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은 지난 23일 인도네시아 감독을 맡게 된 사실을 공개했다. 신 감독은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하진 않은 상태로 오는 26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해 계약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신 감독은 "계약조건 조율은 거의 끝났고 상황이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지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이끈 신태용 감독은 대회 이후 파울루 벤투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이후 휴식을 취하며 향후 거취를 두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프로팀에서의 러브콜도 있었지만 결국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택했다.

신태용 감독이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를 맡게 되면 베트남 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과의 동남아 무대 한국인 감독 대결이 펼쳐칠 예정이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G조에서 함께 속해 있다.

인도네시아는 현쟈 G조에서 5연패를 당해 사실상 예선 탈락이 확정적인 상태다. 인도네시아는 2020년 6월 4일 베트남과 원정으로 예선 최종전을 치를 예정이며. 이 경기를 통해 신 감독과 박 감독은 월드컵 2차 예선에서의 맞대결이 주목이 됩니다.

 

신태용프로필 신태용그는누구인가?

 

이름 신태용 申台龍 | Shin Tae-yong

 

출생

 

1969년 4월 11일 (51세)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리

 

학력

영해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경기대학교 대학원(석·박사)

 

신체 키 174cm | 몸무게 72kg

가족 배우자 차영주 아들 신재원 아들 신재혁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등번호 7번

 

선수

성남 일화 천마(1992~2004)

퀸즐랜드 로어 FC(2005)

 

감독

퀸즐랜드 로어 FC(2005~2008 / 코치)

성남 일화 천마(2009 / 감독대행)

성남 일화 천마(2010~2012)

대한민국 대표팀(2014 / 감독대행)

대한민국 대표팀(2014~2016 /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2015~2016)

대한민국 U-20 대표팀(2016~2017)

대한민국 대표팀(2017~2018)

인도네시아 대표팀(2020~)

기타 JTBC(2019 / 해설위원)

 

국가대표 23경기 3골(대한민국 / 1992~1997)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20년부터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다.

경상북도 영덕군 출생으로 영해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경기대학교 대학원(석·박사)을 졸업하였다. 미드필드에서 공수를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며 '꾀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감각적이고 지능적인 플레이로 패스할 때와 드리블 할 때를 확실히 구분하여 '그라운드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현역시절 포지션은 MF(미드필더)였고 주로 중앙의 공격적인 위치에서 활약했다.

신태용 감독의 부인은 차영주이며 신태용 감독과 한 살 연하로 올해 나이가 50살이라고 합니다.

신태용과 부인 차영주는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는데 부인 차영주는 선수시절붙터 신태용 감독의 열혈 팬이었다고 합니다. 신태용 과 차영주는 1995년 결혼식을 올렸으며 신태용과 차영주 사이에는 자녀 아들 2명이 있으며 신태용 아들 신재원은 현재 서울 FC멤버로 있습니다. 신재원은 1998년 9월16일생으로 22살입니다. 키 183cm 체중 74kg 포지션은 공격수입니다.서동원 감독이 이끌고 있는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17학번으로 재학중에 2019시즌 신인 지명으로 FC서울에 입단하였습니다.

 

현역 은퇴 이후로는 성남 일화 천마의 감독과 K리그 홍보대사, tbs 교통방송의 해설위원 등을 맡았다.

관운(官運)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 초기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 코치를 역임 중이었는데, 23세 이하 대표팀 이광종 감독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A대표팀 코치였던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그리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해서 U-23 대표팀을 8강에 진출시킨다. 그 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던 안익수가 U-20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한, 2016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조별 리그 탈락의 수모를 당해서 갑자기 경질된 뒤 리우 올림픽에서의 지도력을 검증받은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신태용이 이끈 U-20 대표팀은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16강에 진출한다. 그 다음에는 울리 슈틸리케가 월드컵 예선에서 카타르에게 패하며 갑자기 경질되면서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급하게 임명되었다. 좋게 말하면 관운이지만, 실상은 전부다 땜빵이다

