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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타이슨프로필 마이크타이슨그는누구인가?

이름 마이클 제라드 타이슨 (Michael Gerard Tyson)

 

출생 1966년 6월 30일 미국 뉴욕 주 뉴욕시 브루클린 브라운스빌

 

국적 미국

 

신장 178cm 체중 109kg

 

복싱 전적 58전 50승 44KO 6패 2무효

 

체급 헤비급

 

별명 The Iron, The Baddest Man on the Planet, Kid Dynamite

1980~90년대 헤비급 복싱계 최고의 스타이다. 대중적인 인지도에서 만큼은 무하마드 알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복서로서는 최고의 인기와 유명세를 자랑한다. 말년에 몰락이 급격히 찾아오긴 했지만 쌓아온 경력과 실력도 그 인지도에 충분히 걸맞는 수준이라 할 만하다. 프로 데뷔 후 무려 37연승에 19연속 KO. 괜히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도핑을 한 점을 시인하고 자기관리에 실패하는 바람에 말년에는 선수로서나 사생활에서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등 복싱 전설로서의 대우만이 아니라 불명예스러운 평가도 받는 양면적인 복서이다.

 

출생과 성장

2살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강도짓을 일삼는 등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소년원에 수감되기도 했다. 형과 나이프로 찌르며 놀았다고 하니 정상인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더 화이팅에도 언급되는 비둘기 사건은 실화로, 10살일 때 도둑질한 돈 700달러로 새들을 사서 길렀는데 누군가가 그 중 한 마리를 훔쳐 목을 잘라놓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자 생에 최초로 싸움을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도둑놈 면상은 묵사발이 되었다고...

타이슨의 회고록이나 일대기를 다룬 뉴스 등을 봤을 때 어린 시절 소심한 아이였다고 한다. 타이슨 본인도 율리우스라 이름 붙인 애완용 비둘기가 동네 불량배에게 죽기 전까진 여자아이한테까지 맞고 다니던 소심한 아이였다고 회고한 바 있고, 본격적인 비행소년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은 10살의 나이로 브루클린의 흑인 갱단인 졸리스톰퍼에 가입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12살 때까지 체포된 횟수가 38번이었다고 한다

 

핵주먹 타이슨

소년원 복싱 트레이너 바비 스튜어트에 의해 명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와의 만남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복싱을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맷집, 트레이드 마크가 된 체중 이동을 통한 강렬한 초스피드 연타로 1985년 데뷔 이후 연전연승을 거듭, 결국 1986년 11월 26일 약관 20세의 나이로 트레버 버빅를 쓰러뜨리고 WB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덕분에 당시 국내에선 핵주먹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이 이후 무려 36번에 달하는 경기를 모두 이겼는데 19번 연속 KO승을 따낼 정도의 엄청난 괴물이었다. 첫 1패를 38번째 경기에서 당할 정도였으니 그 위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몰락

 

그러나 빠른 성공 만큼 몰락도 급히 닥쳐왔다. 트레버 버빅과의 타이틀 매치를 앞두고 양아버지이던 커스 다마토가 사망한다. 소년원에서 처음 만나 복싱을 가르치고 출소 후에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복싱 뿐 아니라 글과 예절 등을 가르치면서 타이슨을 머리 빈 복서가 아닌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려 했던 아버지 이상의 존재였다. 멘토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면 커스 다마토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었던 존재였다. 타이슨에게 있어서 커스 다마토는 단순히 트레이너나 멘토 정도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커스 다마토가 사망하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여 어리숙했던 그의 돈을 노리고 사기꾼들이 접근했다. 커스 다마토가 살아 있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당시 타이슨에게는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 주위에 아부꾼만 가득 차게 되자 타이슨은 점점 타락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생전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의 상처입은 자아를 파악하고 격려와 훈육을 통해 인격적인 성장 또한 이루어 준 데 반해, 커스 사후의 멘토나 프로모터들은 강력한 복서로 성장한 타이슨에게 "싸나이라면 생각이고 뭐고 꼴리는 대로 해라 너는 싸나이다" 같은 꼴마초 식의 조언이나 하고 있었다. 유년기의 상처가 깊었던 타이슨에게 이런 조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의 이미지도 나빠졌다. 대중의 이미지만 잃게 되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커스 다마토 사후26연승을 거둔다. 게다가 88년도 전반에 제이콥스가 죽고, 후반에는 제이콥스의 뒤를 이은 매니저와 세컨드 코치 루니와의 연속된 불화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못 하였고, 그 결과 타이슨은 점점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복싱 팬들은 커스 다마토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도 복싱의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며 아쉬워하고는 한다. 게다가 코치라고 들어온 사람은 아론 스노웰과 제이 브라이트였다.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WBC, WBA, IBF 헤비급 통합타이틀 전에서 당시 무명에 가까왔던 제임스 더글러스를 맞아 10회에 KO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패배로 그동안 37승 무패로 승승장구하던 타이슨의 경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권투 선수로서의 경력를 보나 인생 전체를 보나 이 경기를 기점으로 몰락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무하마드 알리와 레이 레너드 같은 전설들을 만든 전설적인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는 타이슨이 다마토 사후에 어깨 근육을 보면 연습량이 부족한 게 티가 난다고 언급했고, 크루저에서 헤비로 올라온 홀리필드가 타이슨을 이길 수 있단 말도 했었다.

