황도 잘 막으며 5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다. 승리 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평균자책점은 9.59로 내려가 드디어 한자릿대 방어율을 달성했다!!

 

9월 29일 대전 한화전에서 폭스에게 홈런을 맞고 2이닝 6실점으로 조기 강판당한 선발 차우찬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등판해 4이닝 3K 무실점으로 막으며 롱 릴리프 역할을 제대로 해 냈다. 올해 최고의 호투를 보여 주었고, 평균자책점도 8.28로 내려갔다. 하지만 초반 실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팀은 패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막판에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며 2015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했지만, 5차전에서 장원삼의 책임 주자 2명을 불러들이며 분식회계를 저질렀다..정인욱은 KS 복귀 후 2경기에 나와 무자책을 기록했다.

 

2016 시즌

시범경기에서 현저하게 떨어진 구속으로 류중일 감독의 걱정을 샀다. 시범경기 성적은 3경기 등판 1승 2패 ERA 8.18.

 

원래 개막전 엔트리에서는 빠졌다가 4월 3일 선발 투수로 내정되면서 당일날 1군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런데 막상 경기는 비 때문에 취소됐다. 4월 5일 콜린 벨레스터가 볼질 끝에 강판된 후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3⅓이닝 5피안타 3실점을 했다. 벨레스터보다는 그나마 나았지만 구속이나 제구 모두 시범경기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4월 9일에는 선발 투수로 등판했으나 투구수가 많아 2⅔이닝 6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고 강판됐다. 장원삼의 부상으로 인해 불과 사흘밖에 쉬지 못하고 나오긴 했지만 투구 내용만 보면 대량 실점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을 정도. 4월 11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원래라면 한참이나 2군에 머물러야 했겠지만 차우찬의 부상으로 4월 22일 kt전 선발로 내정되면서 1군에 복귀했다. 9일날 경기와 별반 다를 것 없이, 3⅓이닝 5실점을 기록하면서 패전투수가 됐다. 4월 23일 권오준, 조현근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5월 8일 선발로 내정돼 1군에 올라왔으나 4이닝 6피안타 5실점을 기록하고 교체됐다. 1회부터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해 밀어내기 볼넷에 이어 안타와 희생플라이 2개로 4점을 내줬다. 그나마 타선의 도움으로 패전투수는 면했는데, 1군에 올라오기 전인 5월 1일 상무와의 퓨처스 경기에서 6이닝 4실점으로 그리 인상적인 투구 내용은 보여주지 못했던지라 애초에 이 날 경기에서도 호투할 가능성이 낮았다.

 

5월 14일 대구 롯데전에서 5이닝 4실점(3자책) 4K 7피안타로 나름의 선방을 하여 240일 만의 승리를 따냈다. 시즌 초 130~140 초반에 그쳤던 구속도 최고 147km을 찍으면서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 류중일 감독도 정인욱의 구속이 올라온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5월 20일 마산 NC전에서 빵빵한 타선 지원을 받으며 5이닝 2실점 6K로 호투했다. 투구수가 102개로 많았기에 6회 때 교체되었다.

 

5월 27일 인천 SK전에서 1실점으로 호투하였다. 게다가 그 1점도 수비의 실책으로 비자책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올라온 불펜의 방화와, 답이 없는 물빠따로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6월 2일 넥센전에서 5.1이닝 동안 112개의 공을 던지며 삼진 5개를 잡아냈으나, 홈런 3개를 두들겨맞으며, 밀어내기 볼넷 등 갖은 방법으로 야금야금 점수를 내주었다. 5자책으로 6회 마운드를 내려갔다. 평소라면 갖은 욕을 얻어 먹었겠지만, 대폭발한 삼성의 타선이 무려 14점을 뽑아내며 정인욱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구속을 회복하고 구위도 오르면서 흔들리는 선발진에서 하위 선발로 제 몫을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제구가 흔들리는 일이 잦고, 이닝당 투구수가 평균 20구에 달할 정도로 투구수 관리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5이닝을 넘겨 던지는 일이 없다시피 한 것이 다소 아쉽다. 그래도 웹스터, 레온이 재활군에 내려간 터라 선발 로테이션은 계속해서 돌고 있다.

 

6월 8일 LG전 등판했으나 1회에만 2실점을 하는 등 불안한 모습으로 시작했고, 결국 3과 3분의 2이닝 동안 6실점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최고 구속은 148km까지 나왔으나 전혀 제구가 되지 않았고 제구가 되는 공은 130km 후반~140km 초반에 그쳤다. 장필준이 올라와 남은 아웃 카운트를 처리하여 추가 실점은 없었다.

 

14일 SK전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2피홈런 2실점으로 시즌 최다 이닝을 소화했지만 김대우 타선의 2만루 무득점이라는 빈공이 겹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19일, 두산과의 3차전에서 선발 등판했다. 현 시즌 가장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산을 상대로 정인욱이 버텨낼 수 있을지 다들 회의적인 모습이었는데... 6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내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평소 단점으로 손꼽히던 투구수도 6이닝까지 고작 87개로, 드디어 정인욱도 터진거냐는 삼팬들의 기대를 갖기에 충분한 면모를 보여줬다. 허나 안타 9개, 볼넷 3개를 얻고도 1득점에 그친 타선의 끔찍한 결정력 부재로 인해 또 패전투수의 멍에를 썼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나온 기사에 의하면 불펜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김기태가 선발을 대신 맡을 것이라고. 군 입대 이전에도 불펜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많은 만큼 삼성의 불펜 불안을 덜어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아놀드 레온이 선발에 있어야 했으나 1군 복귀전에서 부상으로 아웃되어 선발진에 재합류했다.

 

2016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과는 무관한 선수로 밝혀졌다.

 

최충연을 1군에 콜업하며 롱맨으로 보직 이동했으나, 장원삼이 허리 통증으로 말소되고 김기태마저 어깨 통증 관리 차원서 말소되면서 선발로 복귀했다.

9월 20일, 개그우먼 허민과의 열애설 기사가 터졌다. 그리고 이 날 두산전에 선발로 등판했는데, 1이닝부터 최고 148km의 위력적인 공을 뿌리며 몇몇 삼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2이닝부터 본래 정인욱의 모습을 되찾으며 4.1이닝 7피안타 3사사구 5실점으로 거하게 털렸다

 

10월 6일 KIA전에서 선발 등판해 5이닝 1실점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가 됐다. 6월 2일 넥센전 이후 4달 만에 나온 승리. 10월 8일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차우찬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올해 선발로만 23번을 나오면서 확실하게 선발 기회를 보장 받았지만, 평균 이닝이 5이닝도 되지 않는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 62볼넷에 70삼진으로 제구 또한 좋지 못했으며, 피안타율도 3할을 넘긴데다 피홈런도 19개. 그러니까 안타 많이 맞고 볼넷 많이 내주고 홈런도 많이 맞는 투수로 선발로는 완전히 낙제 수준인데, 이런 투수가 계속 로테이션을 돌았다는 것 자체가 2016년 암울했던 삼성 투수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최고 구속 148을 찍기도 하는 등 구속 자체는 작년에 비해 올라온 모습을 보였다. 내년 외국인 투수 두명이 정상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기만 한다면 불펜에서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2017 시즌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20번에서 11번으로 바꾸었다.

 

2월 16일 한신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에 선발 등판해 2이닝 5자책 4피안타 3볼넷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143km로 구속을 빨리 끌어올렸다. 실점은 모두 1회에 기록했는데, 안타-2루타-볼넷으로 빠르게 무사 만루를 만든 뒤, 밀어내기 볼넷으로 1점을 먼저 실점했다. 그 후 2루타로 0-3, 무사 2, 3루에서 적시타로 0-5. 2회는 삼자범퇴처리했다.

 

3월 2일 SK 와이번스와의 연습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 7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6실점을 기록했다. 3이닝 동안 57구를 던지며 작년과 다를 바 없는 이닝당 투구수를 보여줬다.

 

3월 8일 넥센 히어로즈 와의 연습경기에 선발 이수민에 이어 3회 등판해 2이닝 1볼넷 2삼진 무실점으로 막았다. 여전히 뜬공은 3개로 많았다. 결국 선발경쟁서 장원삼과 최충연, 최지광에게 밀리면서 불펜으로 투입되었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김현욱 BB 아크 코치와 함께 투구폼 개조에 나서면서 5월 11일에서야 2군 경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투구폼 적응 문제인지 그냥 실력이 퇴화하는 것인지 3경기에 등판해 6⅔이닝 ERA 12.15로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21일 SK 2군전에서는 선발로 등판해 1⅔이닝 7실점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 25일 안규현과 함께 1군에 등록됐다.

 

26일 넥센과의 1차전에서 6회 등판했다. 역시나 이름값이 아깝지 않게 130후반~140대의 직구로도 볼넷을 남발하며 연속 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주고 채태인, 이정후, 고종욱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며 순식간에 4실점. 7회에도 올라와 김하성에게 안타, 김지수에게 홈런, 김민성에게 안타를 얻어맞으며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강판당했다. 이후 김민성이 득점에 성공하며 1이닝 투구수 40개에 2볼넷 6피안타를 내주며 7실점. ERA는 63.00라는 대기록을 써냈다. 27일 백상원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3군에서 가다듬다가 1군에서 제외된지 거의 2달만인 7월 26일 한화 2군전에 선발로 등판해 4⅓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앤서니 레나도의 시즌 아웃과 이에 따른 대체 선발 후보였던 김기태와 최지광이 부진하면서 8월 2일 두산전 선발 투수로 내정됐다.