 

감독 커리어 내내 조별리그 탈락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성남 일화 감독 시절 한요윤으로 요약되는 폭망의 2012시즌에서조차 신태용의 성남은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다만 A대표팀 감독으로 도전한 러시아 월드컵은 스웨덴전 전까지 5승 3무 1패 13득점 7실점이라는 좋은 결과와 꽤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4-4-2 포메이션 대신 준비가 덜 된 4-3-3이라는 도박수를 던졌다가 실패하는 등 1~2차전에서 패배하면서 여론의 질타도 많이 받았고 토너먼트 진출에도 사실상 실패한 상태였지만, 그런 와중에 마지막 3차전에서 주 포메이션인 4-4-2를 들고 나와 독일에게 승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독일전의 통쾌한 승리로 신태용 감독 재계약론도 힘을 얻었지만 축구협회에서는 김판곤을 감독선임위원장으로 앉히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원했다. 체계적인 국대 시스템의 안착을 위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했고 그 결과 파울루 벤투에게 바통을 넘기게 되었다.

 

클럽 경력

 

성남 일화 천마 (1992~2004)

 

신태용이 K리그에 남긴 발자취는 범상치 않다. 현역 시절 행적을 따라가보면 윤상철[18]이나 울산 현대의 레전드 김현석 못지 않은 기록의 사나이. 참고로 성남 일화 천마에서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절 얻은 우승 트로피의 숫자는 K리그 최다이며 2010년 기준, 여기의 90% 이상이 그가 선수 시절에 얻은 업적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일화 천마에 입단하여 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일화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K리그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한다. 당시 일화 감독은 이름난 빠따 맹장 박종환이었고, 발레리 사리체프, 고정운, 이상윤, 박남열 등 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리더 신태용이 있었다. 특히, 박남열과의 황금 콤비는 지금도 골수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찬양을 받을 정도다.

1995년 신태용은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했고, 리그 MVP를 차지한다. 또한 연말에 열린 1995-1996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마저 제패하며 일화 천마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여담으로 이 해 포항 아톰즈와 벌인 챔피언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꼽는다.

 

1996년 일화 천마는 천안시로 연고지를 이적한다. 또한, 상부와 불화를 겪은 박종환 감독이 해임되고 이장수 당시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았다. 이후 일화는 꼴찌까지 떨어지는 암흑기를 겪는다. 하지만 신태용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이 때는 아예 리그 득점왕까지 먹었는데, 미드필더로 뛰면서 먹은 득점왕인데다가 K리그 MVP를 수상했다. 특히, K리그 MVP를 2회 이상 수상한 것은 2017년 기준 신태용과 이동국(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 단 두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며, 신인상과 MVP, 득점왕을 모두 수상한 적이 있는 경력 역시 신태용과 이동국, 그리고 정조국 단 세 사람만이 보유한 기록이다. 또한, 라피도 컵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을 2번째로(첫 번째는 1986년 정해원) 기록한다. 역시, 그 이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이때까지 신태용은 프로데뷔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다.

1997년 천안 일화는 이장수 감독 대신 벨기에 출신의 레네 감독을 영입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한다.

 

1998년 개인 통산 30득점 30도움을 기록. 이 때 독일 분데스리가의 한자 로스토크의 영입 제의를 받아 유럽에 진출할 듯 했으나 무산이 되었다. 

 

1999년 차경복 감독이 천안 일화를 맡는다. 이때 첫 FA컵 우승을 차지한다.

 

2000년 개인 40득점 40도움을 기록한다. 같은 해에 일화 천마는 연고지를 성남시로 옮겨 다시 한번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2001년 50득점 50도움을 달성한다. 그리고 성남 일화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K리그 3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남긴다. 이때도 성남은 우승 청부사 샤샤를 비롯해, 김대의, 김상식, 김영철, 김도훈, 윤정환, 이싸빅, 이성남 등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다.K리그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는 2003년의 성남 일화 천마를 K리그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로 거론하기도 한다.