 

감옥행

이 때쯤 발생한 미스 블랙 아메리카 참가자 Desiree Washington(데지레 워싱턴)을 호텔에서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서 유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3년만에 가석방되어 감옥에서 3년간 살기도 했다.

 

재판에서도 타이슨은 범행을 부정하였고, 타이슨의 변호사는 호텔에서 나와 병원으로 찾아간 피해자를 진단한 응급실 의사의 진단서와 범행시간 이후 피해자의 행동들을 지적하며, 주장의 부당성을 주장하였다. 성폭행 이후 타이슨은 방송이나 미디어 매체에 다시 출연해서 다른 일은 모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맞으나, 성폭행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형을 살고 나온 후 다시 재기에 나서서 1996년 9월 6일 WBA 챔피언 자리를 다시 되찾는다. 그러나 헤비급 강자 에반더 홀리필드에게 TKO로 패하며 타이틀을 내주고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된다

 

핵이빨

에반더 홀리필드와 리매치를 가지며 타이틀 탈환에 나서는데… 이 리매치에서 권투 역사에 길이 남을,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대형 사고를 일으키고 Bite Tyson 핵이빨이라는 굴욕스러운 별명과 더불어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몇 번을 복귀했으나 레녹스 루이스전, 윌리엄스전, 맥브라이드 전에서 패를 거듭, 마침내 2005년 6월 12일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TKO 패배를 당한 직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이 핵이빨 사건은 보통 타이슨의 아무런 이유가 없는 정신나간 돌발행동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홀리필드의 계속되는 고의적 헤드버팅이 발단이다. 물론, 치아로 물어뜯는게 잘했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홀리필드가 정말 더럽게 경기했다.잘 보면 헤드벗 말고도 로우 블로우에 은근슬쩍 니킥까지 시전한다. 게다가 심판도 수많은 헤드버팅을 무시하다가 막상 타이슨이 버팅을 하니까 바로 주의를 주는 등 편파판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은퇴 이후의 삶

성격 때문에 아내를 두들겨 패고 이혼당하면서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지급한다거나 그야말로 엄청나게 낭비하면서 결국 2003년 파산신고했다 복싱하면서 번 돈만 3억 달러, 즉 3000억원이 넘었다. 예금이 4억 달러였다고.. 타이틀 획득 후 16년 만에 파산인 셈이니 단순계산으로 1년에 200억씩 펑펑 쓴 셈. 현재는 이벤트에 얼굴 내비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중. 하지만 전처를 폭행한 점은 전혀 반성하지 않는데 '내 평생 최고의 펀치는 로빈(전 부인)에게 날린 바디 블로우'라고 하는 걸 보면 그 인생에 한 점 후회도 없는 듯하다

 

2000년대 후반 부터는 어찌어찌 개심했는지 말썽 안 피우고 사람답게 살면서 많은 팬들을 안도시키고 있다. 홀리필드와도 화해한 상태. 토크쇼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고, 홀리필드의 조미료 사업에 대해 서로 개드립을 날릴 정도로 친해졌다. "홀리필드가 만드는 조미료가 있다면 홀리필드 귀때기도 먹을 만했을 거다"라는 드립을 쳤고, 거기에 홀리필드가 먼저 "자기 귀때기 맛을 볼 테니 물어보라"고 개드립을 날렸다.

 

2010년 1월 12일(한국시각)일자 WWE RAW에 아들과 함께 특별 출연하였다.

외국의 동물 관련 프로에 출연해서 새 키우는 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사실 타이슨이 원래부터 새를 좋아했고 (위에서 기재되어 있듯 처음으로 대판 싸운 사고 자체가 키우던 비둘기를 누가 죽인 것부터 시작되는 점도 있었다) 복싱 안할 땐 늘 새 키우기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 경력이 워낙 길어서 이 분야에선 준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워낙 키우는 새가 많다 보니 소음 때문에 가끔 다른 주민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예상과는 달리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양해해달라고 통사정한다고 한다.