 

2일 선발로 나와서는 1회 2실점했으나 이후 4이닝 동안 무실점하며 5이닝 2실점 1자책으로 호투했고, 이후 최충연으로 교체되었다. 비록 탈삼진이 적었기는 했으나 이전처럼 홈런을 맞지도 않았고 사사구도 내주지 않았다. 거기에 2달간 재활하고 온 터라 2경기 연속 투구수 관리차원서 조기강판된 것이지 투구수 조절도 괜찮았다. 다만 최근 커리어가 워낙 화려해서 팬들의 의구심을 씻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24일 SK전에서는 5이닝 동안 5실점하며 정인욱 어디 안 갔다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기 전 인스타그램에서 김동욱의 계정에 팔로잉한 것이 드러났다. 다.

 

8월 30일 기아전에서 6.1이닝 3실점하면서 퀄리티스타트를 한다. 6이닝까지 1실점했는데 7회들어가면서 안타를 맞았다.

 

9월 5일 NC전에서 5.1이닝 5피안타 1홈런 2사사구 1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9월 17일 두산전에서는 1이닝 4피안타 사사구3(볼넷 2개 몸맞는볼1개) 7실점(7자책) ERA 54.00 1K로 완전히 털렸다.1회 볼넷, 안타로 만루 이후 김재환에게 만루홈런 허용 후 2회 2실점하고 강판되었다. 그후 박근홍이 박건우에게 투런 홈런을 맞으면서 책임주자가 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다음날인 18일 1군에서 말소됐다.

 

2018 시즌

2018년 삼성 라이온즈 오키나와 훈련 명단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연봉은 2017년 7200만원보다 1500만원 삭감된 5700만원을 받게되었다.

 

아내가 딸을 출산하면서 이제는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짊어지는 책임이 막중해졌다. 하지만 구단은 이미 08~10 드래프터들을 대거 정리하고 체격 좋은 우완투수를 대거 영입하면서 새 판을 짜기 시작했기에, 자신의 가치를 18시즌에도 입증하지 못한다면 17시즌을 끝으로 방출된 김현우처럼 다음 시즌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대구 출신인지라 프렌차이즈 스타가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고,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2011 시즌의 커리어 하이까진 아니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우완 투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팬들도 일부 있다. 좌완 위주의 한국리그에서 젊은 우완 선발 투수는 굉장히 구하기 어려운데다 암울한 삼성 투수진의 특성상 함부로 방출시키도 쉽지 않다.

 

스프링캠프 일정을 소화하는 도중 옆구리 부상으로 조기 귀국했다고 한다

 

6월 15일 1군에 등록되었다. 김대우가 말소되고 올라오자 반응은 '폭탄이 가고 핵폭탄이 온다' 한기주가 1이닝 5자책으로 무너지자 올라와 5이닝 3실점 3탈삼진으로 롱맨 역할을 잘 수행해주었다. 선발과 불펜이 반대로 됐다 하지만 그 다음날 다시 1군 말소.

 

7월 1일 다시 1군에 등록돼 6일 두산전에서 등판했다.

 

7월 24일 공을 맞고 부상으로 내려간 이승현을 대신해 6이닝 2아웃 때 올라왔다. 유강남을 포수 플라이 아웃으로 처리. 마지막 9회에도 등판, 만루 위기를 맞았지만 두 타자를 모두 잡아내면서 2 1/3이닝 무실점을 달성했다. 특히 8회에는 145km정도의 직구와 130km 후반대의 스트라이크존에서 살짝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2개나 잡으며 마치 11년 커리어하이 시절을 보여주는듯 했다.

 

7월 29일 KIA전 7:1로 앞선 8회 1사에 올라와 5타자를 모두 범타 처리하고 경기를 끝냈다. 팀은 13:1로 승리.

8월 1일 백정현이 3.1이닝 7실점으로 불을 지른 뒤 올라와 2.2이닝 무실점으로 불을 껐다.

 

8월 7일 경기에는 다시 선발 투수 백정현이 불을 지르자 급하게 등판했고, 타선의 지원에 힘입어 3회 초까지 8점을 벌어놨으나 3회 말 노수광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맞았다. 그럼에도 팀이 10대 8로 이기면서 만루홈런을 맞고도 승리투수가 되었다

 

8월 10일 경기에서 8회말 2실점을 했고 이 2실점 없었다면 삼성은 10:10 동점상황으로 경기를 이어나갔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답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경기 연속 털리니 이제 거품이 꺼지려는 모양이라고 삼팬들은 생각한다.

 

8월 12일 9대 2로 크게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9회말 등판,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9월 25일 한화전에서 최채흥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1K로 잘 막고 마운드를 임현준에게 넘겼다.

 

9월 26일 한화전에서 2/3이닝 1실점으로 흔들렸다.

 

9월 30일 SK전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점수를 안 내주었다.

 

10월 3일 기아전에서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권오준의 뒤를 이어 1이닝 무실점 1피안타 2K로 잘 틀어막고 안성무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2018 시즌을 평가하자면 그래도 최소한 1군에 있을 자격은 보여준 한해였다. 물론 필승조로 쓰기엔 위험 부담이 있고 대부분 점수차가 많이 나는 상황에서 나왔지만, 최소한 그 상황에서 나름 이닝을 먹는 역할은 담당했다.

 

2019 시즌

심창민이 상무에 지원했고, 최충연을 선발로 키워보겠다고 오치아이 코치가 밝힘에 따라 공백이 생긴 삼성 필승조의 한 축이 되주어야 한다. 게다가 이젠 나이도 서른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안 터지면 방출이라는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2군에서 선발로 등판하다가 4월 27일 NC 2군과의 경기 중 이인혁의 타구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귀쪽 출혈이 있었지만 다행히 다른 부상 예후는 없었는데, 부인인 허민의 SNS에 따르면 맞은 부위가 귀였던지라 후유증으로 이석증이 생겼던 모양. 7월 6일 상무전에서 복귀했다.

 

8월 1일 경기 중 햄스트링 통증으로 강판된 덱 맥과이어가 2일 1군에서 제외되면서 대신 공민규와 함께 1군에 등록됐다.

 

8월 3일 LG와의 경기에서 3점차로 지고있던 7회부터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 1삼진으로 시즌 첫 1군 등판을 성공적으로 했으나 팀은 그동안 무득점을 하면서 졌다.

 

9월 28일 홍정우가 등록되면서 대신 1군에서 제외됐다.

 

2020 시즌

거의 이 때쯤을 기점으로 인욱신이라 불리며 팬들 사이에서 밈화되기 시작했다.

 

2월 24일 청백전에서 1회부터 5실점하고 얼마 못 가 교체되었다.

 

리그 시작 후 1, 2군 경기 등판이 없었다. 박성윤 기자에 의하면 투구에 어려움이 있어 재활군에 있다고 한다.

 

7월말 들어 다시 2군에서 던지기 시작했다. 첫 등판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9월 5일 NC전에 올해 1군경기 첫 선발등판 예정이였지만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면서 9월 6일 더블헤더 2차전 선발로 밀려났다. 더블헤더 첫 경기에는 순서를 바꾸어 지난 번 등판때 혹사한 라이블리가 나왔는데, 혈이 제대로 뚫리며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아쉽게도 2차전은 우천으로 취소되었다. 하지만 9일에 한화와의 더블헤더가 예정되어 있어 이날 2차전에서 선발로 나올 가능성도 있었으나 뷰캐넌과 원태인이 각각 1,2차전 선발로 나왔고, 본인은 DH 2차전 9회초에 7:0으로 크게 뒤진 상황에 계투로 등판하여 삼자범퇴로 막았다.

 

9월 10일 경기와 9월 11일 경기에 연투를 하며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9월 9일 한화전부터 11일까지 3일 간 3연투를 했는데, 기록은 3이닝 1피안타 2볼넷 1탈삼진 무실점.

9월 14일 득남했다.

 

9월 16일 KT전에서 10대2로 뒤진 8회말에 등판했다. 첫타자에 내야안타를 허용한 뒤, 볼넷과 안타로 1실점했다. 이후 2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잡으며 이닝을 끝냈다. 평균자책점은 0에서 2.25로 올랐다. 최고 구속은 143km. 그래도 노성호와 함께 제일 잘 던졌다...

 

그러나 9월 18일 KIA전에서 등판, 8회초는 뜬공으로 마무리 했지만 9회 첫타자 김민식에게 풀카운트 끝 볼넷을 내주고 김태진에게 안타를 맞고 희생번트와 사구로 1사 만루를 만들었다가 김규성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말았다. 평균자책점은 8.44.

 

해설진들도 말한 것처럼 구속이 1군 콜업 초반때보다 거의 2~3키로 더 줄었다. 평속이 139~140 정도로 떨어지며 베팅볼이 되어버렸다. 제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콜업 이후 불안불안한 투구를 이어가다 결국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경기서 나름 잘 던진 것도 있고, 추격조로 내정된 장필준이 너무 못던진 것도 있어서인지 추격조로 올라온 듯한데, 첫 등판부터 거하게 털려버렸다...

 

이후 등판이 없다가 9월 23일 2군으로 내려갔다. 당일날 퓨처스 롯데전에 "또" 선발투수로 내정되었다.

 

아마 23일 1군 NC전에 선발로 내정된 이승민 대신 내려간 듯 하다. 이승민이 올라오면 2군 선발진에 한자리가 비는데, 2군서 던질만한 선발이 없어서 정인욱이 내려간 듯. 이승민이 잘 던진다면 콜업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웨이버 공시됐다.

 

본인은현역 연장 의지를 계속 내비쳤지만 그동안 보여준 게 다른 의미로 많다 보니 반응은 매우 싸늘하다.