 

그렇게 신태용은, 리그 3년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무려 두 번이나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2003년 K리그 최초로 60득점 60도움을 기록한다.

또한 팀이 성남 일화로 재도약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다. 2019년 현재까지 60-6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신태용, 에닝요, 이동국 단 셋 뿐이다. 1979년생 김은중이 50-50 기록을 달성했고, 두 번째 60-60클럽 가입은 2013년에 에닝요가 달성했다. 이어서 이동국이 2014년 7월 20일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K리그 통산 세 번째 60-60 클럽에 가입했다.

2003 시즌에는 K리그 팬들의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장면 2개를 선사한 적도 있다. 하나는 모란(성남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마계대전 경기. 수원의 서포터즈인 그랑블루가 코너킥을 차러 가던 신태용을 향해 경기장에 물병을 던지자, 신태용은 그걸 집어들어서 원샷을 하고 따봉을 선사해 준 일화가 있다. 또다른 경기인 대전 시티즌 원정경기에서는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시키고, 후반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김해운을 대신하여 골키퍼로 활약했다. 비록 두 골을 먹기는 했으나, 팀은 3-2로 승리했다.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성남과 재계약하지 못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성남 일화 천마에서 변변한 은퇴식조차 갖지 못해서 성남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당시 신태용은 성남에서 더 뛰고 싶어서 플레잉 코치도 괜찮고 연봉도 구단측에 맡기겠다는 등 재계약에 의욕적이었는데 불발된건 좀 의문이다.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을 기록했다. 신태용이 남긴 도움 기록은 무려 2015년에 가서야 염기훈이 경신한다.

2017년 현재 K리그 역사상 100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단 8명 뿐이다. 현역 선수로는 이동국(180골), 데얀(141골). 그리고 은퇴한 선수로는 김은중(120골) 우성용(116골), 김도훈(114골), 김현석(110골), 샤샤(104골), 윤상철(101골)이 전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포워드지만, 신태용은 미드필더였다. 사실 꿈의 100골 달성도 가능했지만, 100번째 골은 필드골로 넣겠다는 공약 때문에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또한, K리그 최초 400경기 출장 기록도 신태용이 세웠다. 이 기록은 한동안 최다출장 기록이기도 했는데, 이 기록을 경신한 선수는 김병지 골키퍼로 2006년에 갱신했다. 이후 필드 플레이어로는 2007년에 김기동이 기록을 깼으며, 최고 출장 기록은 김병지]가 보유하고 있다. 필드플레이어 가운데 최고 출장 기록, 최고령 골, 최고령 도움은 김기동이 가지고 있다.

 

퀸즐랜드 로어 FC (2005)

그리고 2005년 호주로 떠나 퀸즐랜드 로어 FC에 입단해 1경기에 출장한 후, 발목 부상을 입고 그 해 9월에 완전히 은퇴를 선언하며 곧바로 퀸즐랜드 로어 FC의 코치가 되었다. 이때 알게 된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를 나중에 성남 감독으로 부임한 뒤 직접 찾아가서 영입했다. 그리고 선발 수비수 겸 주장으로 중용했다.

 

그가 코치를 맡을 당시 2006년 퀸즐랜드에 갓 부임한 감독이 프랭크 파리나였는데, 언어 문제와 지도 방향에 이견을 보여 그다지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파리나 감독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그리고 파리나 감독이 리우 올림픽 조별 리그에서 피지 축구올림픽대표팀을 맡으면서 U-23 사령탑으로 서로 재회하게 됐다. 결과는 한국이 8-0으로 대승했다.

 

국가대표 경력

 

다만, 이렇게 화려한 클럽 커리어에 비해 대표팀 커리어는 아쉬움이 남는다.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거친 엘리트 선수였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K리그 골수팬이 아니고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A매치에서 통산 23경기 3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K리그에서 신태용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아쉬운 기록이다.