2012년 갑작스레 스파이크 리 감독과 뉴욕 브로드웨이와 라스 베가스에서 자기 자신을 주제로 한 원맨쇼를 진행했다. 공연 직전 그의 극장 앞에서 배트맨 상영관에서와 같이 총기난사를 하겠다는 글이 타이슨의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지만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2013년 토니상 오프닝에 타이슨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

 

현재는 쇼프로 단골 손님에 복싱 빅매치엔 빠지지 않고 관전하는 잘 나가는 셀러브리티다.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에 언변도 좋아서 여러모로 성공적인 방송 연예인의 삶을 살고 있다.

2015년부터 Hotboxin'이라는 개인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유튜브 구독자가 벌써 100만명을 넘어섰다.

 

2018년 캘리포니아 주가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하면서 대마초 농장에 투자했다.

 

홀리필드와 함께 풋락커 광고를 찍기도 했다. 잘려나간 귀를 돌려주며 화해를 신청하는 타이슨과 귀를 돌려받고 놀라는 홀리필드가 압권

2020년 5월 12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에 비디오를 올렸는데, 맹렬하게 복싱 트레이닝을 하고선 카메라를 쳐다보며 "I'm back."이라고 한다. 복싱에 다시 복귀를 준비하고 있음이 확실시되었고 자선경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경기는 전액 기부할 것이며 돈때문에 복귀하는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처음엔 에반더 홀리필드와 맞붙는듯 했으나 좀 더 거물급 선수라고 밝혔다. 대체 홀리필드보다 거물이면 누구인지 다들 궁금해하면서 별별 이름이 나왔는데, 현역 챔피언인 타이슨 퓨리까지도 언급되었다.

 

2020년 5월 23일 열린 AEW의 더블 오어 나씽에 출연해 새로 공개된 AEW TNT 챔피언십 초대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코디에게 벨트를 수여하는 것으로 출연했다. 이후 다이너마이트에도 출연해 크리스 제리코와 2010년 이후 다시금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이슨 15년만에 복귀

마침내 자선경기 상대가 결정됐다. 상대는 타이슨과 비슷한 나이인 로이 존스 주니어로 결정됐다.

 

타이슨은 29일(한국시각) 오전 11시 미국 로스엔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로이 존스 주니어와 자선 복싱 경기를 치른다.

타이슨은 경기에 앞서 치른 계체에서 220.4파운드(99.9kg)를, 로이 존스 주니어는 210파운드(95.3kg)를 기록했다.


타이슨은 지난 1986년 만 20살의 나이로 당시 챔피언인 트레버 버빅을 2라운드 KO로 제압하고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시 그의 체중은 221파운드 약 100.2kg로 이번 복귀전을 앞두고 45kg 가량 감량에 성공했다.

마이크 타이슨은 현역 시절 기록한 50승 가운데 44경기에서 KO승을 따냈다. 2005년 케빈 맥브라이드와 대결 이후 15년 만에 링 위에 오른다.


타이슨에 맞서는 로이 존스 주니어는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은메달리스트이자 미들급, 슈퍼미들급, 라이트헤비급, 헤비급 등 4체급을 제패한 전설적인 복서다.

한편 캘리포니아주 체육위원회는 두 노장 파이터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경기 중 어느 선수라도 피가 흐르거나 KO로 갈 조짐이 보이면 즉각 경기를 중단시키겠다는 것.

타이슨은 계체 뒤 기자회견에서 "나는 조심해서 경기하는 법을 모른다"며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고 싶지는 않고, 체육위원회를 화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엄포를 놨다.

두 선수의 경기는 2분 8라운드로 치러진다. 헤드기어를 착용하지 않는 대신 12온스 글러브 끼고 맞붙는다. 경기는 부심 없이 주심만 있다. 승패는 가리지 않지만, 세계복싱평의회(WBC)는 전직 복서 3명으로 비공식 채점단을 꾸려 승자에게 명예 벨트를 수여할 예정이다

 

복싱 스타일

최대의 복싱 시장인 미국에서도 타이슨의 평가에 대해 마찬가지이지만, 신체 능력과 기량만큼은 확실히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약물 중독과 수감으로 몰락하기 전까진 무적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상당히 많다. 헤비급의 체중에 라이트급의 스피드, 폭발적인 펀치력, 유연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체중이동은 어떤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하늘이 내려준 천부적인 재능의 영역이다. 여기에 경기력을 받쳐주는 스타성과 미국 팬들의 지지를 받는 헤비급 복서라는 상품성 면에서도 타이슨 이후 수십년간 이에 근접한 복서가 플로이드 메이웨더 정도이다. 결론적으로 역대 최강의 복서를 꼽을 때, 타이슨의 경력 전체가 언급되지는 않지만 타이슨의 전성기는 반드시 언급된다.

