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관프로필
이름 송대관 宋大琯 | Song Daekwan
출생 1946년 6월 2일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태성리
사망 2025년 2월 7일 (향년 78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여산 송씨
신체 165cm, 67kg, B형
학력
태인초등학교 (졸업)
전주서중학교 (졸업)
전주영생고등학교[6] (졸업 / 8회)
가족
조부 송영근
배우자 이정심(1953년생)
자녀 장남 송진형, 차남 송진석
종교 개신교(예장합동)
데뷔 1967년 노래 〈인정많은 아저씨〉
학력
1959년 정읍태인국민학교 졸업
1962년 전주서중학교 졸업
1965년 전주영생고등학교 졸업
경력 2009년~2010년 한국방송예술진흥원 트롯학부 전임교수
송대관(宋大寬, 1946년 6월 2일~2025년 2월 7일)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46년 6월 2일 전라북도 정주 어정 전라도 갑송 무단읍 정주지구 갑송(現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며 독립운동을 도와 일제의 보안법 위반으로 갖은 고초를 겪은 송영근이며, 1942년에 사망하였다. 아버지도 한국 전쟁 때 실종되어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송대관은 실종된 아버지의 시신을 아직까지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1965년에 전주영생고를 졸업한 송대관은 서울로 상경하여 오아시스 레코드의 사장인 손진석을 만나 그의 일을 도우면서 가수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고, 1967년에 정통 트로트 《인정많은 아저씨》(초원 작사/ 김성유 작곡)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하였다. 송대관이 데뷔하던 당시에는 남진과 나훈아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무명으로 전락하였다. 1971년 부르스 느낌이 나는 《세월이 약이겠지요》(송대관 작사/ 신대성 작곡)를 발표하였는데 이 곡이 인지도를 얻으며 방송 출연량이 증가하였다. 그러다가 1975년에 《해뜰날》(송대관 작사/ 신대성 작곡)이 크게 히트하면서 본격적으로 송대관이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이 곡은 반복적이며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가 돋보이며 당시 남진, 나훈아, 하춘화 등 대세 가수들을 제치며 인기몰이를 하고 1976년 방송국 가요대상 3개를 수상하고 동시에 가수왕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해뜰날》의 대히트로 일약 스타가 되었던 송대관은 이 때부터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며 가수 활동에 전념하였고, 1976년 영화에도 출연하여 스크린에도 데뷔하였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송대관은 결국 198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송대관은 약 10년 간 미국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혼자랍니다》(신대성 작사/ 신대성 작곡)를 부르며 인지도를 얻다가 1989년 《정 때문에》(장경수 작사/ 정주희 작곡)를 발표하고 나서 20만장의 레코드판매량을 기록하고 라디오 차트 분야에서 3개월간 1위를 하며 다시금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 곡 제목처럼 실제로 차표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차표 한장》(조동산 작사/ 원희명 작곡), 《인생은 생방송》(김동찬 작사/ 박현진 작곡), 《고향이 남쪽이랬지》(조동산 작사/ 조동산 작곡) 등 수많은 곡을 히트시켰다.
송대관은 1980년대 후반부터 트로트를 부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 역할의 중심이 되었던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 중에 같이 이민 생활을 했던 태진아와는 개인적으로 각별한 사이로 지내며 그와 함께 명콤비로 불리며 매년 《송대관 & 태진아 라이벌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2002년 58세에 아내 이정심이 작사한 《유행가》(이정심 작사/ 최정환 작곡)를 발표하였는데 이 곡은 2000년대 초반에 가장 크게 히트한 송대관의 노래로 화려한 의상, 엇박자 댄스를 선보여 젊은 층들이 즐겨 부른 트로트로 자리매김하였고 이후 《사랑해서 미안해》, 《내 녀자》, 《오래오래》를 부르며 활동해왔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태진아와 함께 《명인제약 이가탄》의 전속모델로 활약하였다. 2008년에는 김양을 스카우트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선정하여 후배 양성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하였고 그 해엔 남진의 뒤를 이어 제 2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송대관은 가수 외에도 배우로도 활동하여 2009년 KBS 드라마 《공주가 돌아왔다》,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이라는 두 편의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연기 실력을 뽐냈다. 또한 2009년 10월 31일에는 정읍시 출신의 국민가수이자 정읍시 홍보 대사이기도 한 송대관의 명성을 통해 정읍시와 내장산을 전국에 알리고 가요제의 명품화를 통해 정읍시의 이미지 향상을 꾀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정읍 송대관 가요제》가 처음 개최되어 차세대 트로트 유망주의 등용문이 되기도 하였다.