 

12월 7일 한화 이글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는다고 한다.

 

한화 이글스 시절

12월 13일 한화 이글스에 입단이 확정됐다. 연봉은 3000만원이라고 한다. 다른 팀에서 방출된 투수까지 단 2명만 테스트를 받았고 입단 테스트 당시 날씨가 좋지는 않았지만 최고 구속 142km/h로 측정되었고 구속 대비 회전수가 준수하다는 기록이 나왔다고 한다.

 

플레이 스타일

2011년에는 150km/h를 상회하는 속구와 130중후반의 슬라이더, 포크볼과 간간히 커브를 섞어던지는 정통파였으나, 이후 부상으로 인해 속구 구속이 꽤나 하락하였고 부진하던 16,17시즌에는 속구 구속이 130후반에서 140초반에 맴돌았다. 하지만 18시즌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간간히 140중반대의 속구를 보여주며 어느 정도 예전의 좋았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20시즌에는 계속된 잔부상으로 구속이 더 하락해 평균 140초반대로 떨어졌다. 물론 140 중반대도 가끔식 나오기는 한다. 슬라이더 각이 꽤나 예리하고, 포크볼의 구사도 수준급이다.

 

문제는 ''제구''. 군복무 전에는 자신감있게 꽂아 넣었는데, 군복무 이후에는 공에 대한 자신감이 하락한 것인지 제구가 잘 안된다. 그래서인지 볼넷도 많아졌다. 데뷔 초기에는 수준급의 우완 투수가 나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지만, 군복무 이후 모든 부분에서 내리막을 찍으며 폭망했다. 기대만큼 못 컸다는 것이 주된 평. 2020년을 기준으로 한국나이 31살이므로 이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방출될 수도 있다. 일단 20시즌 현재 가비지 이닝을 먹어주고 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몇년간의 활약을 바탕으로 보면, 불펜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9

삼성

1군 기록 없음

 

2010

28

61

4

2

0

1

0.667

5.31

55

9

39

60

42

36

1.51

2011

31

80

6

2

0

0

0.750

2.25

56

9

36

60

22

20

1.10

2012

13

25⅓

1

1

0

0

0.500

2.49

17

0

13

16

7

7

1.11

2013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4

2015

12

29⅓

2

2

1

0

0.500

8.28

40

5

18

29

27

27

1.91

2016

27

111

4

7

0

0

0.364

6.81

138

19

70

70

92

84

1.80

2017

9

32

1

4

0

0

0.200

9.84

46

9

18

27

37

35

1.88

2018

19

31

1

0

0

0

1.000

3.48

31

3

12

27

17

12

1.29

2019

12

21⅔

0

2

0

0

0.000

7.06

24

1

17

15

17

17

1.80

2020

5

5⅓

0

0

0

0

-

8.44

5

1

5

3

5

5

1.6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21

한화

 

 

 

 

 

 

 

 

 

 

 

 

 

 

 

KBO 통산
(9시즌)

156

396⅔

19

20

1

1

0.487

5.51

412

56

228

307

266

243

1.54

블로그 이미지

boy906

스포츠인 소개하는블로그입니다.

,

신민철프로필 신민철그는누구인가?

이름 신민철

 

출생 1986년 9월 5일, 서울특별시

 

학력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 학사)

 

종목 태권도

 

신체 170cm, 72kg

 

소속 레드불, 미르메, rrr엔터테인먼트

 

가족 부모님, 배우자 우혜림

 

경력

•2000 시드니 올림픽 태권도 홍보 시범

•2002 미국 이민 100주년 국가대표 태권도 홍보 시범단 선발

•2005~2008 태권도 시범단 ‘코리안 타이거즈(K-Tigers)’ 주장

•2008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시범

•2012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 주장

•2012 미르메 익스트림태권도 팀 창단 / 대표

 

소개

한국에서 생소한 종목이었던 익스트림태권도를 전파시킨 선두 주자다. 레드불로부터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으며 현재 미르메 시범단의 대표이다. 태권도 시범단인 K타이거즈와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오인용의 만담강호에서도 레드불에 관련된 인물로 찬조출연했다.

 

수상 기록

•2002년~2004년:경희대총장기 대회 품새부문 개인전 3년 연속 1위

•2006년:대한태권도협회장배 개인전 1위

•2013년:제1회 바다사랑 해양전국문무대전 1위 (대통령상 수상)

•2014년:레드불 킥잇 3위

•2016년:레드불 킥잇 1위

•2017년:레드불 킥잇 2위

 

기타

 

•MBC 리얼연애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우혜림과 같이 출연했으며, 7년 열애 끝에 2020년 7월 5일 결혼했다.

 

•2020년 7월 31일 우혜림이 소속된 rrr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블로그 이미지

boy906

스포츠인 소개하는블로그입니다.

,

지오바니로셀소프로필 지오바니로셀소그는누구인가?

이름 지오바니 로셀소 (Giovani Lo Celso)

 

생년월일 1996년 4월 9일

 

국적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출생지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로사리오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주발 왼발

 

등번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20

 

토트넘 홋스퍼 FC 18

 

신체 177cm / 69kg / A형

 

유스클럽 로사리오 센트랄 (2010~2015)

 

프로클럽

로사리오 센트랄 (2015~2016)

파리 생제르맹 FC (2016~2019)

→ 로사리오 센트랄 (2016 / 임대)

→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18~2019 / 임대)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19~2020)

→ 토트넘 홋스퍼 FC (2019~2020 / 임대)

토트넘 홋스퍼 FC (2020~ )

 

국가대표(2018~) Argentina AFA 20...23경기 2골

 

아르헨티나 출신의 토트넘 홋스퍼 FC 소속 축구선수이다.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클럽 경력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태어나 지역 축구팀인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팀에서 최고 수준의 유망주로 대우받으며 실력을 쌓던 로셀소는 팀에서 60미터 치달 후 득점을 기록하는 등 어린 나이에 프로 레벨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고, 이를 놓치지 않은 파리의 스카우팅에 의해 겨울 이적 시장에서 파리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다만 남은 시즌은 로사리오에서 보내고 2017-18 시즌 여름 이적 시장 개장과 동시에 파리로 넘어오는 형태의 계약을 맺음에 따라 17년 7월, 정식으로 파리 생제르맹의 일원이 되었다.

 

파리 생제르맹 FC

2017년 7월에 팀에 합류했다. 이적 이후, 경기에는 이따금씩 교체 자원으로 출전하고 있으나 우나이 에메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리옹전에서는 측면에서 수비를 제치고 크로스를 올려 리옹의 자책골을 유도하는 활약을 하기도 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와의 16강 1차전에 깜짝 선발로 기용되어 상대 미들진에 털린 끝에 멘탈이 나가 버리며 어이없는 수비로 페널티킥을 헌납하는 등 PSG가 패배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로셀소는 홀딩 미드필더가 아니라 제2의 디마리아라는 평을 듣던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애초에 이런 큰 대회에 홀딩 롤을 맡아본 적도 없는 어린 선수를 기용한 것 자체가 감독의 실수이다. 에메리의 입장에서는, 팀에서 베라티와 함께 듀오로 나오는 아드리앙 라비오도 그 자리에 넣으면 일정 수준 이상의 팀 상대로 한계를 보이는 데다, 팀의 믿을맨인 티아고 모타마저 부상으로 쓰러진 상황이라 드락슬러 기용을 포기하고 로첼소를 내린 것으로 보였는데, 모타의 부상이 아무 근거없는 이야기라는 말이 나오며 에메리가 극딜을 맞고 있다. 그래도 후반기 들어서는 거의 주전급으로 출전하고 있으며, 파리의 중원에서 제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18-19 시즌을 앞두고 토마스 투헬이 부임한 이후 입지를 잃으며 베티스로 1년간 임대이적했다. 완전 구매 옵션도 있다. 그리고 베티스에서 그는 빛이 되었다. 리그에서만 9골 4도움, 시즌 총합 15골 4도움을 기록하며 올시즌 베티스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근육질 몸으로 변한 것은 덤. 결국 2019년 4월 베티스가 로셀소에 대한 완전 구매 옵션을 발동, 4년 계약을 맺으며 베티스로 완전 이적했다.

 

그러나 시즌이 종료 된 후 레알 베티스에서의 활약 덕분인지 토트넘 홋스퍼 FC가 에릭센의 대체자로 노리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구단과 선수끼리의 연결도 굉장히 진한 상태이다. 하지만 베티스에서는 70m 유로를 원하고 있고, 토트넘에서는 55m 유로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이견을 보이고 있다. 결국 베티스측에서 먼저 협상종료를 선언하면서 로셀소의 토트넘 이적설은 거의 무산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가 싶다가 60m에 이적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로 가고있다.

 

토트넘 홋스퍼 FC

2019년 8월 8일 토트넘으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선임대 후 의무이적으로, 임대료 14m + 다음 시즌 유럽 대항전 진출 시 37m 납부 + 수수료로 총 53m에 이적하게 되었다.(단위는 파운드) 처음에 베티스가 이적료를 높게 불렀던 것은 로셀소의 이적 시 발생하는 이적료의 20%를 파리 생제르맹 FC에 납부해야하는 조항 때문이었는데, 어느 장사꾼의 협상 능력으로 위와 같은 방식을 통해 파리에 지급하는 이적료를 반으로 줄이게 되었다.

 

2019년 8월 9일(한국시간), 이적시장 데드라인을 20분정도 남기고 이적이 확정되었다. 이적료는 앞서 거론됐던 총 5300만 파운드. 1년 임대 후 완전이적이라 이번 시즌은 임대신분으로 뛰게 되었다. 등번호는 18번.