 

1992년에 아랍에미리트와의 평가전을 통해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지만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는 뛰지 못했고, 국가대표로서 유일하게 참가했던 메이저 대회인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8강 이란전의 2:6 참패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신태용의 이름이 포함되는 일이 없었다.

차범근 감독 체제에서 1997년 상반기까지는 뽑혔으나 월드컵 최종예선 때부터는 제외되었고, 이후 허정무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 때에도 소속팀과 함께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도 대표팀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사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가대표 축구의 조직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당시 신태용은 30대 중반의 노장 선수였음에도 여전히 K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혹자들은 신태용이 레전드급 선수이면서도, 기본기나 퍼스트 터치와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말들도 한다. 또 당시 한국 축구의 플레이메이커는 홍명보로 고정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K리그에서 뛰어난 미드필더라고 해도 홍명보와 궁합이 맞지 않다면 국가대표에서 미드필더로 뛸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신태용은 윤정환과 함께 그런 류의 대표격인 선수였고, 그러다 보니 국가대표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도자 경력

 

2004년 은퇴 후, 퀸즐랜드 로어 FC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8년 12월 1일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친정 팀 성남 FC의 감독 대행으로 첫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2009 K-리그에서 시즌 초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걱정을 샀지만 리그 후반기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성남을 K리그에 4위에 안착시켰다. 이후 상위 6개 구단이 진출하는 플레이오프격인 K리그 챔피언십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FC와 전남 드래곤즈, 포항 스틸러스를 연이어 격파하며 정규 리그를 1위로 마친 전북 현대 모터스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홈에서 벌어진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선 0-0으로 무승부를 거뒀으나 원정에서 치러진 2차전에서는 1:3의 스코어로 완패를 당해 성남의 우승은 좌절되었다. 이 때 출장 정지로 벤치에 앉을 수 없게 된 경기가 아님에도 관중석으로 올라가 무전기를 통해 선수들을 지휘해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른바 '무전기 매직'이 화제가 되었다.

2010년 2월 성남 FC의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시즌 초 예산 감축으로 2009 시즌보다 팀의 여건이 더 안 좋아진 상황에서 AFC 챔피언스리그와 리그를 병행해야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많았으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리그에서도 꾸준한 상위권의 성적을 내어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AFC 챔피언스리그 16강과 8강, 4강에서 각각 감바 오사카, 수원 삼성 블루윙즈, 알샤바브를 꺾고 팀을 결승전에 진출시켰으며, 3명의 주전 선수가 결장한 결승전에서 조브 아한 FC를 3-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신태용 감독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선수-감독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2011년에는 리그에선 상위권이 아니었으나, FA컵에서 숙적 수원 삼성 블루윙스를 꺾고 팀에 2번째 FA컵을 안겼다.

2012년 주요 선수가 다른 팀으로 간 상태에서 대신 받아온 선수들이 팀에 적응하지 못하며 내내 마찰이 있었다. 12월 8일 2012 시즌을 리그 12위로 마감한 성남은 신태용 감독의 사임을 공식 발표하였다. 하지만 박규남 단장의 사표 제출 지시에 따른 타의에 의한 사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경질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2014년 8월 18일 베네수엘라 대표팀과 우루과이 대표팀과의 A매치 평가전을 앞두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 코치이자 사실상의 감독대행으로 발탁되었다. 지도자로서 A매치 데뷔전이기도한 베네수엘라 전에서는 전방부터 압박해 들어가는 공격적인 전술로 3 대 1 승리라는 값진 성과를 올렸다. 이후 대표팀의 새로운 외국인 감독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선임되면서 신태용은 정식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확정되었다.