 

복싱 역사상 강력한 챔피언은 여럿 있지만 그처럼 센세이셔널한 인물은 없어, 아직도 호사가들이 최강 논쟁을 벌일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타이슨의 강점은 양훅의 파괴력은 물론 전무후무한 수준의 빠른 전진스텝 그리고 정말 뛰어난 헤드슬립과 위빙, 페인팅, 풋웍 등 헤비급 언더사이즈 스워머라는 전형으로 놓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인파이팅에 있다. 인파이터라면 당연히 맷집에 뛰어나겠거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위압감 이전에 거의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하는 선수였다.

마이크 타이슨은 작은 신장을 빼면 헤비급 답지 않게 원투 펀치나 연타력이 구사력이 경량급 엘리트복서보다도 더욱 부드러웠다. 공격일변도도 아니며 방어와 회피에도 신경을 쓰고 신체능력에 의존하는 헤비급 복서들과 달리 영리하고도 맞지 않는 지능적인 복싱을 구사했으며 이미 15살에 커스 다마토가 "기술적으로는 가르칠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재능이 엄청났다. 타이슨은 일반적인 헤비급 선수들과는 플레이 방식이 전혀 달랐는데, 110kg에 가까운 육중한 체중에도 불구하고 기계체조 선수처럼 유연한 몸과 빠른 스피드를 필두로 주먹을 피하는 모습은 마치 가벼운 라이트급 선수를 연상케한다. 허리와 등근육을 사용해 상체 전체를 좌우로 움직이며 뛰어난 동체시력으로 상대방의 잽을 모두 피해내는 슈퍼플레이는 전성기 그의 주특기였다. 당장 맨 위 움짤을 보면, 자기보다 큰 상대의 펀치를 바닥에 기는 수준의 낮은 위빙으로 절묘하게 피한다. 정타가 안들어가니 그걸 무리해서 따라가려는 상대는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지치고 방어가 허술해지는 틈을 노린 카운터를 맞고 쓰러지는 것이다.

그를 상대한 대부분의 장신 헤비급 복서들은 당연히 타이슨보다 리치가 길다 보니 잽으로 찔러넣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느긋하게 아웃복싱하려 했지만 타이슨은 종전의 스워머 인파이터와는 달리 멈춰서 잽을 보거나 막지 않고 경지에 오른 헤드슬립으로 그냥 잽을 흘려버린 뒤 들이대면서 원투를 치는 선수였기에 헤비급의 평범한 빅맨 아웃복서들은 타이슨의 무시무시한 스피드를 가진 러시에 어어 하다가 후드려맞고 추풍낙엽처럼 완파당했다. 이러한 장점은 WBC 챔피언이었던 트레버 버빅과의 시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빅맨들이 즐비한 헤비급에서 타이슨처럼 엄청나게 빠른 공격 스피드를 가진 경우는 정말 드물다. 다른 헤비급 복서보다 같은 시간에 한두 스텝은 더 밟을 정도니 미들급에서도 나오지 않는 공격 스피드를 가진 것으로, 천부적 재능의 영역이다. 거기다 작은 키에 비해 힘이 좋고 작은 덕에 펀치를 항상 올려치는 궤도였기 때문에 막아도 가드가 들리고 맞으면 턱이 들렸다. vs 토니 터커 경기를 보면 터커와 타이슨이 잽싸움을 벌이는데, 타이슨의 잽이 터커에게 먼저 닿는다 타이슨의 리치와 터커의 리치는 26cm가 차이난다. 그 정도로 독보적이고 당시 헤비급의 트렌드에 강렬한 한방을 먹인 복서였다.

 

WWE(월드 레슬링 엔터테인먼트)에서의 활동​

마이크 타이슨은 1998년 WWF (WWE의 전신)에서 인터뷰가 있는데, 스티브 오스틴과 마찰이 생겨 대립이 일어났다. 그 당시에는 숀 마이클스 편을 들었지만 레슬매니아XIV에서 숀을 배신하고 스티브 오스틴의 편을 들었다. 최근에 WWE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출연 작품​

킥복서 더 레전드 - 브릭스 역

엽문3: 최후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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