2015년 8월 13일에 부동산 투자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으며, 이후 며칠 뒤에 무죄로 풀려났고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의미로 노래 "딱 좋아"를 발표하였다.
주요 노래로는 "해 뜰 날", "차표 한 장", "분위기 좋고", "딱 좋아" 등이 있다.
사망
2025년 2월 7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지병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고인은 며칠 전 통증을 호소, 급히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뒤 입원 치료를 받아왔지만 이날 오전 끝내 숨을 거뒀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전국노래자랑 2025년 1월 19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편이 살아생전 마지막 방송 출연이 되었으며, 2025년 3월 2일에 방송 예정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편에도 초대가수로 참석한 회차는 그의 영원한 마지막 방송 출연이 되었다.
2024년 12월 2일 출연한 가요무대가 마지막 방송 출연으로 기록되었으며, 원래 다음 주인 2월 중순에 출연하기로 돼 있었는데, 며칠 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연을 미뤄야겠다고 전화한 뒤 사망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안일권은 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안일권은 송대관과 함께 찍힌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통해 그는 과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송대관의 성대모사를 했던 추억을 회고, 고인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이루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어릴 적부터 항상 인자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셨던 큰아버지 송대관 선생님, 너무나 갑작스럽게 저희 곁을 떠나셔서 허망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적었다.
이루는 고인과 절친한 사이였던 아버지를 언급하며 “너무 큰 충격에 식사도 못 하시고 슬픔 속에서 바쁘게 이곳저곳 전화하시는 모습을 보니 인생의 친구, 형제를 잃으신 아버지의 모습도 너무 안쓰럽다”고 했다.
그는 “두 분이 함께 무대 위에서 노래하시는 모습을 꼭 다시 보고 싶었다”며 “큰아빠, 그곳에서는 영원히 평안하시길 기도드린다. 큰아버지로 섬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2025년 2월 7일 양지은은 SNS에 송대관의 사진과 함께 “언제나 따뜻하고 다정하게 후배들을 대해주셨던 송대관 선배님. 그곳에서 평안하실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밝혔다.
송대관의 비보에 후배 가수 현숙은 송대관 오빠는 항상 따뜻한 분이다. 만나면 그렇게 등을 두들겨 주시면서 '열심히 하자'고 해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힘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런 분이 이렇게 갑자기 가셨다고 하니 소식을 듣고 너무 황망해서 눈물을 한참 쏟았다"며 입을 열었다.
현숙은 고인에 대해 "오빠는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 자존심으로 우리 가수들 자존심을 지켜줄 줄 알는 분이었다. 가요계에 큰 버팀목 같은 분이고 소나무 같은 사람이었다"며 "특히 경조사를 그렇게 잘 챙기셨다. 행사가 전국 각지에 있다 보니 빈소에 제 때 찾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어느 곳에도 송대관 오빠는 직접 와서 인사를 해주셨다. 지난해 현철 오빠 가셨을 때도 빈소를 지키셨던 분이지 않나. 좋은 일도, 슬픈 일도. 꽃만 보내는 일 없이 무조건 얼굴을 비추고 인사해주고 오는 사람들과 인사하셨던 분이데 그런 분이 가셨다고 하니 많이 울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현숙은 "그만큼 최선을 다해서 사신 분이셨다. 가요계 자존심도 지키고 바른 말 잘하시고. 항상 후배들, 동생들 보면 등이며 어깨를 두들겨 주시는데 어느날부터 오빠 어깨가 축 쳐지고 조금 야위어가는 얼굴이 보였다.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 행사가 많을 때는 부모, 형제보다 자주 봤다. 독일도 브라질 공연도 함께 갔는데.."라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태진아 오빠와 콤비로 큰 사랑 받으시지 않았나. 두 분이 함께 있어야 빛나는 부분도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 그렇게 어느 때고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빛나게 해주셨던 분이다. 지금은 빈소가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오늘이고 내일이고 가서 마지막을 배웅하고 싶다"며 울컥한 목소리를 드러냈다.
후배 배일호도 터져나오는 슬픔을 누른 채 고인을 애도했다. 송대관 씨 소식을 접하고 너무 허무하고 황당하다. 워낙 가깝게 지내던 분이고, 직계 후배로서 늘 감사하고 고마운 선배다. 이렇게 황망하게 가신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 그렇다"며 "그 분이 살아오시면서 곁에서 지켜보면 늘 바쁘시기만 했지 본인이 행복한 시간을 많이 못 봐 안쓰럽다"며 "아침께 소식을 듣고 오후가 다 되도록 밥도 안 넘어가더라"며 비통함을 내비쳤다.