 

이광종 감독이 지병으로 하차하고 최문식 코치가 감독대행직을 수행하고 있었던 대한민국 올림픽대표팀 감독에 2015년 2월 5일자로 부임했다. 임기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으나, 8강전에서 온두라스에 패배하여 2회 연속 메달 획득에는 실패하였다. 그 이후로 안익수 감독의 후임으로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감독직에 취임하였다. 자국에서 열린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전에서 포르투갈에게 패배하였다.

2017년 7월 4일 울리 슈틸리케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이란전서 데뷔전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0:0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9월 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0 : 0으로 비겨 총 4승 3무 3패(승점 15점)으로 조 2위를 차지해 간신히 2018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대한민국은 2018년 FIFA 월드컵에서 전 대회 우승국인 독일과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 그리고 지역예선에서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를 탈락시키고 올라온 돌풍의 팀 스웨덴과 함께 F조에 속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은 1차전에서 스웨덴에 0 : 1로 무기력하게 패배하였고 2차전에서 멕시코에마저 1 : 2로 패배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다. 마지막 3차전에서 전 대회 우승국인 독일을 2 : 0으로 이기는 이변을 일으키며 다시 16강 진출의 불씨를 되살렸으나 같은 시각 멕시코가 스웨덴에 0 : 3으로 대패를 하며 결국 1승 2패의 전적으로 조 3위에 그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독일을 이기는 이변을 일으킨 덕에 축구팬들로부터 어느 정도 재평가를 받았고 본인 역시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독일을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킨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월드컵 종료 후 계약만료로 감독직을 내려놓았고, 그의 후임으로 파울루 벤투가 선임되었다.

 

이후 2019년 12월 23일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사이먼 맥메너미 감독 후임으로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내정되었다.

 

해설가 경력

성남의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2013년 6월에 열린 2013 툴롱컵 국제대회를 통해 JTBC에서 축구 해설위원으로 데뷔하였다. 9월에는 K리그 홍보대사로도 임명되었으며 2014년 3월부터는 tbs 축구 해설위원으로 발탁되어 K리그 클래식 중계를 담당하였다.

 

이후 2019년 1월에 열리는 2019년 AFC 아시안컵을 중계하기 위한 JTBC의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경력 목록

 

클럽 경력

1992년 ~ 2004년: 성남 일화 천마

2005년: 퀸즐랜드 로어 FC

 

국가대표팀 경력

1987년 FIFA U-16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1995년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국가대표

1996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지도자 경력

2005년 ~ 2008년: 퀸즐랜드 로어 FC 코치

2008년 ~ 2012년: 성남 일화 천마 감독

2014년 ~ 201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5년 ~ 2016년: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년 ~ 2017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년 ~ 2018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수상 내역

 

선수

성남 일화 천마K-리그 우승 6회 (1993년, 1994년, 1995년, 2001년, 2002년, 2003년)

K-리그 준우승 1회 (1992년)

FA컵 우승 1회 (1999년)

FA컵 준우승 2회 (1997년, 2000년)

아디다스 컵 우승 2회 (1992년, 2002년)

아디다스 컵 준우승 2회 (1995년, 2000년)

하우젠 컵 우승 1회 (2004년)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1회 (2002년)

대한민국 슈퍼컵 준우승 1회 (2000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1996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97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2004년)

아시아 슈퍼컵 우승 1회 (1996년)

개인1987년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수상

1992년 K-리그 신인상 수상

199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3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5년 프로축구 골든볼 수상

1995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6년 K-리그 득점왕 수상

1996년 디아도라 프로축구 대상 수상

1996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0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1년 K-리그 MVP 수상

2001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2년 험멜코리아 - 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선수상 미드필더 부문상 수상

200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3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감독

성남 일화 천마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2010년)

FA컵 우승 1회 (2011년)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1회 (201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EAFF E-1 풋볼 챔피언십 우승 1회 (2017년)

 

코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AFC 아시안컵 준우승 1회 (2015년)

EAFF 동아시안컵 우승 1회 (2015년)

 

클럽기록

 

클럽

리그

리그컵

대륙

총계

시즌

클럽

리그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대한민국

리그

대한민국 FA

리그컵

아시아

합계

1992

일화 천마

K-리그

18

7

-

5

2

-

23

9

1993

28

5

-

5

1

-

33

6

1994

23

7

-

6

1

?