 

2020년 1월 28일(한국시간), 로셀소를 완전영입한다는 오피셜이 발표되었다. 계약 기간은 2025년까지이며 금액은 종전에 설정해둔 옵션 금액보다 저렴한 약 27m파운드. 총액 £43m(약 660억)에 완전이적을 완료했는데, 조금만 눈에 띈다 싶으면 거의 1000억씩 부르는 요즘 이적시장의 거품, 그리고 특히 자본 규모가 큰 프리미어리그로의 이적인 것을 감안할 때, 토트넘은 이런 젊고 실력있는 자원을 상당히 저렴하게 영입했다고 볼 수 있다.

2019-20 시즌

합류한지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고, 아스톤 빌라와의 개막전 명단에 들 수 있을지 관심이었는데 결국 출전 명단에서 제외됐다. 킥오프전에 입단동기인 라이언 세세뇽과 피치 위에 올라와서 팬들에게 얼굴을 비쳤다.

 

2R 맨체스터 시티와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교체 출전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80분이 넘어간 늦은 시간에 교체된 탓에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3R 뉴캐슬과의 경기에서도 출전했으나 팀 전체가 부진했고 로 셀소 역시 눈에 띄지는 못했다. 아직은 좀 더 녹아들 시간이 필요한 듯. 다만 윙크스의 패스를 받자마자 들어온 뉴캐슬의 압박 속에서 순간적으로 해리 케인에게 날카로운 킬패스를 보내는 모습으로 희망을 봤다는 팬들도 종종 있다. 이날 선발 출장했던 에릭 라멜라가 상대적으로 부진했기에 더욱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전에 9월 A매치 때 칠레 전에서 사타구니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장기 결장이 예상된다. 이로써 토트넘의 영입생 3명이 전부 부상으로 사실상 작년과 비슷한 0입 상태가 되었다.

 

이후 10월 23일에 열린 UEFA 챔피언스 리그 즈베즈다전에서 79분 델리 알리와의 교체 출전으로 복귀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4차전 즈베즈다 원정에서는 선발로 출전해 문전 혼전 상황 속에서 우겨넣듯이 선제골을 넣었다. 이는 토트넘 이적 후 첫 득점이다.

14R 본머스전에서는 88분에 손흥민과 교체되어 출전했다. 주제 무리뉴 부임 후 첫 출전.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서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무리뉴 부임 후에 더더욱 출전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

 

19R 브라이튼전에서는 손흥민이 나올 수 없어 선발 출전이 예상되기도 했으나 벤치에서 출발했다. 이후 56분에 라이언 세세뇽과 교체되어 경기장을 밟았다.

 

20R 노리치전에서는 깜짝 선발출전했다. 다만 경기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전반기 종료 시점까지 놓고보면 베티스에서의 활약상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출전 기회 자체가 적어 활약할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애초에 폼이 좋았다면 출전 기회가 적을 이유가 없다. 이제 주전들이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가 찾아올 만큼, 로셀소의 활약상이 더욱 중요해졌다.

 

21R 사우스햄튼전에서는 부상당한 은돔벨레를 대신해 이른 시간에 투입되었는데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계속 답답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팀은 대니 잉스에게 결승골을 실점하며 1:0으로 패배했다

 

1월 5일 FA컵 3라운드 미들즈브러전에서 후반56분 라멜라와 함께 교체 출전하여 동점골의 기점패스를 하기도 했으나, 그장면 빼고는 드리블이나 패스가 대부분 막히는등, 다소 답답한 모습을 보이며 팀의 무승부에 일조했다.

토트넘이 겨울 이적시장에서 완전이적 옵션을 발동시킬것으로 보인다. 임대 신분에서 벗어나 완전한 토트넘 소속이 될 예정.

 

22R 리버풀전에서는 교체출전했다. 투입 후 활발한 움직임과 적극적인 압박으로 공을 뺏어내 정확한 크로스로 결정적 찬스를 만들어 줬으나 손흥민이 아쉽게 득점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인도 이후에 세르주 오리에의 정확한 크로스에 이은 완벽한 찬스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로셀소는 교체 투입 후 토트넘의 전진성을 높이는데 공헌을 하며 후반 20분 동안은 토트넘이 공격을 주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여러모로 교체된 에릭센에 비해 훨씬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다음 경기 출전도 예상된다. 하지만 팀은 리버풀에게 0:1로 패배했다. 그래도 최근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델레 알리의 폼이 좋지 않아 교체로라도 자주 나올 것으로 보인다.

 

FA컵 3라운드 재경기 미들즈브러전에서 선발출장해 골을 기록했다. 그간 전방 압박이 부실해 영향력이 적다는 점이 단점이었으나 전방 압박을 통해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고 침착하게 골까지 만든 플레이었다. 이적 이후 홈구장에서의 첫 골. 경기는 에릭 라멜라의 결승골로 2-1 승리했다. 최근 몇 경기 동안의 모습을 보면 팀에 점점 적응을 해가고 있는 모습이며 무리뉴 감독의 신뢰를 어느정도 얻은 듯 보인다.

24R 노리치전에서 선발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해주었는데,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면서 토트넘의 거의 모든 공격의 기점 역할을 담당했다. 전반 38분에는 노리치가 공세로 전환될 때 토드 캔트웰에게서 공을 다시 탈취한 후 이를 손흥민에게 패스했고, 이것이 오리에를 거쳐 델레 알리의 골로 이어졌다. 여기에 후반 79분 델레 알리에게 스루 패스를 넣었고, 이것이 손흥민의 헤딩골로 연결되었다. 스탯 상으로는 볼터치-패스-찬스메이킹-드리블-볼경합-소유권 회복-태클 부문에서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했다. 또한 활동량 11.25km, 스프린트 14회로 2개 부문에서 팀내 2위를 기록했다.

 

FA컵 4라운드 사우스햄튼전에서 선발출전하여 전반전에 왼발 슈팅으로 골을 넣었으나, 동료 손흥민의 발에 공이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VAR 판독 후 오프사이드로 선언되면서 골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후반전에는 상대팀 3-4명의 압박을 벗겨내고 볼을 운반하여 라멜라에게 전달하였고, 라멜라가 손흥민에게 어시스트를 하며 골의 기점이 되었다. 이처럼 이 날 경기에서 토트넘 선수 중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EPL 25R 맨시티 전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맨시티가 거의 가둬팰 만큼 압도하고 있어서 볼을 잡을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볼을 잡을 때마다 인터밀란으로 이적한 에릭센의 공백을 잘 메꿀 만큼 훌륭한 볼 배급과 준수한 탈압박을 보였다. 경기 막바지에 볼을 빼앗긴 뒤에 무리한 백태클로 옐로 카드를 적립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 외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무리뉴 체제 이후 밀려날거라 여겼던 팬들의 예상을 깨고 확실히 EPL 무대에 어느 정도 적응한 듯 폼이 계속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FA컵 32강 사우스햄튼 전 재경기에서는 경미한 햄스트링 부상으로 결장해 중원의 공백이 걱정됐으나,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온 제드송 페르난드스가 잘 메꿔주면서 팀은 3-2로 승리하여 16강에 진출했다.

 

26R 아스톤 빌라 전에서 부상 회복으로 후반 61분에 다이어와 교체투입 되었다. 경기 내내 볼 배급으로 중원에서 활약했으며, 킬패스로 2번 정도의 득점 찬스를 만들었지만 알리의 찬스 미스로 어시스트를 기록 하지는 못하였다. 지금까지 보여준 활약을 보면 시즌 중반부터 살아난 윙크스와의 궁합이 상당히 좋아서 자주 부상당하는 은돔벨레 대신 중원에서 최고의 활약을 하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라이프치히 전에서 선발출전하여 코너킥과 프리킥, 킬패스, 탈압박 등을 하며 혼자 토트넘의 중원을 풀어나갔다. 허나 팀 공격진이 공중분해된 상황이라 0:1 패배를 막을 수 없었다.

 

2월 21일, 토트넘 1월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27R 첼시 전에서는 거친 반칙들을 여러차례 범하였고, 레드 카드 감의 반칙도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옐로 카드에 그치기도 했다. 이와 별개로 팀 내에서 그나마 탈압박이 되는 모습을 보이며 풀타임을 소화했다. 팀은 2-1 패배.

 

28R 울버햄튼 전에서는 몇번에 질좋은 패스를 뿌려주었지만, 팀은 2대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또한 경기막판 상대 페널티지역에서 공격에 참여하다가 역습이 되자 풀타임을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비하러 아군 페널티지역까지 와서 볼을 빼앗은 뒤 다시 역습하러 드리블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드리블도중 뒤에서 잡아끄는 반칙에 기절하듯이 쓰러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삿다.