최근에 전화를 드렸는데 한 번 안 받으신 적이 있다. 설연휴에 인사 드리려고 연락을 드렸는데 전화가 연결이 안 됐다. 그 때는 바쁘신 일이 있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중에라도 꼭 연락을 주셨던 분인데 전화가 돌아온 기억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가시게 돼서 너무 황망하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며 크게 슬퍼했다.
배일호는 "부디 좋은 곳에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 졸이며 살아온 세월도 있으신데 그저 다 잊고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겠다. 가시면 고 현철 선배도 계시고 송해 선생님도 계시니까 좋은 분들 만나면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나태주는 7일 "선배님,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그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애도의 글을 남겼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본인 페이스북에 "대관아! 어떻게 이렇게 황망하게 가느냐"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박지원 의원은 "'쨍하고 해뜰 날'이 너였건만, 너도 기어이 가는구나"라며 안타까워했다. "독립지사 후손으로 홀 어머님께 그렇게 효도하고, (내가) 문화부 장관 때 어머님이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니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형님 감사하다'고 했다"며 고인과의 일화도 밝혔다.
박지원 의원은 "MBC 가수왕에 선정됐을 때 기뻐하던 너, 선거 때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내 유세를 도와주던 너, 네 노래 가사를 인용해 글을 쓰기도 했는데 이렇게 떠나다니···"라며 황망한 심정을 내비쳤다. 박 의원은 "이제 편히 가서 쉬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본인 페이스북에 "국민 가수 송대관"이라고 적었다.
"내가 미국에 연수하러 갔던 80년대, 20대 때 워싱턴 DC에서 만났던 '해뜰날'의 송대관. 그는 정이 참 많았다"며 고인과의 일화를 공개했다.
박영선 전 장관은 "나에게 '공부하기 힘들텐데 맛난 것 사먹으라'며 용돈을 건네주던 생글 미소의 그를 감사한 마음으로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그도 미국에서 사업하며 여유가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던 듯 한데···"라고 떠올렸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흐른 뒤 여의도 어느 행사장에선가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했더니 '오메! 엄청 출세해 버렸네'하면서 반기던 국민가수 송대관. 그가 황망하게 떠났다. 마음 깊이 추모한다"고 덧붙였다.
설운도는 "현철 선배님을 떠나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이런 비보를 듣게 돼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송대관 선배님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평소 지병도 있었다. 한창 활동할 나이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가셨다"고 말했다. 설운도는 "송대관 선배님은 트로트가 국민에게 사랑 받는 계기를 만든 분"이라며 "선배님은 가셨어도 남긴 음악은 영원히 모두의 가슴 속에서 살아 숨쉴 것"이라고 했다.
태진아는 "한 달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라며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얘기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를 보살피다가 소식을 들었다. 얼른 빈소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가수 김수찬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곳에선 웃는 일만 가득하길. 선생님. 정말 슬픔을 감출 길이 없다"고 밝혔다. 트로트 가수 양지은은 본인 인스타그램에 "언제나 따뜻하고 다정하게 후배들을 대해주셨던 송대관 선배님"이라고 추억했다.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애도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11시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논란
표절
1975년에 발표한 곡인《해뜰날》을 1981년에 제이 가일즈 밴드가《Centerfold》라는 곡으로 표절하였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에 저작권 관련 조약이 전혀 없고 대한민국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전무한 상황이라서 송대관은 웃고 넘겼다고 회고하였다. 《Centerfold》는 당시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6주 동안 1위를 했다. 이후 27년이 지난 1998년에 발표한《네 박자》를 같은 해 미국의 가수 엥쥬가《Sorry, sorry, I am sorry》라는 곡으로 표절했다. 이 무렵은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의 저작권 관련 조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어 송대관은 이의를 제기하여 이 곡에 대하여 표절을 판명받았다.
부동산 투자 사기 혐의
2013년 10월에 송대관 부부는 캐나다 교포 A씨가 소유하고 있는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일대 토지를 개발해 분양한다며 투자금 명목으로 A씨에게 4억 1400만원을 받고 나서 개발도 하지 않고 투자금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피소되었다. 또한 송대관은 음반 홍보 자금을 빌미로 A씨에게 1억 원을 빌린 후 갚지 않았다는 혐의도 받았다.
2014년 9월 3일에 검찰은 송대관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아내 이정심에게는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하였다. 그해 10월 14일에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송대관에게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고, 아내 이정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였다. 이정심은 선고 직후 법정구속되었다. 송대관은 재판부의 판결은 존중하나 억울한 면이 있다며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10월 17일에 항소장을 제출하였다.