?

29

8

1995

26

6

-

7

0

?

?

33

6

1996

천안 일화 천마

24

18

?

?

5

3

?

?

29

21

1997

7

0

?

?

12

3

?

?

19

3

1998

7

1

?

?

17

2

-

24

3

1999

25

4

?

?

10

5

-

35

9

2000

성남 일화 천마

27

7

?

?

7

2

?

?

34

9

2001

27

5

?

?

9

0

?

?

36

5

2002

26

4

?

?

11

2

?

?

37

6

2003

38

8

2

0

-

?

?

40

8

2004

20

4

0

0

11

2

?

?

31

6

오스트레일리아

리그

리그컵

오세아니아/아시아

합계

2005

퀸즐랜드 로어

A-리그

1

0

 

 

 

 

 

 

 

 

합계

대한민국

296

76

 

 

105

23

 

 

401

99

오스트레일리아

1

0

 

 

 

 

 

 

 

 

총 계

297

76

 

 

 

 

 

 

402

99

 

국가대표팀 득점

 

일자

장소

상대팀

득점

결과

대회

1996년 4월 30일

텔아비브

이스라엘

1골

5-4

친선 경기

1996년 8월 11일

호찌민 시

베트남

1골

4-0

1996년 AFC 아시안컵 예선

1996년 12월 16일

두바이

이란

1골

2-6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전적

 

2014 2 1 0 1 3 2 +1 50% 이동국 (2) (감독 대행)
2017 9 3 4 2 13 12 +1 33.33% 손흥민, 김신욱 (3)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우승)
2018 5 2 1 2 7 7 0 40% 김신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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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 대표팀은 10일필리핀 마닐라 리살 기념 경기장에서 열린 SEA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3-0으로 승리를 따냈다.

1959년 방콕 대회 이후 무려 60년 만의 우승이다. 이전까지 베트남은 이 대회에 결승에만 무려 7번이나 올라간 전적이 있지만 한 차례도 우승과 인연을 만들지 못했다. 그렇기에 전날 경기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 대표팀의 우승은 베트남을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박항서 감독은 2017년 9월부터 베트남 축구의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고 작년에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선수권 준우승으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AFC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을 이끌어내며 기적의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4강 진출에 이어 스즈키컵 우승, 여기에 아시안컵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며 베트남 축구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이번 대회 결승에서도 베트남은 인도네시아를 만나 우위를 보이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승리를 가져왔다.

전반 38분 주장 도흥중의 프리킥을 도안반하우가 헤딩으로 공을 쳐내며 첫 포문을 열었고 후반 13분에 도흥중의 슛으로 2-0을 만든 베트남은 후반 14분에 곧바로 도안반하우가 승리에 쐐기를 박는 골을 넣으며 베트남의 승리를 완성했다.

박 감독은 후반 30분에 심판과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했지만 선수들은 격렬하게 덤벼드는 인도네시아 선수를 차분하게 상대했고 승리를 완성했다. 7전 8기만에 이룩한 베트남의 이번 우승, 그 중심에 박항서가 있었다.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Park Hang-Seo(박항서)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170cm

포지션

미더필더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청소년 클럽 기록

1977-1980

한양대학교

클럽 기록

연도

클럽

출전 (골)

 

1981
1981-1983
1984-1988

제일은행
육군 축구단 (군복무)
럭키금성 황소

 

 

99 (15)

 

국가대표팀 기록

1977-1978
1979-1980
1981

대한민국 U-20
대한민국 B
대한민국

 

1 (0)

 

지도자 기록

1989-1990
1991-1996
1994
1997-2000
2000-2002
2002
2003-2004
2005-2007
2008-2010
2012-2015
2017
2017-
2017-

럭키 금성 황소 (트레이너)
LG 치타스 (코치)
대한민국 (트레이너)
수원 삼성 (코치)
대한민국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3
포항 스틸러스 (코치)
경남 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
창원시청
베트남 U-23
베트남

 

박항서프로필 박항서그는누구인가?