FA컵 16강 노리치전에서 주말 리그 경기에서 90분 풀타임을 뛰고도 연장전 120분까지 뛰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연장전에는 힘이 빠져 전방압박을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장면을 보여주며 체력이 고갈되었음을 들어내었다. 29R 번리 원정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의 모습만 본다면 에릭센을 꽤나 잘 대체하고 있는 모습이다. 에릭센보다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현재까지 중거리 한 방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과 극단적인 왼발잡이라는 점. 에릭센이 2019/20시즌 겨울이적시장 토트넘을 떠나기 전까지 많은 출전시간을 부여 받지 못했는데도 상당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에릭센은 양발에 가까울 정도로 왼발과 오른발을 고루 잘 쓰는데 로셀소는 오른발을 써야할 상황에서 왼발 아웃프런트로 패스를 주는 등 극단적인 왼발잡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대로 수비 능력과 효과적인 탈압박이 에릭센과의 차별점으로, 해리 케인, 손흥민, 무사 시소코의 부상 공백과 델리 알리의 폼 저하로 인한 암울한 상황 속 마지막 희망이 되어가고 있다

29R 번리 전에서는 팀이 답답한 경기력을 보여주자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탕기 은돔벨레와 교체로 출전했다. 이 날 공격의 윤활유 역할을 하며 자신이 EPL 무대에 완전히 녹아들었음을 보여주듯 투입한지 5분만에 우측에 빈 공간으로 뛰던 에릭 라멜라에게 기가 막힌 빠른 패스를 넣었고 이는 팀의 만회골을 터뜨리는 페널티킥의 기점이 되었다. 또한 전반전에는 센터백으로 뛰다 후반전에 수미로 다시 올라온 에릭 다이어와 함께 투볼란치를 형성, 벌어진 공수 간격을 메꾸면서 넓은 시야를 가지고 빈 공간에 킬패스를 넣거나 빠른 스피드로 직접 공을 몰고 가는 적절한 판단력을 보이며 토트넘의 후방 빌드업에 빠져서는 안될 핵심 자원임을 몸소 증명하였다.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라이프치히 전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계속 공을 빼앗고 끊임없이 볼을 전달하고 패스를 넣어주고 경기 내에서 토트넘의 제일 위협적인 슛팅까지 날리는 등 정말 로셀소 혼자서 경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많이 나왔지만 팀 전체가 무너진 상황에서 3:0 패배를 막을 순 없었다. 결국 후반 81분 제드송 페르난드스와 교체되었는데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경기였기에 로셀소를 쉬게 해주려는 무리뉴의 의도가 보였으며 장지현 해설위원도 같은 의견을 냈다.

재개된 리그 30R 맨유 전에서는 스티븐 베르흐베인과 교체 출전. 팀이 전반적으로 내려 앉은 상황이라 별다른 활약은 없었다.

 

31R 웨스트 햄 전에서는 3선 플레이메이커로 선발 출장했다. 여전한 탈압박과 패스 감각으로 토트넘의 후방 빌드업을 책임졌다. 파트너 무사 시소코의 강력한 피지컬과 탈압박 조합이 나쁘지 않아 공격전개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32R 셰필드 전에서는 전방압박과 맨마킹에 탈압박을 하느라 템포를 살리지 못해 부진한 폼을 보였다. 중원의 핵심인 로셀소가 부진하니 볼 배급이 원활하지 못했고, 팀의 공격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해 안습한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33R 에버튼 전에서는 지난번과 달리 2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출장했다. 공수 양면에서 왕성하게 가담했고, 오랜만에 2선으로 출장한 지라 레알 베티스에서처럼 과감한 슈팅을 여러 차례 선보여 마이클 킨의 자책골을 유도하기까지 하는 등 다시 폼을 회복한 모습을 보였다.

35R 북런던 더비에서는 맹활약. 아스날 쪽에서 점유율을 차지했음에도 토트넘의 공 소유 상황에서 탈압박과 전진성 드리블, 킬패스 능력을 어김없이 발휘하며 숨을 돌리게 만들어주었고, 팀은 매서운 조직력을 보여주어 2-1 승리를 거뒀다.

 

36R 뉴캐슬 전에서는 다시 2선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출전했다. 2선과 3선을 오가며 좋은 모습을 보였고 루카스 모라와 해리 케인을 거쳐온 공을 끝까지 간수해 패스했고 이를 받은 손흥민이 이 패스를 골로 연결시키면서 드디어 리그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골 직후 손흥민이 로셀소를 들어올리는 셀레브레이션을 하였다.

 

37R 레스터 시티 전에서도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해리 윙크스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윌프레드 은디디를 마크해 빌드업을 방해했으며, 역습 시에도 넓은 시야로 좋은 스루패스를 넣어주며 3-0 승리에 견인했다. 다만 시즌 초에 있던 사타구니 부상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었고, 거기에 후반전 체력 저하까지 겹쳐 볼터치 미스가 많아졌다. 이에 에릭 라멜라와 교체되어 나갔다.

38R 크리스탈 팰리스에서는 숏패스로 해리 케인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팀은 1-1로 비기며 유로파리그 권인 6위에 안착하며 시즌을 끝냈다.

 

영입 초기에는 부상으로 인한 부침이 있었고 자신을 데려온 포체티노가 경질되고 무리뉴 부임 후에는 입지를 걱정해야했지만 오히려 무리뉴 휘하에서 건실한 활약을 선보이며 핵심선수로 자리잡았고 결국 여름 이적생 중 유일하게 돈값을 해준 선수라는 평을 받고 있다. 시즌 도중에 폼이 올라왔고 팀 사정상 3선에서 주로 뛰었기 때문에 공격포인트는 거의 없었지만, 프리시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20-21시즌에는 베티스에서의 모습처럼 공격포인트를 많이 기록해 주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아마존 프라임에서 제작한 토트넘 다큐멘터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본래 로셀소는 무리뉴의 구상에 없었다고 한다. 내성적이고 순한 면 때문에 승부욕이 약하고 그라운드에서의 영향력이 낮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그러나 로셀소는 스스로가 어떻게 뛰어야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와 동시에 훈련을 성실히 임하며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무리뉴의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승부욕과 터프함을 보여주며 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자, 무리뉴는 로셀소에 대한 생각을 고쳐 주전으로 기용하며 신뢰하였고, 로셀소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게 되었다.

 

2020-21 시즌

여름 휴가때, 로셀소는 다이어, 라멜라 및 나폴리 선수인 안드레아 페타냐와 함께 축구를 하였는데, 안드레아 페타냐가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이 나오게 되어서 로셀소는 다이어, 라멜라와 함께 자가격리를 하게 되어 입스위치전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입스위치전 이후로 다이어와 라멜라는 자가격리가 풀리고 나서 프리시즌 경기에 참여하였지만, 로셀소는 프리시즌 레딩과 버밍엄 시티전에서는 명단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8월 26일에 토트넘 선수들과 같이 스카이워크에 참여했고, 8월 29일 프리시즌 세 번째 경기인 버밍엄 시티전에 홈 경기장에서 직관으로 본 것을 인증사진으로 올리는 것을 보면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나중에 출전하지 못한 이유는 햄스트링 부상 때문으로 밝혀졌고, 이 부상 때문에 1라운드 에버튼과의 홈경기 개막전에도 결장했다. 경기 결과는 0:1로 토트넘이 패배를 당했으며, 토트넘은 이날 로셀소가 결장하면서 중원에서 탈압박을 하여 플레이를 풀어가면서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리그 2라운드 사우스햄튼 원정에서는 벤치에 이름을 올렸고,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선발 출장한 탕기 은돔벨레를 대신해서 교체 출장했다. 들어오자마자 좋은 전진패스로 역전골의 기점을 만들었고 경기 내내 좋은 볼운반과 연계를 통해서 팀에 활기를 불어주었다. 물론 미친 듯이 압박을 하던 사우스햄튼의 압박 강도가 전반전에 비해 약해진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로셀소가 들어온 뒤 토트넘 역시 볼이 전반에 비해 제대로 돌기 시작하면서 편안한 경기를 가져갈 수 있었다. 사우스햄튼전을 통해 중원에 창의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믿을맨 로셀소의 건재함과 은돔벨레가 폼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유로파 리그 3차예선 슈켄디아 원정에서도 벤치에 앉아있다가 1-1로 승부가 원점이 됐을 때 해리 윙크스와 교체되어 출전했다. 탕기 은돔벨레와 투볼란치로 나섰으며, 활동량과 수비가담이 많아졌지만 고질적인 느린 공수전환을 갖고 있던 은돔벨레의 뒤를 커버해주었고, 은돔벨레 못지 않은 탈압박과 패스 센스로 토트넘의 공격력에 활기를 불어넣어 3-1 승리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 마카비 하이파 전에서 선발출장하여 전반 36분에 감아차기로 시즌 첫 골을 기록했고, 39분에는 케인의 패스를 받아 두번째 골을 터트리며 3분만에 멀티골을 기록했다. 이 외에도 경기내내 좋은 패스도 간간히 찔러주며 맹활약 하였다. 경기가 토트넘 쪽으로 기울자 후반시작과 함께 델리 알리와 교체되었다.

 

그런데 경미한 부상으로 맨유전 원정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 후 더 큰 햄스트링(허벅지 뒷 근육) 부상으로 밝혀져 웨스트햄전에 출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1차전 LASK 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부상 복귀전을 치렀다. 짧은 시간이라 크게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패스 전개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3차전 루도고레츠 원정에서는 선발출전하여 후반전에 손흥민의 패스를 받아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상으로 인한 결장으로 경기 감각이 덜 올라온 건지 슈팅 영점이 잘 안 맞고 팀원과 동선이 겹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난 시즌 케인과 손흥민이 없던 팀에서 고군분투하며 뛰어다니던 때에 비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폼이다. 무리뉴 감독도 로셀소가 아직 작년의 풀핏을 못 찾았다고 했으며,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하였다.

 

리그 9R 맨시티전에서 은돔벨레와 교체되어 투입된 지 35초만에 케인의 패스를 받아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기록했으며, 이후에도 공수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4차전 경기에서는 부상으로 결장한다.

 

국가대표 경력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로 데뷔했다. 등번호는 20번이다.

 

2019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에 출전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팀 자체가 미완성된 전술 운용을 선보이며, 로셀소 또한 베티스에서의 활약은커녕 굉장히 부진한 활약을 보이며,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8강전때 1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0년 11월 A매치에서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파라과이와의 홈 경기에서 29분 팔라시오스의 부상으로 인해 교체 투입되었다. 이후 41분 곤잘렌스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후반 막판 메시의 골에도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아쉽게 VAR로 골이 취소가 되면서 1어시스트만을 기록하게 되었다.