2014년 12월 23일에 KBS와 MBC는 송대관에 대해 출연정지 처분을 내렸다. 아내 이정심은 2015년 1월 2일에 보석으로 80일만에 석방되었다.
2015년 8월 13일에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송대관에게 무죄를, 아내 이정심에게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송대관이 이 사건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증거가 희박하다며 무죄를 선고하였다고 밝혔다. 아내 이정심은 피해액 상당량을 변제한 사실이 감형의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송대관은 선고 직후 기자들에게 "이번 무죄 판결은 사필귀정이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무죄를 선고 받아서 매우 행복하다."는 심경을 전했다. 또한 송대관은 "팬분들께는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고, 앞으로는 열심히 봉사를 하면서 살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2015년 11월 12일에 열린 상고심 재판에서 대법원이 송대관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송대관은 사기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그해 11월 18일에 KBS는 송대관에 대한 출연정지 처분을 해제하였고,MBC는 11월 24일에 송대관에 대한 출연정지 처분을 해제하였다.
김호중 보니 내 생각이나
송대관이 음주운전 뺑소니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호중을 언급하며 "투자 실패로 월셋집 이사 김호중 보니 내 생각 나" 등의 말을 해서 논란이 되었다.
앨범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
1968년 《푸르던목장》
1968년 《비를 안은 여인》
1968년 《석양에타는놀》
1968년 《사랑한다고》
1970년 《혼자랍니다》
1970년 《사랑이란슬프다고》
1970년 《세월이약이겠지요》
1971년 《협박장》
1971년 《가슴아픈두사람》
1971년 《사랑은슬픈이야기》
1972년 《당신은떠났어도》
1975년 《해변의여인》
1975년 《가지마오》
1975년 《남자가애태울 때》
1975년 《난바보》
1975년 《고향의별》
1975년 《기적소리만》
1975년 《눈물이보일까봐》
1975년 《미워도다시한번》
1975년 《마음은서러워도》
1975년 《비를안은여인》
1975년 《사랑이란슬프다고》
1975년 《누가좋아하나요》
1975년 《거리》
1975년 《부탁》
1975년 《석양에타는노을》
1975년 《동심일뿐이야》
1975년 《해뜰날》
1976년 《모습이/그렇게 사랑했는데》
1976년 《부탁/누가 좋아하나요》
1976년 《타향살이》
1976년 《비에젖은비둘기》
1976년 《내스스로》
1976년 《그렇게사랑했는데》
1976년 《왜말못해》
1977년 《나/모습이》
1977년 《효심/너뿐이야》
1978년 《당신이 가신다면》
1978년 《명동 나그네》
1978년 《그날을위해》
1978년 《정》
1978년 《사랑하니까》
1978년 《효심》
1979년 《아내와 같이》
1979년 《미야! 너는 어디에》
1989년 《그건얘기가돼》
1989년 《정 때문에》
1990년 《아내의생일》
1990년 《인생살이》
1990년 《시들지않는추억》
1990년 《왜못잊어》
1990년 《큰소리뻥뻥》
1990년 《사랑사랑》
1990년 《후회》
1990년 《당신은비운자리》
1990년 《마침표없는사랑》
1990년 《이별의고속도로》
1990년 《빈마음》
1991년 《네가 뭔데》
1992년 《차표 한 장》
1994년 《아내의 생일》
1998년 《네박자》
2000년 《최고가수상 수상기념 앨범》
2001년 《조동산 작품집》
2003년 《송대관 골든앨범》
2003년 《유행가》
2005년 《Hightlight Album》
2006년 《새출발》
2008년 《오래오래》
2009년 《분위기 좋고》
2013년 《골든베스트》
2013년 《주님과의 약속》
2015년 《딱좋아》
2018년 《한번 더》
2020년 《송대관 베스트 (어이! 세월아)》
2021년 《덕분에》
2024년 《지갑이 형님》
출연작
뉴스
2011년 YTN 뉴스N이슈 : 이슈&피플 출연 (With. 태진아)
영화
1976년 《해뜰날》 - 송대관 역
드라마
1998년 SBS 일일시트콤 《순풍산부인과》 - 안경점 주인 역 (1998년 4월 30일 방송분 – 44회)
2009년 KBS 2TV 월화드라마 《공주가 돌아왔다》 - 용선생 역
2011년 SBS 주말 특별기획드라마 《신기생뎐》 - 서생강 역
2013년 TV조선 일일시트콤 《웰컴 투 힐링타운》 - 송대광 역
광고
2000년 《롯데 닷컴》(With. 태진아)
2004년 《명인제약 이가탄》(With. 태진아)
2005년 《명인제약 이가탄》(With. 태진아, 김자옥)
2006년 《명인제약 이가탄》(With. 태진아)
2007년 《명인제약 이가탄》(With. 태진아, 안문숙)
2008년 《명인제약 이가탄》(With. 태진아)
2009년 《명인제약 이가탄》(With. 태진아, 정선경)
2011년 《황토코리아 돌침대》
2012년 《가평잣막걸리》(With. 태진아)
시사,교양,예능프로그램
KBS 예능프로그램《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초대가수 다수 출연이 외에도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
1997년 KBS 예능프로그램 《코미디 세상만사》 - 이밤의 끝을 잡고 태진아, 김미화와 함께 출연.
