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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프로필

이지아 프로필 이지아 조부 김순흥 프로필 친일파 후손으로 사죄 조부 재산 국가에 환수돼야

by boy906 20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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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프로필


이름 이지아 李智雅|Lee Jiah

본명 김지아 (金智雅, Kim Jiah)

출생 1978년 8월 6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송파동

본관 광산 김씨 (光山 金氏)

신체 168cm|48kg|A형|245mm

가족


친할아버지 김순흥
아버지 김사영, 어머니
언니 2명, 남동생

학력


서울중대국민학교 (졸업)
가원중학교 (중퇴)
Diamond Bar High School (졸업)
아트 센터 디자인 대학교 그래픽디자인 (중퇴)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

데뷔 2004년 CF 《LG 텔레콤》

별명 짱지아, 쟈, 퀸수련, 이쟈, 이장님

MBTI INTP


대한민국의 배우.

 

조부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력

 

2011년 12월 19일 이지아의 집안이 대대로 육영사업을 하던 재력가이자 명문가라는 언플 기사가 떴다. 정대철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은 이지아의 조부가 재력은 물론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였고 자식인 이지아의 부친에 이어 이지아 역시 유복하고 뼈대 있는 가정환경 속에서 바르게 자랐다고 인터뷰했다.

하지만 이후에 이지아의 친할아버지인 김순흥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혹이 네티즌으로부터 제기 및 확인되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어 빼도 박도 못할 처지.


물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라는 게 이지아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명문가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가 부자였기에 해외로 유학을 갔다오고 풍족하게 살았다.'는 등의 회사의 언플은 상당히 쉴드 불가능이라 까였다. 이는 명문가랍시고 언플한 가문이 수탈의 주범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임이 밝혀지고 나서 비수로 돌아왔기 때문에 욕을 먹은 것으로 애초에 이지아 측과 기획사가 신비주의를 타파하겠답시고 가문에 대한 정보를 밝힌다며 명문가라고 자랑하지만 않았어도 아무도 몰랐을 일을 본인들이 나서서 시원하게 까발린 셈이다. 이지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혼 사건이 모두 종결된 지금은 서태지와의 일보다는 이 친일 논란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이지아는 사과를 한 상태이긴 하다. 그러나 김순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을 지적하는 글이 대형 카페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삭제되기도 했고, 블로그에 올라온 글도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당해 게시 중단된 사실이 있다.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냐,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며 망언을 해 또 한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순흥은 단순히 세금을 낸 정도가 아니라 자발적인 기부금을 턱턱 내놨고 독립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세탁까지 한 인물이다. 몰상식한 일부 팬들은 어찌 됐든 이후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고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상 연좌제가 없는 국가이긴 하다.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조상의 친일 반민족 행적을 직접적으로 옹호한 적이 없거나 조상이 친일 반민족 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부와 권력을 국가에 반환하였다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공격받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를 이지아 측이 '명문가 출신으로 유복했다.'는 식으로 언플을 한 게 문제인 것이다.


이지아의 가문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시절 명문 재력가였으며 조부 김순흥은 당시 국방금품헌납자이자 대지주로, 2009년 11월 8일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있다.

김순흥은 서울예술고등학교 평창동 부지를 기부해 육영사업에 일조했으며, 국방헌금으로 월 1만원(현 시가 약 10억원)을 헌납했고, 조선군사후원연맹 사업비로 2,500원을 헌납하는 등의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선융화를 표방하던 친일단체 동민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1943년 국방헌금 3000원을 헌납하고 1944년 헌납 대가로 히로히토 일왕에게 감수포장(공익을 위해 개인재산을 기부한 사람에게 주는 감색리본기장)을 받는 등 독립운동 대항 활동도 했다.


2025년 2월 19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김씨는 형제들의 인감도장을 사용해 위임장을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350억원 규모의 가족 땅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진 계기는 이지아의 부친과 법적 분쟁을 벌이는 이지아의 사촌 동생의 폭로이다.

갈등은 故 김순흥이 남긴 350억원 상당의 토지 환매 과정에서 발생했다. 안양 석수동 소재의 해당 토지는 군 부지로 수용되었다가 환매권이 주어졌다. 이 과정에서 상속인 중 한 명인 김씨가 가족들의 동의 없이 근저당권을 설정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씨는 이전에도 사문서위조 전력으로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땅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재산을 압류당하는 등 경제적 피해를 입은 가족들은 김씨를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7일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은 김씨를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없음’으로 처분했다. 가족들은 이에 반발하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한 상태다.