다음 페루 원정에서는 선발 출장하여 다시 한번 곤잘레스의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플레이 스타일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메짤라로 나서는 선수지만, 측면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 수미는 아니기에 3선에서 플레이할때는 파트너가 중요해진다.

 

우선 장점은 일반적인 미드필더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전진성. 아르헨티나 선수답게 빼어난 테크닉을 활용해 탈압박을 통해서 공을 키핑하고 전진하는 능력이 좋다. 그 이후에 빈공간에 있는 동료에게 뿌려주는 킬패스또한 일품이다. 로빙패스, 짧은 패스가리지 않고 질이 상당히 좋다. 공간 이해도도 높아서 이를 이용해 과감히 박스 안으로 침투해 득점을 노리는 빈도도 많다. 이러한 득점력은 꾸준히 좋은 폼을 유지하며 주전으로 뛰었던 18/19시즌 공식대회에서 무려 14골을 득점하면서 입증한 상태.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한 뒤로는 빠르고 거친 프리미어 리그에 본인의 피지컬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 것인지 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빈도는 줄어들었다. 공을 잡을 때도 드리블을 하기보단 빠른 상황판단으로 볼을 연계하거나 순간순간 창의적인 전진패스를 하며 공격전개에 가담하고 있다. 수비적으로도 과거보다 개선되어 패스 차단이나 전방압박을 통한 볼 소유권 획득 등으로 역습 찬스를 이뤄내는 경우가 꽤 많다. 스피드도 준수한 편.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3선 미드필더로 뛰는 경우가 많았으나 별 활약을 하지 못했고, 베티스에서 2선으로 올라오면서 득점력을 갖추고 포텐이 터진 케이스인데, 토트넘에 와서 다시 3선에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뛰는 경우가 생기고 있음에도 우려와 달리 굉장히 잘해주고 있다. 심지어 플레이스타일은 다르지만 토트넘이 그렇게 찾고 있었던 무사 뎀벨레의 후계자가 은돔벨레가 아니라 로셀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고 있다. 리그 1에서만 뛰어본 은돔벨레보다 라리가에서 뛰며 리그 경기에서 많은 빅클럽을 상대한 로셀소가 프리미어 리그 적응이 더 수월한 듯 하다.

 

토트넘으로 들어올 당시는 에릭센의 대체자라는 설명이 많았지만, 사실 에릭센과는 판이하게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에릭센은 공격형 미드필더 혹은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우월한 시야와 양발을 활용한 킥으로 공격 전개를 이끄는 플레이메이커형 선수라면, 로셀소는 공격 전개를 하기보다는 직접 침투를 통한 득점을 노리는 데 능한 선수이다. 이에 상응하듯, 로 셀소는 왼발 킥의 결정력이 매우 좋다. 물론 토트넘 중원에서는 에릭센이 맡았던 롤처럼 날카로운 공격전개를 담당하는 경우도 많지만, 어디까지나 로셀소의 장점은 골 냄새를 맡는 능력이지 공격 전개가 아니다. 그렇기에 완벽한 양발 사용 능력과 우월한 시야, 킥력으로 볼을 보내주던 에릭센의 역할을 맡기에 딱 맞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피지컬과 좋은 탈압박, 패스, 왼발 킥, 결정력 무엇하나 빠트릴 수 없이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가장 중요한 전진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지금 현재 토트넘의 중원에서 플레이메이킹을 맡아줄 수 있는 선수라는 점은 확실하다.

단점이 있다면 극단적인 왼발잡이라 왼발 각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을 끄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라멜라마냥 오른발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라보나 킥을 쓰는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고 정 답이 없으면 오른발도 쓰기는 하지만 오른발의 퀄리티는 슛팅이든 패스든 왼발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다. 또한 공이 없을 때 침투하는 움직임은 좋지만, 좋은 위치를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아직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

 

수상

 

우승

 

•파리 생제르망 FC : 8회 우승

 

◦리그 1 (2): 2017-18

◦쿠프 드 프랑스 (2): 2016-17, 2017-18

◦쿠프 드 라 리그 (2): 2016-17, 2017-18

◦트로페 데 샹피옹 (2): 2017-18

블로그 이미지

boy906

스포츠인 소개하는블로그입니다.

,

한재웅프로필 한재웅그는누구인가?

이름 한재웅 (Han Jae-Woong)

 

생년월일 1984년 9월 29일

 

출신지 인천광역시

 

포지션 미드필더, 수비수

 

신체조건 178cm / 73kg

 

학력 부평고등학교

 

소속팀

부산 아이파크 (2003~2008)

대전 시티즌 (2008~2011)

전남 드래곤즈 (2012)

인천 유나이티드 (2013)

부리람 유나이티드 (2013)

인천 유나이티드 (2013)

울산 현대 (2014)

경남 FC (2015)

홍콩 레인저스 (2015)

이스턴 SC (2015)

대구 FC (2016~2017)

 

한국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생활 내내 대부분 한 팀에서 1년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팀을 상당히 자주 옮긴 저니맨이며, 그로 인해 상당히 저평가 받는 선수이다

 

경력

 

프로 데뷔 이전

 

만수중 재학 시절, 팀을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당시 주니어 국가대

표을 총괄하던 아브라함 브람 감독의 부름을 받아 U-17 대표가 되었으며, 2000년 U-16 AFC 챔피언쉽에서도 활약하였으며, 당대 축구 명문 부평고등학교에 진학 후에는 프로팀 스카우터의 주목을 받게되었고, 2002년 이근호, 김태영 등과 함께 에이젼트 지쎈과 계약을 맺은 후 2002년 6월, 부산 아이콘스와 프로팀 입단 계약을 맺게 되었고 (계약기간 3년) 네덜란드 축구 유학도 구단의 지원으로 갔다오기도 하며, 미래를 밝게 했다.

 

U-20 세계 청소년 월드컵 대표로 일찌감치 발탁되었으나, 2002년 큰 부상을 당해 낙마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세계 청소년 월드컵이 2002년에서 2003년으로 한 해 연기됨에 따라, 한재웅 선수는 부상 회복후, 본선 대표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의 청소년 월드컵 조별 예선 3차전에서 오른쪽 윙 포워드로 선발 출장하였으나,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남궁웅과 교체당하고 말았다. 결국 미국전을 0:2로 패배한 한국 청소년 대표는 독일을 이기고도 1승 2패로 조별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부산 아이파크

일찌감치 최전방 공격수로서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재능을 인정받던 한재웅은 2003년 부산 아이파크를 통해 프로무대에 입문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부산에서 간간히 교체 출장에 그치던 한재웅은 2005년 안효연 선수의 이적과 루시오등, 외국인 선수의 부진으로 주전 공격수로 도약할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2005년 부산의 중앙 공격수로 박성배의 서브로 나오거나, 투톱으로 루시아노와 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골 결정력은 어느 정도 있었으나, 드리블이나 몸싸움이 좋질 않아, 공격 찬스를 만들어내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살이란 어린 나이의 강점과 스피드와 득점 본능이 탁월하다는 점등에서 부산팬들의 기대를 모았던 한재웅은 2006시즌전 울산 현대와의 연습 경기에서 박동혁의 살인 태클로 인해 시즌 아웃을 당하게 되었으며, 끔찍한 부상 이후, 2006년 전부와 2007년 대부분의 시간을 2차례에 걸친 수술과 재활로 보냈으며, 회복한 이후에도 후유증 탓에 과거 보여줬던 스피드라는 강점도 사라진 상태였다.

 

결국 황선홍 감독은 한재웅을 주 포지션인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 훈련을 시키는데, 수비적 센스가 없었던 한재웅은 상당한 고생을 하게된다.

 

대전 시티즌

한재웅은 2008년 부산을 떠나 주승진과 트레이드로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고, 대전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주포지션인 윙어나 스트라이커 이외에 수비수로도 활약하였다. 비록 수비 능력은 떨어졌지만 공격적인 성향이 강했던 탓에 수비수로서 기용될 시에는 풀백으로 기용되었으며, 공격 능력으로 부족한 수비 능력을 커버하면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드러냈었다.

 

저니맨 시기 전남인천태국부리람 유나이티드울산경남FC홍콩레인저스 FC홍콩이스턴 SC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동안 무려 7번이나 이적을 했다.

2011시즌 종료 후 타 팀 이적설이 흘러 나오던 한재웅은 결국 2012년 대전을 떠나 황도연의 1년 임대와 김재훈의 완전이적의 조건 상대로 전남으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이에 대전팬들은 대전의 핵심 선수를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전남으로 내보냈다고 분노했다. 이후 전남에서는 주로 공격 자원으로 기용되었지만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시즌 끝까지 1도움에 그쳤으니...

전남에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한재웅은 결국 1년만에 전남을 떠나 안재준과 함께 박준태와 2:1 트레이드로 인천에 입단했지만 인천에 입단하자마자 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며, 부리람에서 부진하면서 5개월만에 인천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인천에서도 후반기 세 경기 출전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는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14년 한재웅은 인천을 떠나 울산 현대에 입단하였지만, 이 해 조민국 체제의 울산은 상당한 부진을 겪었고 한재웅의 플레이도 별다른 변수가 되지 못했다. 울산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2015년에는 경남 FC에 입단했지만 시즌 시작도 전에 입단 한 달만에 홍콩 레인저스 FC로 이적하며 홍콩 무대에 진출했다. 이 팀 소속으로는 반 년간 뛴 후 다시 홍콩의 다른 팀인 이스턴 SC로 이적했다.