박항서(朴恒緖, 1959년 1월 4일(61) - )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이다. 2017년부터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본관은 반남이다.

 

학력

생초초등학교 (졸업)

생초중학교 (졸업)

경신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체육학과 (학사)

 

신체 170cm 62kg

 

클럽 경력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고, 그 해 군에 입대하였고 육군 축구단 충의에서 활동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1984년 럭키금성 황소 (현 FC 서울)에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1984년 4월 22일 유공 코끼리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1985년 K리그 우승과 1986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1988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

1977년 제19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으며1979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인 충무에 선발되었다. 1981년에는 1진인 화랑팀에 선발되었다.

 

지도자 경력

1988년 은퇴한 직후에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코치로 지내다가 199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2000년 2월까지 활동하였다.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하였다.

 

 

2000년 10월 허정무 감독이 사퇴한 뒤 2000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고, 12월 한·일 정기전에는 임시 감독을 맡았다.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임되자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선수단의 융화를 일궈내는 등 2002년 FIFA 월드컵 4강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나자 2002년 8월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아 무보수 임시 감독이라는 논란이 나왔고 대한축구협회가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고문 자격으로 벤치에 착석시키려고 하자 불만을 표출하여 엄중 경고를 받았다. 결국 9월 정식 계약을 맺었지만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는 데 그쳐 10월 아시안 게임 폐막 후 경질되었다.

이후 2003년 포항 스틸러스에 코치로 입단하여 2004년까지 활동하였고 그 뒤 잠시 전남 드래곤즈 기술 고문을 맡았다.

2005년 8월 새롭게 창단된 경남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7년 정규 리그 4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포항 스틸러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부차기에서 패하여 5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구단 내부 갈등으로 인하여 11월 경남 FC에서 물러났다.

2007년 12월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에 취임하여 팀의 2008년 삼성 하우젠 컵 준우승과 2009 시즌 6위로 챔피언십 진출 및 최종 4위를 이끌었으나 2010 시즌에는 10위에 그쳐 그 해 11월 5일 자진 사임하였다. 이후 고 이수철 감독의 후임으로 2011년 상주 상무의 감독직에 올라 1부 리그로 승격해서 1년만에 2부리그로 강등되기도 했으나 2013년 2부리그의 명칭 변경 후 2013년 K리그 챌린지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최초 K리그 챌린지 1위에 오르며 1년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승격하자마자 K리그 클래식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2014년 K리그 클래식 12위로 1년만에 재강등되는 등 강등의 아픔을 두번이나 겪었다. 하지만 강등되자마자 2013년과 마찬가지로 2015년 K리그 챌린지 1위를 거두며 재승격하였으며 2015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로 인해 상주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 창원시청 축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1년만에 현장으로 귀환하였고 프로팀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풍부한 박항서의 취임은 큰 기대를 모았다. 전반기만 해도 창원시청은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리그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를 충분히 노려볼만 했으며, 6월에 개최한 내셔널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후반기가 접어들수록 여름 이적시장에서 전력 보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며 순위가 급하락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 2017년 10월 11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겸임 감독으로 공식 취임하였다. 2018년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베트남 U-23 대표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파란을 일으켰고 비록 우즈베키스탄에게 지면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 대회를 통해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또한 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도 베트남을 56년만에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에 올려놓으며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그것도 모자라 2018년 AFF 스즈키컵에서도 베트남을 2008년 대회 이후 무려 10년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2018년을 최고의 한해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 베트남을 12년만에 아시안컵 8강으로 이끌었으며 2019년 킹스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끌어내면서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9년 11월 7일 3년 재계약을 맺으며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계속 이어갔고 다음날인 8일에는 아세안 축구 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감독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도 베트남에 1959년 대회 이후 60년만에 통산 2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경력 목록