김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위임장 위조 의혹에 관해 "적법하게 받은 인감도장과 증명서로 위임을 받았다. 조사까지 다 받았다"고 반박했다. 또한 가족의 명의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누나가 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몇몇 누리꾼들은 “친일파 자손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나”, “너무 지나친 비난은 삼가야한다, . 연좌제는 없어져야 한다”, “일단 어찌됐든 후손으로 사죄는 했으니 그만 비난히야”라며 일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월 21일 이지아는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조부의 친일 행위에 대해 다시한번 사과하는 입장을 밝혔다


안녕하세요, 이지아입니다.

최근 보도된 내용에 대해 저의 입장을 전합니다.

오랜 시간 고민하며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라도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말씀드립니다.

입장 표명이 늦어진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1. 가족 분쟁 관련 사실관계

저는 18살에 일찍 자립한 이후 부모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지원도 받은 적이 없으며, 부끄럽지만 복잡한 가족사로 인해 부모와 연을 끊고 지낸 지 이미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번 논란이 된 가족 재산이나 소송 등 해당 토지 소유권 분쟁에 대해서도 저는 전혀 알지 못하며, 관련이 없습니다.


2. 조부의 친일 논란에 대한 입장

제가 두 살이 되던 해 조부께서 돌아가셔서 조부에 대한 기억이 없으며, 친일 행위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2011년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해당 사실을 접한 후,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공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부의 헌납 기록을 확인하게 되었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번 논란의 중심인 안양 소재의 땅이 일제강점기 동안 취득된 재산이라면, 반드시 국가에 환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끝으로 드리는 말씀

저는 과거에 조부에 대한 그 어떠한 발언도 한 적이 없으며, 집안을 내세워 홍보 기사를 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에서 제가 ‘조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는 잘못된 내용이 확산되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기에 바로잡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조부의 대한 역사적 과오를 깊이 인식하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앞으로도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데에 겸허한 자세로 임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지아 드림.

김순흥프로필


이름 김순흥 金淳興

창씨명 가네모토 준쿄 金本淳興

출생 1910년 12월 28일 경기도 경성부

사망 1981년 10월 26일 (향년 70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자동 167-2 자택

본관 광산 김씨

직업 기업인

가족


조부 김홍기(金弘基)
아버지 김윤석(金潤錫), 어머니 송은석 (1950년 4월 자하문 밖의 13,645평 땅을 이화학당(이화여자대학교)에 기부)
부인 배동수
장남 김사익, 차남 김사복, 장녀 김옥경, 차녀 김희경, 3남 김사홍(金士鴻), 3녀 김선경, 4남 김사준, 4녀 김양경, 5녀 김미경, 5남 김사원, 6남 김사성, 7남 김사영
손녀 김지아

상훈 일본 제국 훈장 감수포장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자본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한민국 배우인 이지아(본명 김지아)의 친할아버지이다.

1910년 12월 28일 경기도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경성부에 거주하는 대지주로서 경기도 파주군 지역에 논 389 정보와 밭 75정보를 소유했으며, 1937년 6월 말경 소작인 750여 명을 두고 있었다. 1940년 무렵 1년 소득이 11만 원이었는데, 현재 시가로 약 110억 원이다.

친일 행적


1933년 8월 조선나예방협회 기금으로 1,000원을 냈다. 1934년 6월 29일 조선중앙일보 감사역을 맡았다.

1936년 2월부터는 합자회사 구정상회 사장으로 있었다. 이때 교하간이교(校河簡易校)를 지을 땅을 1,500평을 기부하였다.

1936년 7월부터 금융신탁회사인 우익상사 취체역으로 있었다.

1937년 7월 22일 국방헌금 1만원(현재 가치 10억원 정도)을 종로경찰서에 헌납했다. 그는 "나라에 대한 봉사의 뜻을 표하고자 적은 돈이나마 바치오니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1937년 조선군사후원연맹 사업비로 2,500원을 냈으며, 같은 해 9월 5일 결성된 '경기도내 군기헌납기성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비행기 대금 500원을 냈다.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해일선융화'를 내걸고 결성된 동민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 1939년 9월 주식회사 쇼와직물을 설립하여 사장을 역임.

1940년 9월 중앙연료주식회사 취체역을 맡았다.1943년 8월 징병제 실시에 감격하여 국방헌금 3,000원을 헌납했다.


1944년 4월 일본 정부가 주는 감수포장을 받았다.

해방 이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45년 12월 대한경제보국회 감사를 맡았다.

1948년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계열이 지목한 숙청대상 친일 인사들 명단초안에 이름을 올랐다.

사망

1981년 10월 26일에 향년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81년 10월 28일자에는 “학교법인 이화학원 이사 김순흥이 새벽 4시 50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자동 167-2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장례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이화학원장으로 거행된다고 밝혔다. 이 주소는 1937년 7월 22일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에 국방헌금 1만원을 헌납했던 주소와 성명이 일치한다. 1948년 김승학의 친일파 명단, 2009년 친일인명사전 경제부문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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