 

대구 FC

한재웅은 2016년 대구 FC로 이적하며 K리그에 복귀하였으며, 입단 첫해에는 주로 팀이 공격수를 4명을 기용할 때 오른쪽 윙어로 출장하였다. 한재웅은 리그에서 총 15경기에 출장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으며, 팀의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대구 공격의 중심축인 브라질 트리오와 같이 기용될 때는 공격진에서 상당히 걷도는 느낌이였다.

 

승격한 후 2017시즌에는 리그에서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8년 기사에 따르면 은퇴 후 진주동중학교에서 감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중등리그 공동 3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K리그에서 149경기 12득점 6도움(2016-2017 대구FC 15경기)을 기록한 한재웅 선수가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플레이 스타일

피지컬 조건이 준수하고 발도 상당히 빠르다. 그리고 이를 활용한 돌파력도 상당한 수준. 그러나 골 결정력과 크로스 능력이 부족하여 공격수로는 활약하기 힘든 점이 있었고, 공격수 출신이라서 수비수로 뛸 때는 수비력 면에서 아쉬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동료들의 플레이만 있다면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지만, 하나씩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블로그 이미지

boy906

스포츠인 소개하는블로그입니다.

,

마이크타이슨프로필 마이크타이슨그는누구인가?

이름 마이클 제라드 타이슨 (Michael Gerard Tyson)

 

출생 1966년 6월 30일 미국 뉴욕 주 뉴욕시 브루클린 브라운스빌

 

국적 미국

 

신장 178cm 체중 109kg

 

복싱 전적 58전 50승 44KO 6패 2무효

 

체급 헤비급

 

별명 The Iron, The Baddest Man on the Planet, Kid Dynamite

1980~90년대 헤비급 복싱계 최고의 스타이다. 대중적인 인지도에서 만큼은 무하마드 알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복서로서는 최고의 인기와 유명세를 자랑한다. 말년에 몰락이 급격히 찾아오긴 했지만 쌓아온 경력과 실력도 그 인지도에 충분히 걸맞는 수준이라 할 만하다. 프로 데뷔 후 무려 37연승에 19연속 KO. 괜히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도핑을 한 점을 시인하고 자기관리에 실패하는 바람에 말년에는 선수로서나 사생활에서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등 복싱 전설로서의 대우만이 아니라 불명예스러운 평가도 받는 양면적인 복서이다.

 

출생과 성장

2살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강도짓을 일삼는 등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소년원에 수감되기도 했다. 형과 나이프로 찌르며 놀았다고 하니 정상인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더 화이팅에도 언급되는 비둘기 사건은 실화로, 10살일 때 도둑질한 돈 700달러로 새들을 사서 길렀는데 누군가가 그 중 한 마리를 훔쳐 목을 잘라놓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자 생에 최초로 싸움을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도둑놈 면상은 묵사발이 되었다고...

타이슨의 회고록이나 일대기를 다룬 뉴스 등을 봤을 때 어린 시절 소심한 아이였다고 한다. 타이슨 본인도 율리우스라 이름 붙인 애완용 비둘기가 동네 불량배에게 죽기 전까진 여자아이한테까지 맞고 다니던 소심한 아이였다고 회고한 바 있고, 본격적인 비행소년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은 10살의 나이로 브루클린의 흑인 갱단인 졸리스톰퍼에 가입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12살 때까지 체포된 횟수가 38번이었다고 한다

 

핵주먹 타이슨

소년원 복싱 트레이너 바비 스튜어트에 의해 명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와의 만남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복싱을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맷집, 트레이드 마크가 된 체중 이동을 통한 강렬한 초스피드 연타로 1985년 데뷔 이후 연전연승을 거듭, 결국 1986년 11월 26일 약관 20세의 나이로 트레버 버빅를 쓰러뜨리고 WB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덕분에 당시 국내에선 핵주먹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이 이후 무려 36번에 달하는 경기를 모두 이겼는데 19번 연속 KO승을 따낼 정도의 엄청난 괴물이었다. 첫 1패를 38번째 경기에서 당할 정도였으니 그 위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몰락

 

그러나 빠른 성공 만큼 몰락도 급히 닥쳐왔다. 트레버 버빅과의 타이틀 매치를 앞두고 양아버지이던 커스 다마토가 사망한다. 소년원에서 처음 만나 복싱을 가르치고 출소 후에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복싱 뿐 아니라 글과 예절 등을 가르치면서 타이슨을 머리 빈 복서가 아닌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려 했던 아버지 이상의 존재였다. 멘토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면 커스 다마토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었던 존재였다. 타이슨에게 있어서 커스 다마토는 단순히 트레이너나 멘토 정도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커스 다마토가 사망하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여 어리숙했던 그의 돈을 노리고 사기꾼들이 접근했다. 커스 다마토가 살아 있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당시 타이슨에게는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 주위에 아부꾼만 가득 차게 되자 타이슨은 점점 타락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생전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의 상처입은 자아를 파악하고 격려와 훈육을 통해 인격적인 성장 또한 이루어 준 데 반해, 커스 사후의 멘토나 프로모터들은 강력한 복서로 성장한 타이슨에게 "싸나이라면 생각이고 뭐고 꼴리는 대로 해라 너는 싸나이다" 같은 꼴마초 식의 조언이나 하고 있었다. 유년기의 상처가 깊었던 타이슨에게 이런 조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의 이미지도 나빠졌다. 대중의 이미지만 잃게 되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커스 다마토 사후26연승을 거둔다. 게다가 88년도 전반에 제이콥스가 죽고, 후반에는 제이콥스의 뒤를 이은 매니저와 세컨드 코치 루니와의 연속된 불화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못 하였고, 그 결과 타이슨은 점점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복싱 팬들은 커스 다마토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도 복싱의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며 아쉬워하고는 한다. 게다가 코치라고 들어온 사람은 아론 스노웰과 제이 브라이트였다.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WBC, WBA, IBF 헤비급 통합타이틀 전에서 당시 무명에 가까왔던 제임스 더글러스를 맞아 10회에 KO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패배로 그동안 37승 무패로 승승장구하던 타이슨의 경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권투 선수로서의 경력를 보나 인생 전체를 보나 이 경기를 기점으로 몰락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무하마드 알리와 레이 레너드 같은 전설들을 만든 전설적인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는 타이슨이 다마토 사후에 어깨 근육을 보면 연습량이 부족한 게 티가 난다고 언급했고, 크루저에서 헤비로 올라온 홀리필드가 타이슨을 이길 수 있단 말도 했었다.

 

감옥행

이 때쯤 발생한 미스 블랙 아메리카 참가자 Desiree Washington(데지레 워싱턴)을 호텔에서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서 유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3년만에 가석방되어 감옥에서 3년간 살기도 했다.

 

재판에서도 타이슨은 범행을 부정하였고, 타이슨의 변호사는 호텔에서 나와 병원으로 찾아간 피해자를 진단한 응급실 의사의 진단서와 범행시간 이후 피해자의 행동들을 지적하며, 주장의 부당성을 주장하였다. 성폭행 이후 타이슨은 방송이나 미디어 매체에 다시 출연해서 다른 일은 모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맞으나, 성폭행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형을 살고 나온 후 다시 재기에 나서서 1996년 9월 6일 WBA 챔피언 자리를 다시 되찾는다. 그러나 헤비급 강자 에반더 홀리필드에게 TKO로 패하며 타이틀을 내주고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된다

 

핵이빨

에반더 홀리필드와 리매치를 가지며 타이틀 탈환에 나서는데… 이 리매치에서 권투 역사에 길이 남을,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대형 사고를 일으키고 Bite Tyson 핵이빨이라는 굴욕스러운 별명과 더불어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몇 번을 복귀했으나 레녹스 루이스전, 윌리엄스전, 맥브라이드 전에서 패를 거듭, 마침내 2005년 6월 12일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TKO 패배를 당한 직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이 핵이빨 사건은 보통 타이슨의 아무런 이유가 없는 정신나간 돌발행동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홀리필드의 계속되는 고의적 헤드버팅이 발단이다. 물론, 치아로 물어뜯는게 잘했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홀리필드가 정말 더럽게 경기했다.잘 보면 헤드벗 말고도 로우 블로우에 은근슬쩍 니킥까지 시전한다. 게다가 심판도 수많은 헤드버팅을 무시하다가 막상 타이슨이 버팅을 하니까 바로 주의를 주는 등 편파판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은퇴 이후의 삶

성격 때문에 아내를 두들겨 패고 이혼당하면서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지급한다거나 그야말로 엄청나게 낭비하면서 결국 2003년 파산신고했다 복싱하면서 번 돈만 3억 달러, 즉 3000억원이 넘었다. 예금이 4억 달러였다고.. 타이틀 획득 후 16년 만에 파산인 셈이니 단순계산으로 1년에 200억씩 펑펑 쓴 셈. 현재는 이벤트에 얼굴 내비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중. 하지만 전처를 폭행한 점은 전혀 반성하지 않는데 '내 평생 최고의 펀치는 로빈(전 부인)에게 날린 바디 블로우'라고 하는 걸 보면 그 인생에 한 점 후회도 없는 듯하다

 

2000년대 후반 부터는 어찌어찌 개심했는지 말썽 안 피우고 사람답게 살면서 많은 팬들을 안도시키고 있다. 홀리필드와도 화해한 상태. 토크쇼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고, 홀리필드의 조미료 사업에 대해 서로 개드립을 날릴 정도로 친해졌다. "홀리필드가 만드는 조미료가 있다면 홀리필드 귀때기도 먹을 만했을 거다"라는 드립을 쳤고, 거기에 홀리필드가 먼저 "자기 귀때기 맛을 볼 테니 물어보라"고 개드립을 날렸다.