1990~2005년, 2008년, 2009년 KBS 예능프로그램《가족오락관》 게스트로 1년에 1~2회씩 출연.
2000년 KBS 교양프로그램《TV는 사랑을 싣고》
2003년 MBC 예능프로그램《전파견문록》
2006년 KBS 예능프로그램《상상플러스》 세대공감 올드&뉴
2007년, 2008년 SBS 예능프로그램《퀴즈 육감대결》
2010년, 2011년 MBC 예능프로그램《세바퀴》
2010년 MBC 예능프로그램《놀러와》
2010년, 2012년 KBS 예능프로그램《해피투게더》
2011년 SBS 예능프로그램《강심장》
2012년 SBS 교양프로그램《생방송 브라보 나눔로또》 508회
2012년 KBS 교양프로그램《스타 인생극장》
2012년 KBS 예능프로그램《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2012년 SBS 예능프로그램《GoShow》
2012년 채널A 예능프로그램《쇼킹》
2012년 MBC 예능프로그램《주병진 토크 콘서트》
2012년 MBN 예능프로그램《트로트가 간다》
2012년 JTBC 예능프로그램《퀴즈쇼 아이돌 시사회》
2013년 KBS 교양프로그램《퀴즈 대한민국》
2015년 MBN 예능프로그램《속풀이쇼 동치미》
2018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2020년 KBS 교양프로그램《6시 내고향》특별출연.
2020년 SBS Plus 예능프로그램 《밥은 먹고 다니냐?》
2020년 NQQ(현 ENA PLAY) 예능프로그램 《위플레이 2》
가족오락관 출연
1993년 10월 1일
1993년 12월 24일
1994년 12월 16일
1996년 9월 25일
1998년 4월 15일
1999년 11월 17일
2000년 11월 4일
2001년 12월 8일
2002년 8월 3일
2003년 6월 21일
2004년 3월 27일
2005년 3월 5일
2005년 7월 16일
2008년 5월 10일
2009년 3월 21일
홍보대사
2003년 이산가족 홍보대사
2006년 제 3회 대한민국 지역혁신박람회 홍보대사
2006년 인천국제공항 출입국 홍보대사
2007년 국가보훈처 나라사랑 홍보대사
2008년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 범죄피해자지원센터 홍보대사
2009년 강남구 홍보대사
2009년 전라북도 교육청 홍보대사
2009년 정읍시 관광홍보대사
2010년 고양시 명예홍보대사
2010년 문화체육인 환경지킴이단 홍보대사
2012년 용산구 홍보대사
2016년 경기도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 활성화 홍보대사
수상
1976년 제11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76년 제11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인기가요상
1976년 제11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가수상
1977년 제12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78년 제13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88년 제8회 KBS 가요대상 최고가수상
1991년 제4회 고복수 가요제 최우수 남자 가수상
1991년 제11회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1998년 제18회 KBS 가요대상 본상
1999년 제14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디스크 본상
1999년 제10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1999년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 가수상
1999년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 10대 가수상
1999년 제26회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1999년 제13회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2000년 제20회 KBS 가요대상 본상
2000년 제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전통가요 가수상
2001년 제16회 골든디스크상 공로상
2002년 제6회 SBS 가요대전 트로트부문상
2003년 제7회 SBS 가요대전 트로트부문상
2003년 제23회 KBS 가요대상 최고가수상
2003년 제7회 SBS 가요대전 트로트부문상
2004년 제31회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2005년 제9회 SBS 가요대전 트로트부문상
2006년 제16회 서울가요대상 성인가요부문 본상
2011년 트로트 대축제 우수 커플상
2011년 제19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가요부문 가요대상
2012년 제12회 대한민국 전통가요대상 남자 7대 가수상
2016년 제1회 한국방송 가수대상 최고인기 가수상
2016년 제5회 대평가요대상 대상
2020년 제1회 트롯어워즈 트롯 100년 가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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