 

클럽 경력

1981년 대한민국 제일은행

1981년 ~ 1983년 대한민국 육군 축구단(군 복무)

1984년 ~ 1988년 대한민국 FC 서울(前 럭키금성 황소)

 

지도자 경력

1989년 ~ 1996년 대한민국 LG 치타스 코치

1994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트레이너

1997년 ~ 2000년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00년 ~ 2002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수석 코치

2002년 대한민국 대한민국 수석 코치

2003년 ~ 2004년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코치

2005년 ~ 2007년 대한민국 경남 FC 감독

2008년 ~ 2010년 대한민국 전남 드래곤즈 감독

2012년 ~ 2015년 대한민국 상주 상무 감독

2017년 대한민국 창원시청 감독

2017년 ~ 베트남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수

 

클럽

대한민국 FC 서울 (前 럭키금성 황소)

K리그1

● 우승 (1): 1985● 준우승 (1): 1986● 4위 (1): 1988전국축구선수권대회

● 우승 (1): 1988

대한민국 대한민국 U-20

AFC U-20 축구 선수권 대회

● 우승 (1): 1978


코치

 

클럽

대한민국 FC 서울 (前 LG 치타스)

K리그1

● 우승 (1): 1990● 준우승 (2): 1989, 1993● 4위 (1): 1992리그컵

● 준우승 (2): 1992, 1994전국축구선수권대회

● 3위 (1): 1989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1

● 우승 (2): 1998, 1999리그컵

● 우승 (2): 1999아, 1999대● 3위 (1): 1997프슈퍼컵

● 우승 (2): 1999, 2000아시안 컵위너스컵

● 준우승 (1): 1998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K리그1

● 준우승 (1): 2004

대한민국 대한민국

FIFA 월드컵

● 4위 (1): 2002AFC 아시안컵

● 3위 (1): 2000CONCACAF 골드컵

● 4위 (1): 2002


감독

 

클럽

대한민국 전남 드래곤즈

K리그1

● 4위 (1): 2009FA컵

● 3위 (1): 2010리그컵

● 준우승 (1): 2008

대한민국 상주 상무 축구단

K리그2

● 우승 (2): 2013, 2015FA컵

● 3위 (1): 2014

대한민국 창원시청 축구단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 우승 (1): 2017

대한민국 대한민국 U-23

아시안 게임 축구

● 동메달 (1): 2002

베트남 베트남 U-23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 준우승 (1): 2018아시안 게임 축구

● 4위 (1): 2018동남아시아 경기대회

 

● 우승(1)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베트남

아세안 축구 선수권 대회

● 우승 (1): 2018킹스컵

● 준우승 (1): 2019

개인

1985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2013년 K리그2 감독상 수상

2018년 베트남 3급 노동훈장 수훈

 

기타

전력을 다하는 근성으로 인하여 '악바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6년 4월 문근영과 함께 KTF CF를 찍었다. 2007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전남 드래곤즈의 허정무 감독을 제치고 남부팀 감독부문 1위에 올랐다. 박항서 감독의 영어 인터뷰가 영국 BBC가 운영하는 러닝잉글리쉬닷컴의 스피킹 강좌에서 성공적인 영어 커뮤니케이션의 예로 쓰인 적이 있다. 또한 박항서 감독은 부인 최상아씨가 권사로 섬기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경기를 치르기 전 교회를 찾아가 통성으로 기도하기도 하고 베트남 선수들이 득점할 때마다 벤치에 앉아서 기도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8월 28일 자신의 조국인 대한민국과의 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전 경기를 앞두고 훈련하는 도중에 기도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베트남 축구를 이끄는 믿음의 감독'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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