 

2010년 1월 12일(한국시각)일자 WWE RAW에 아들과 함께 특별 출연하였다.

외국의 동물 관련 프로에 출연해서 새 키우는 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사실 타이슨이 원래부터 새를 좋아했고 (위에서 기재되어 있듯 처음으로 대판 싸운 사고 자체가 키우던 비둘기를 누가 죽인 것부터 시작되는 점도 있었다) 복싱 안할 땐 늘 새 키우기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 경력이 워낙 길어서 이 분야에선 준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워낙 키우는 새가 많다 보니 소음 때문에 가끔 다른 주민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예상과는 달리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양해해달라고 통사정한다고 한다.

2012년 갑작스레 스파이크 리 감독과 뉴욕 브로드웨이와 라스 베가스에서 자기 자신을 주제로 한 원맨쇼를 진행했다. 공연 직전 그의 극장 앞에서 배트맨 상영관에서와 같이 총기난사를 하겠다는 글이 타이슨의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지만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2013년 토니상 오프닝에 타이슨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

 

현재는 쇼프로 단골 손님에 복싱 빅매치엔 빠지지 않고 관전하는 잘 나가는 셀러브리티다.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에 언변도 좋아서 여러모로 성공적인 방송 연예인의 삶을 살고 있다.

2015년부터 Hotboxin'이라는 개인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유튜브 구독자가 벌써 100만명을 넘어섰다.

 

2018년 캘리포니아 주가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하면서 대마초 농장에 투자했다.

 

홀리필드와 함께 풋락커 광고를 찍기도 했다. 잘려나간 귀를 돌려주며 화해를 신청하는 타이슨과 귀를 돌려받고 놀라는 홀리필드가 압권

2020년 5월 12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에 비디오를 올렸는데, 맹렬하게 복싱 트레이닝을 하고선 카메라를 쳐다보며 "I'm back."이라고 한다. 복싱에 다시 복귀를 준비하고 있음이 확실시되었고 자선경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경기는 전액 기부할 것이며 돈때문에 복귀하는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처음엔 에반더 홀리필드와 맞붙는듯 했으나 좀 더 거물급 선수라고 밝혔다. 대체 홀리필드보다 거물이면 누구인지 다들 궁금해하면서 별별 이름이 나왔는데, 현역 챔피언인 타이슨 퓨리까지도 언급되었다.

 

2020년 5월 23일 열린 AEW의 더블 오어 나씽에 출연해 새로 공개된 AEW TNT 챔피언십 초대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코디에게 벨트를 수여하는 것으로 출연했다. 이후 다이너마이트에도 출연해 크리스 제리코와 2010년 이후 다시금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이슨 15년만에 복귀

마침내 자선경기 상대가 결정됐다. 상대는 타이슨과 비슷한 나이인 로이 존스 주니어로 결정됐다.

 

타이슨은 29일(한국시각) 오전 11시 미국 로스엔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로이 존스 주니어와 자선 복싱 경기를 치른다.

타이슨은 경기에 앞서 치른 계체에서 220.4파운드(99.9kg)를, 로이 존스 주니어는 210파운드(95.3kg)를 기록했다.


타이슨은 지난 1986년 만 20살의 나이로 당시 챔피언인 트레버 버빅을 2라운드 KO로 제압하고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시 그의 체중은 221파운드 약 100.2kg로 이번 복귀전을 앞두고 45kg 가량 감량에 성공했다.

마이크 타이슨은 현역 시절 기록한 50승 가운데 44경기에서 KO승을 따냈다. 2005년 케빈 맥브라이드와 대결 이후 15년 만에 링 위에 오른다.


타이슨에 맞서는 로이 존스 주니어는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은메달리스트이자 미들급, 슈퍼미들급, 라이트헤비급, 헤비급 등 4체급을 제패한 전설적인 복서다.

한편 캘리포니아주 체육위원회는 두 노장 파이터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경기 중 어느 선수라도 피가 흐르거나 KO로 갈 조짐이 보이면 즉각 경기를 중단시키겠다는 것.

타이슨은 계체 뒤 기자회견에서 "나는 조심해서 경기하는 법을 모른다"며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고 싶지는 않고, 체육위원회를 화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엄포를 놨다.

두 선수의 경기는 2분 8라운드로 치러진다. 헤드기어를 착용하지 않는 대신 12온스 글러브 끼고 맞붙는다. 경기는 부심 없이 주심만 있다. 승패는 가리지 않지만, 세계복싱평의회(WBC)는 전직 복서 3명으로 비공식 채점단을 꾸려 승자에게 명예 벨트를 수여할 예정이다

 

복싱 스타일

최대의 복싱 시장인 미국에서도 타이슨의 평가에 대해 마찬가지이지만, 신체 능력과 기량만큼은 확실히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약물 중독과 수감으로 몰락하기 전까진 무적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상당히 많다. 헤비급의 체중에 라이트급의 스피드, 폭발적인 펀치력, 유연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체중이동은 어떤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하늘이 내려준 천부적인 재능의 영역이다. 여기에 경기력을 받쳐주는 스타성과 미국 팬들의 지지를 받는 헤비급 복서라는 상품성 면에서도 타이슨 이후 수십년간 이에 근접한 복서가 플로이드 메이웨더 정도이다. 결론적으로 역대 최강의 복서를 꼽을 때, 타이슨의 경력 전체가 언급되지는 않지만 타이슨의 전성기는 반드시 언급된다.

 

복싱 역사상 강력한 챔피언은 여럿 있지만 그처럼 센세이셔널한 인물은 없어, 아직도 호사가들이 최강 논쟁을 벌일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타이슨의 강점은 양훅의 파괴력은 물론 전무후무한 수준의 빠른 전진스텝 그리고 정말 뛰어난 헤드슬립과 위빙, 페인팅, 풋웍 등 헤비급 언더사이즈 스워머라는 전형으로 놓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인파이팅에 있다. 인파이터라면 당연히 맷집에 뛰어나겠거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위압감 이전에 거의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하는 선수였다.

마이크 타이슨은 작은 신장을 빼면 헤비급 답지 않게 원투 펀치나 연타력이 구사력이 경량급 엘리트복서보다도 더욱 부드러웠다. 공격일변도도 아니며 방어와 회피에도 신경을 쓰고 신체능력에 의존하는 헤비급 복서들과 달리 영리하고도 맞지 않는 지능적인 복싱을 구사했으며 이미 15살에 커스 다마토가 "기술적으로는 가르칠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재능이 엄청났다. 타이슨은 일반적인 헤비급 선수들과는 플레이 방식이 전혀 달랐는데, 110kg에 가까운 육중한 체중에도 불구하고 기계체조 선수처럼 유연한 몸과 빠른 스피드를 필두로 주먹을 피하는 모습은 마치 가벼운 라이트급 선수를 연상케한다. 허리와 등근육을 사용해 상체 전체를 좌우로 움직이며 뛰어난 동체시력으로 상대방의 잽을 모두 피해내는 슈퍼플레이는 전성기 그의 주특기였다. 당장 맨 위 움짤을 보면, 자기보다 큰 상대의 펀치를 바닥에 기는 수준의 낮은 위빙으로 절묘하게 피한다. 정타가 안들어가니 그걸 무리해서 따라가려는 상대는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지치고 방어가 허술해지는 틈을 노린 카운터를 맞고 쓰러지는 것이다.

그를 상대한 대부분의 장신 헤비급 복서들은 당연히 타이슨보다 리치가 길다 보니 잽으로 찔러넣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느긋하게 아웃복싱하려 했지만 타이슨은 종전의 스워머 인파이터와는 달리 멈춰서 잽을 보거나 막지 않고 경지에 오른 헤드슬립으로 그냥 잽을 흘려버린 뒤 들이대면서 원투를 치는 선수였기에 헤비급의 평범한 빅맨 아웃복서들은 타이슨의 무시무시한 스피드를 가진 러시에 어어 하다가 후드려맞고 추풍낙엽처럼 완파당했다. 이러한 장점은 WBC 챔피언이었던 트레버 버빅과의 시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빅맨들이 즐비한 헤비급에서 타이슨처럼 엄청나게 빠른 공격 스피드를 가진 경우는 정말 드물다. 다른 헤비급 복서보다 같은 시간에 한두 스텝은 더 밟을 정도니 미들급에서도 나오지 않는 공격 스피드를 가진 것으로, 천부적 재능의 영역이다. 거기다 작은 키에 비해 힘이 좋고 작은 덕에 펀치를 항상 올려치는 궤도였기 때문에 막아도 가드가 들리고 맞으면 턱이 들렸다. vs 토니 터커 경기를 보면 터커와 타이슨이 잽싸움을 벌이는데, 타이슨의 잽이 터커에게 먼저 닿는다 타이슨의 리치와 터커의 리치는 26cm가 차이난다. 그 정도로 독보적이고 당시 헤비급의 트렌드에 강렬한 한방을 먹인 복서였다.

 

WWE(월드 레슬링 엔터테인먼트)에서의 활동​

마이크 타이슨은 1998년 WWF (WWE의 전신)에서 인터뷰가 있는데, 스티브 오스틴과 마찰이 생겨 대립이 일어났다. 그 당시에는 숀 마이클스 편을 들었지만 레슬매니아XIV에서 숀을 배신하고 스티브 오스틴의 편을 들었다. 최근에 WWE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출연 작품​

킥복서 더 레전드 - 브릭스 역

엽문3: 최후의 대결

블로그 이미지

boy906

스포츠인 소개하는블로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