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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이상용 프로필
이름 이상용 李相瀧 | Lee Sang Ryong
출생 1944년 4월 2일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사망 2025년 5월 9일 (향년 81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본관 경주 이씨
가족
배우자 윤혜영(1943년생)
자녀 2남 1녀
며느리 박지영
손자 이노엘(2011년생)
학력
서면국민학교 (전학)
대전삼성국민학교 (졸업)
한밭중학교 (졸업)
대전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농과대학 (임학 / 학사)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 / 석사)
신체 160cm
병역 대한민국 육군 중위 전역 (학군사관 5기)
종교 개신교 (예장고신)
데뷔 1971년 CBS 기독교방송 MC
최종 당적 국가혁명당
소속사 이메이드
수상
국민훈장 동백장
체육훈장 기린장
대한민국 5.5문화상
문화관광부장관표창 '선행연예인'
제5회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 MC상
제8회 케이블TV 방송대상 스타상
도산아카데미 도산봉사상
방송
제2회 전국119마라톤
아름다운 인생
열전! 가수왕
굿모닝 실버
우정의 무대
가족오락관
모이자 노래하자
늘 푸른 인생
가자! 시장속으로
일요일이 좋다 - 패밀리가 떴다 2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전국노래자랑
열창! 가요 한마당
와글와글 시장가요제
TV는 사랑을 싣고
아침마당
6시 내고향
광고
삼양식품 삼양라면
삼양식품 삼양 레토르트 시리즈
성봉실업 이온큐
농심 알통콘
해태제과 허쉬 초콜렛 "브라운 카우 초코시럽"
동국제약 인사돌
현대자동차 뉴 포터
농심 짜파게티
TTS수능교육
보람재향상조 재향군인회 상조회
TV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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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가톨릭출판사의 ‘고통과 아픔을 기도로 극복한 문화 예술인의 이야기’ 《슈퍼스타》 공저
홍보대사
치매극복의 날 치매 홍보대사
청양군 홍보대사
천연기념물 경주개 동경이 홍보대사
사망
2025년 5월 9일 12시 45분 서초구 자택 인근 병원을 다녀오던 중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인해 쓰러져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2025년 5월9일 항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메이드는 "전날 기침 등 감기 기운이 심했고, 오늘 병원에 다녀오다가 호흡 곤란이 왔다. 평소 지병은 없었고 사인은 심정지"라며 "아드님이 홍콩에서 살고 있다. 오늘 입국하면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릴 예정"이라고 했다.
고인은 충남 서천 출신으로 대전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농대 임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MBC '유쾌한 청백전'으로 방송가에 데뷔했다.
이듬해 KBS 어린이 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독특하다. 서울 여의도광장에 모여있던 어린이들과 어울려 놀다가 그야말로 '길거리 캐스팅'이 돼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고인은 160㎝의 작은 키에도 다부진 체격이었고, 방송에서 알통을 자랑하고 벽돌을 깨는 모습을 보여주며 '뽀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KBS 라디오 '위문열차', MBC '우정의 무대' 등 국군 장병 위문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고인이 1989년부터 1996년까지 8년간 진행한 '우정의 무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요일마다 군 장병들이 무대에 올라 "제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고 외치는 장면, 모자가 눈물의 상봉을 한 뒤에 고인이 "고향 앞으로 출발"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상용은 과거 인터뷰에서 "1996년 11월 3일 강원도 화천에 있는 모 사단에서 녹화하던 중 라이트를 껐던 게 가장 아쉽다"며 "꼭 다시 한번 '우정의 무대'를 진행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9년에는 고인과 원로 가수, 코미디언 등 25명이 모인 '뽀빠이 유랑극단'을 구성해 전국 무료 순회공연을 했다.
그의 별세 소식은 긴 여운과 함께, 그가 겪어야 했던 굴곡진 인생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고인은 심장병 환아를 오랜 기간 지원해왔다.
1980년대 '모이자 노래하자'를 진행하던 당시 한 심장병을 앓던 아이가 촬영장으로 찾아왔고, 이 아이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뛴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고인은 보증금 6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면서도, 수술비 1천800만원을 구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비롯해 대한민국 5.5 문화상,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고인은 생전 수많은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과 군 장병들을 위한 위문 공연 등 ‘선행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실제로 그는 600명 가까운 심장병 어린이의 수술을 도우며 생명을 살려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평생을 봉사와 나눔에 바쳤던 그에게도 가혹한 시련이 닥쳤다.
절친 김홍신 작가에 따르면, 이상용은 한때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세간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김 작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사연이었다. 그 전까지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상하게 휘말린 건, 명백한 모함이었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상용 역시 그 시절을 담담히 회고했다. “평생을 다 바쳐서 600명 수술해줘서 다 잘 살아 있는데, 하나도 수술 안 했다고 하니까... 전 국민이 나쁜 놈이라고 했다. 저는 가만히 있었다. 하늘은 안다고 믿었다"며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었기에 버텼다"고 회상했다.
그는 억울함을 피해 한동안 미국으로 건너가 관광버스 가이드로 일하며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LA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관광객을 태우고 묵묵히 견뎠다. 결국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 순간마저도 언론은 외면했다. “무죄 판결이 났는데도 신문에는 안 나더라. 그게 더 서글펐다”고 그는 말한 바 있다.
김홍신 작가는 “그 순간을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를 더 좋아하게 됐다”며 “속에 있는 아픔, 개인적인 얘기를 나에게 털어놨던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진실을 알고 있다. 다 그렇게 지나간 거다”고 회상했다.
억울한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묵묵히 제 길을 걸었던 이상용. “힘내라! 할 수 있다!”고 외치던 그의 목소리는, 알고 보면 그 자신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선한 영향력으로 한 시대를 살아낸 뽀빠이 이상용.그는, 세상이 잠시 몰라줘도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낸 진짜 어른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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